<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전업주부도 엄연한 직업이다.
나의 직장은 집이고 나의 업무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는 집안일과 아이 둘 양육, 네 명의 어르신들에게 효도하기, 남편이 회사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기등이 있다.
나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에서 반으로 나누어 주어지고 입금되자마자 사라지는 마법의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이제 마흔이며 초등학교1학년 딸과 유치원생 아들이 하나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중독에 빠져 살았었을 텐데
그때는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이라도 해야 현실이 덜 괴로울 것 같아서였고
때마침 찾아온 사랑은 일하지 않고도 현실을 환상으로 만들어줄 만큼 좋았다.
아기는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게 될까 봐 너무나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를 품고 나니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직장은 곧 집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아이들이 나를 보고 새하얗게 웃어줄 때, 새근새근 잠들어있을 때, 어느새 부쩍 자라 작아진 옷과 신발들을 보면 양육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내가 사람을 낳았고,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도 생각할 때마다 놀라웠다.
아이들이 아파서 엄마의 몸과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에도,
사장 뺨치는 갑질 권력을 휘두르는 시부모님 앞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매일 일과 야근에 허덕이며 본인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남편 앞에서도,
나는 그 어디에도 내 직장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야근수당도, 회식도, 승진도, 동료도, 월차도,
보너스도 없었지만
그저 아이들이 잘 커가고 있는 것이 보상이라 생각하고 살아야만 '좋은 엄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정말 가끔 들어가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소식을 볼 때면
하늘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너무나 부럽고, 지금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발전하는 대신 멈춰있는 것 같아서 창피했다.
기둥뿌리 뽑아다 공부해 놓고, 그렇게 큰소리쳐놓고
지금은 핸드폰만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배송비를 줄일 수 있는지, 핫딜을 찾고 있는 바쁜 손가락이
처절하게 보였다.
한 해 두 해가 아닌 만큼 sns는 정말 보지 않으려 하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주 가끔 차원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처럼 들어가서 볼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정말이지 집안 아주 깊숙한 곳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있고 싶다.
그래도 어김없이 울리는 나의 알람, 아이를 데리러 나가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서서 물끄러미 바닥만 응시한다.
난 뭘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질문마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복이 타고났던 나는
여전히 일복이 넘쳐흐르지만 실제로 가계에 보탬이 될만한 돈을 벌지 않고 있음에,
고정지출이 높아질 때마다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는, 커피를 사 마시고 싶어도 집에 가서 내려먹지 뭐 하고 돌아서는 마음, 행여나 그 마음이 바뀔까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런....
그냥 그런..... 마흔 살의 여자, 그리고 아내와 엄마.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익명으로 네이버 카페 같은 곳에 글을 올려보는 것이 다 일터.
나 역시 브런치를 이용해 내 마음속 대나무숲을 만들어 본다.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블라인드처럼 엄마들에게도 맘카페 말고, 정말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만 모여서 가입할 수 있는 블라인드가 있으면 좋겠다. 블라인드앱 역시 소속회사이름만 밝혀지지 않나?
요샌 아파트이름만으로도 소득 수준을 어렴풋이 짐작하듯이 회사이름만으로도 연봉과 계급이 나뉘는데
같은 처지 엄마들끼리 으쌰으쌰 한다고 한들 뭐 어떠리.
둘째를 가졌을 무렵, 대부분의 친구들이 첫째 위주의 엄마들이었어서 새로운 육아지기를 찾고자
맘카페에서 4명의 마음 맞는 엄마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은 적이 있다.
1년을 그렇게 종종 모이다 결국 나는 단톡에서 탈퇴했다. 나는 에르메스를 살 수도 없고, 세컨드카가 포르셰이지도 않고,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고, 고급아파트에 살지도 않기 때문에 그 커다란 벽 앞에서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
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했다.
나는 나로서 자신감이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웠는데
어느덧 아줌마가 된 나는 남과 비교하고, 자책하고, 자기관리할 힘도 없다.
로또라도 맞기를 바라며 가끔씩 허망한 로또용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커피 한잔 사 먹었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그런 날들.
나는 과연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지금의 내 모습에서 변화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나니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