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육] 수학 문제를 머리로 암산하는 아이들

언어와 사고

'암산'하는 아이들


수학 수업을 하다 보면 어떤 문제를 풀 때 노트에 자신의 사고과정을 정리하면서 해결하지 않고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어떤 학생들은 쓰는 것이 귀찮아서 라는 이유로, 또 어떤 학생들은 쓰는 것이 습관화되어있지 않아서 라는 이유로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노트에 무언갈 적으면서 풀지 않는 학생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사고가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돌아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는 아이들, 다른 하나는 머릿속으로도 충분히 사고의 정리와 언어화가 잘 이루어지는 아이들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시각화, 언어화의 차이이다. 즉, 수학적 개념의 기의를 기표(언어)로 잘 정리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나 수능 시험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아이들의 실수와 선생님의 역할


수학적 기의 들을 기표로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면 그 개념은 모호해지게 된다. 모호해진 개념들은 점점 더 직관과 감각에 의존하게 되며 수학을 합리적 이성으로 접근하기보다 감각에 의존해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형 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 그 어디에도 직각삼각형이라는 암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이들은 단지 직각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직각이라고 넘겨짚고 그것을 추론의 전제로 삼는다. 물론 대부분의 문제집과 교과서가 패턴이 비슷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아이들의 이러한 감각적 직관은 통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선생님이 이걸 보고 그냥 넘어가선 안된다.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을 믿지 말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극도로 감각적이 된 학생들은 자신들의 실수가 '수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혹은 '배운 공식을 까먹어서'라고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정확하게 낫으로 풀을 벨 수 없듯이, 명약관화한 기표 없이 수학적 문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과서를 뒤지거나 문제집의 앞으로 돌아가 개념을 보고 다시 문제를 푼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아이들의 개념을 분명하게 해주지 못한다. 필요할 때만 잠깐 훑어본 대상이 머릿속에 개념화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러한 아이들의 패턴을 빨리 파악하여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수학 실력의 차이는 언어가 만들어낸다.



직관에서 논리 형식으로

초등 수학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감각자료들을 수학적인 표현들로 해석하도록 해주고 사물에 대한 수학적 직관을 길러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도 물론 언어(논리)를 사용하긴 하나 정교하게 짜인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진 않는다. 아이들의 추론은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가령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이해할 때 중학생들은 이것을 평행선 정리와 같은 연역적 추론 과정을 통해서 이해하지만 초등학생들은 실제로 삼각형을 오리고 잘라서 붙여보고 실제로 그런지 눈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경험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우리는 그러한 감각들을 믿지 말라고 암시한다. 감각에 의존하지 말고 이성에 더욱 의존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식론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감각자료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으로 올라가면서 더욱 논리에 의존해야 하며(중학 수학부터 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온다) 데카르트적이어야 한다. 즉, 모든 감각자료를 의심하고 이성으로 꿰뚫어 보려는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의 핵심은 우리의 언어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추론은 언어활동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


먼저 가장 좋은 지도 방법은 질문하는 것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활용하는 방법이다. 한 중학생이 도형 문제를 푸는 도중에 감각적으로 어떤 각을 직각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해보자. 나는 '그것이 직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요?'라고 질문한다. 처음에는 학생들 대부분 '당연히 직각 아닌가요?'나 '직각처럼 보이는데요'라고 대답한다. 그럴 때 선생님은 회의론자가 되어 모든 의심을 한다. 직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단 1퍼센트의 의심도 놓지 않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 지독한 회의론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럼 이 학생이 빡빡한 회의론자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오로지 정의, 그리고 그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성질 및 정리들에 의해서만 설득당한다. 왜냐하면 수학적 정의와 정리들은 나(선생님)와 학생 모두가 진리라고 인정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연역적 추론은 이렇게 모두가 인증한 사실로부터 도출해야 한다. 처음에 아이들은 힘들어하겠지만 차츰 적응해 가면서 자신의 논리와 추론, 그리고 무모순성을 배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학적 용어들과 기호들, 그리고 문장들이나 공식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줄 때는 단순히 '문제집 어디부터 어디까지 풀어와라'라고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수학 문제를 풀었는가?'보다 '어떻게 풀었는가?'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모든 수학 문제의 해결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지도한다. 수업시간에는 구술로도 그것을 시키지만 숙제를 내줄 때는 반드시 서술하게 한다. 만약 자신의 논리를 말로나 글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수학 문제와 대화해야 한다.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또한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어적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분석하고 단순화하고 또 표현해야 한다.



사고와 언어


무엇보다 사고력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구체화하고 시각화해야 한다. 수학에서는 그것을 기호나 그래프, 혹은 그림으로 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표들은 사유의 도구들이 되어서 좀 더 유연하고 폭넓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왜냐하면 초등 수학에서는 우리의 사고의 대상이 경험과 감각자료들이었지만 중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러한 것에서 추론된 추론 결과물들, 예컨대 수학공식이나 추상적인 규칙들이 또다시 새로운 사유의 대상들이 되고 점점 더 그 저변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함에 있어서 언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게으름의 다른 말인 '암산'이라는 말이 아이들의 수학적 수준 향상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