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노력은 실재할까?
오늘 한 학생과 수업을 하는 도중에 잠시 대화를 했다. 노력과 재능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매우 흥미로웠다. 대화는 학생의 질문으로 시작했다.
학생 : 저는 수학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에 재능 있는 친구들보다 탁월해질 수 없어요.
나 : 노력과 재능은 허상이에요. 실재하지 않죠. 존재하는 것은 나의 신체예요.
학생 : 하지만 사람은 다 똑같지 않잖아요. 어떤 친구는 100미터를 15초에 달릴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친구는 12초 안에 달릴 수 있어요. 그러면 12초 안에 달리는 친구가 15초에 달리는 친구보다 더 재능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요?
나 : 물론 재능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것을 재능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재능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좀 전의 예시에서 재능이라는 말은 비교할 대상과, 같은 거리를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에 우월함을 부여하는 구조에서 생겨나요. 반면에 나의 신체는 그냥 달릴 뿐이지 거기엔 재능이 내재되어 있지 않아요. 나의 신체는 '뜀'을 욕망할 뿐이에요.
위 대화는 학생과의 대화 일부를 발췌하고 수정한 것이다.
우리는 자주 예외를 본질로 해석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달릴 수 있는 다리와 달리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것은 개인마다 예외적인 것이고 그것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달리기를 싫어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 느리게 달리는 것이 더 좋은 것, 즉 미덕이 될 수도 있다.(빨리 달리는 사람은 느리게 달리는 사람보다 주변을 살피거나 감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기 경주라는 구조에 내던져지고 나의 예외성은 마치 '느린 사람', '다리가 짧은 사람', '근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본질인 것처럼 날조된다. 우리는 세상에 그냥 내던져졌을 뿐 어떠한 것도 본질로 부여받은 적이 없다. 재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우리를 그 본질에 가두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병적인 것이다. 편의를 위해 구조를 만드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생명력을 잃고 '노력'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이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 되는 순간 우리는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한다. 경쟁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은 아예 나의 피투성을 느낄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본질로 규정하고 더욱 노력하도록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만든다.
내가 앞에서 구조에 갇히는 것을 병적인 것이라고 한 이유는 이것이 나의 신체를 경직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더 나아지고자 하며 창조하는 존재이다. 이것이 생명의 속성이다. 하지만 인간은 구조로, 언어로 스스로를 죽인다. 인간은 어째서인지 죽음을 원하는 동물인 것처럼 스스로를 가두고 학대한다. 나의 편리를 위해 만든 구조와 언어, 법, 도덕, 진리 등이 나를 경직되고 창백하게 만든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막는다. 나의 신체가 생명력을 얻으려면 이런 것들을 깨고 나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나의 신체에 걸맞은 가치. 그것은 선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가 창조한 가치들과 미덕들이 다시 나로 하여금 나를 창백해지게 만든다면 그것도 극복해버리자. 우리는 이렇게 더 나아짐, 자기극복,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의 움직임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거기에 바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