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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Jul 19. 2021

트램


트램을 탄 다는 것, 홍콩을 맞이한다는 것


트램은 한 번 타보고 나면 버스나 전철보다 결국 또 느리고 느린 트램을 타게 된다. 센트럴이나 완차이, 애드미랄티 등 도로에서 트램을 발견한다면 아무것이나 잡아서 타면 된다.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며 내릴 때에 값을 지불한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느리며 또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트램. 그 중 대부분은 광고판으로 이용되어 상업 사진을 입고 있지만, 빨간색이나 초록색의 ‘리미티드 트램’은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 트램을 타고 가다 그런 올드한 트램을 발견한다면 ‘아, 이곳이 홍콩이구나’ 하는 정취에 물들게 된다. 도시와 트램은 홍콩섬을 기억하는 최고의 이미지다.



일상에 파고들어온 단편영화의 장면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목적지를 확인치 않고 그저 트램 위에 올라탔는데 기적처럼 슬로우모션의 장면이 펼쳐졌다. 트램 뒤에 서서 풍경을 보고 찍는 걸 좋아하는데, 천천히 트램이 출발하자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길 한가운데로 들어와 트램을 따라오듯 걸어오셨다. 마치 어느 드라마틱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할아버지는 트램이 멀어질 때 까지 천천히 레일 위를 걷고 또 걸어오고 계셨다.


어느 날은 내가 탄 트램 바로 뒤에 있던 트램의 기사 아저씨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웃어 보인 일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트램이 자꾸만 맞닿은 듯 가깝게 가서, 계속 아저씨의 웃는 얼굴을 마주보며 갔다.


트램에서 파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시간당 값을 지불한 , 기사가 모는 트램을 타고  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천천히 달리는 트램에서 홍콩 도심의 야경을 감상하며 폭죽도 터트리고 소리도 지른다. 트램을 빌려 파티를 한다는 , 낭만적이다.




시장에서는 아무도, 트램을 보고 길을 비키지 않는다


완차이에서 노스포인트로 가는 트램을 탄다. 종점까지 가는 길이라 앉고 싶었지만, 맨 뒷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은 놓칠 수가 없었다. 트램 뒷자리에서 보는 길거리 풍경만큼 영화적인 순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스포인트 마켓 종점까지 가는데 불현 듯 좁은 시장골목에 트램이 진입한다. 속도는 사람의 걸음보다 느려지고, 자주 멈추며, 종을 울려댄다. 종 소리는 길을 비켜달라는 것인데, 시장의 사람들은 트램을 보고도 길을 비키지 않는다. 손 닿을 듯이 가깝게 펼쳐진 시장의 풍경, 사람들의 흥정하는 소리, 트램을 막고 보란 듯이 길을 가로지르는 노인들의 느린 발걸음. 마치 영화 세트장인 듯, 모든 사람은 배우인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트램 탑승 사상 최고의 장면을 선사한 노스포인트 마켓은 트램이 멈추는 종점이었다. 나 혼자만 셔터를 눌러댔다. 늘 그런 일상을 산다는 듯, 주민들은 양 볼을 스칠 듯 가까이 트램이 지나가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름 모를 역에 내린다는 것, 탑승의 이유


느리게 지나가는 트램에서는 길거리에 있는 가게나 사람들의 동작까지 세밀히 관찰할 수 있다. 그러다 끌리는 식당이나 사고 싶은 과일을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다음 역에서 내릴 수 있는게 트램의 매력이다. 정류장 사이사이가 아주 가깝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도 돌아가는게 어렵진 않다. 덜컹거리는 승차감은 전쟁영화 속 피난 가는 느낌을 선사하기도 하고, 트램 밖 펼쳐진 고층빌딩의 풍경은 우리를 철저히 ‘관망자’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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