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정 Sep 12. 2020

총총나년

쏜살같이 지나간 그 시절


홍콩 대학교



배우 장만옥이 가장 생기 있는 미모를 자랑하던 시절, 중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원령옥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한 영화 ‘원령옥’에 출연했다. 원령옥은 25살에 스스로 생애를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다. 아름다운 얼굴, 수 천개의 표정, 세련된 스타일,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녀를 1930년대 '모던걸'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 아내가 있다는 건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그래도 사랑을 거둘 수는 없었단다. 그 남자는 유부남이었지만 여배우를 비롯해 많은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어쩌면 대단한 남자다. 이런 생애, 모두에게 주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년은, 대만 어느 길거리에서 혼자 담배를 팔며 살다가 객사했다는 소문이 있다. 화려한 시절도 한 때이고, 사랑에 젖어 까불며 사는 것도 결국 한 때의 일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화려한 한 때에 올인 하길 원하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용기의 양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비난하고 부러워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폭주하는 사람들을.


그러나, 살면서 그런 사랑 한번쯤 해보고 받아 보았는지 되물어보기로 한다. 추억하나 없이 금 침대에서 쾌적하게 죽는 말년보다, 어쩌면 영화 같은 페이지 하나쯤 가슴에 간직하고 쓸쓸히 작렬해 버리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또 오지 않으니까, 죽도록 간절하게 영화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남기고 싶다. 이야기로, 사진으로, 글로, 일기로. 공익광고에 나오는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 보다, 두려워도 그 편이 나을지 모른다.


혹여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홍콩으로 오시기를

그리고 홍콩 영화 몇 편을 가슴에 품고 오시기를.

그 영화들은 인생 가장 찬란하고 불안한 시절을 보여주고, 홍콩의 풍경은 늘 그대로니까


     

홍콩대학, 자전거를 타던 서기와 여명의 추억


홍콩대학은 홍콩 내 최고 수준의 대학은 아니지만, 그 클래식한 건물과 규모는 홍콩대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할 것 같다. 이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면 특별한 로맨스도 싹트지 않을까. 홍콩 대학교 지하철역에는 홍콩대 내에 진입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 학생들은 그 엘리베이터에 줄을 서서 탄다. 때때로 자신의 목적지에 맞게 내리는데, 오래된 구 대학 건물에서 내리는 이는 많지 않다.


옛 대학건물에서는 단 몇 개의 수업만 이뤄진다. 영국식 건물을 분홍색으로 칠한 따뜻한 외관, 꽃나무와 좁다란 복도에 매료되어 걷는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온다. 모여서 또 때로 흩어져서 캠퍼스를 즐기고 있다.

 

1층에는 건물 가운데 공터 같은 곳이 있는데, 바로 영화 ‘유리의 성’에서 여명과 서기가 키스신을 찍었던 곳이다. 생각해보면 홍콩영화 역사상 가장 아련하고 애틋한 청춘의 페이지를 담아낸 영화인데, 모두들 안타까웠던 마지막 장면만 기억하니 서글퍼진다.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며 웃었던 학교 앞 언덕길, 몰래 사랑을 피우던 기숙사 앞 건물 등은 마음속에 오랜 시간 남았다. 90년대 찍었던 영화 속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건물의 아름다움 때문에, 오랜 시간 떠나지 못하고 구석구석 걸어 다녔다.



 

헬기를 타고 홍콩섬 위를 달리던 두 사람


누군가 영화 ‘유리의 성’에 나오던 두 남녀처럼 헬기를 타고 고작 10여분을 날기 위해 여행예산 초과를 감행할 수 있을까? 어쩌면 홍콩에서만 할 수 있는 도전이며 또 낭만의 실현이다. 160만원을 지불하고 단 10분의 홍콩 도심 날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영화에서 서기와 여명은 본인들의 운명을 감지한 듯, 불안한 표정으로 헬기를 탔다. 그리고 등장했던 홍콩 건물 위를 나는 장면. 빼곡한 건물을 지나 바다 위에 도달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불안함을 모두 던져버린 듯 한 두 사람의 표정은 홍콩 헬기 투어의 욕망을 자극했다. 페닌슐라 호텔에서는 당신의 ‘용기’를 위해 헬기를 준비해 놓고 있다. 다행이도 여러명이 탈 경우 나눠서 계산이 가능하다.


영화 ‘유리의성’에서 서기는 장미꽃이 담긴 물병 안에 아스피린 한 알을 넣는다.

시들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콩 영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