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시작
전시용 액자에 넣을 문구를 수집하다 방송인이자 작가인 유병재 님의 삼행시집 <말장난>을 보게 됐다. 평소 예능 프로그램에서 번뜩이는 삼행시 센스를 뽐내던 그였기에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책으로 출간될 줄은 몰랐다. 가볍지만 묵직하다. 삼행시집인 탓에 길어봤자 대여섯 문장도 되지 않는 글이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그의 생각과 느낌이 강렬하게 담겨있다. 만화책 읽듯 후루룩 넘기는 재미는 보너스.
때로는 짧은 글이 더 깊은 여운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삼행시가 질리지 않는 이유 아닐까. 정식 시집이라 하기엔 삼행시집은 문학보단 유희에 가깝지만 이제 책까지 나올 정도면 이전보다 삼행시의 지위가 격상됐다. '이거 괜찮겠는데?' 하는 무모한 도전 욕구에 휩쓸려 매거진 <N행시집이네오>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브런치를 살짝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막히기 부지기수다. 스스로의 처참한 어휘 능력을 절감하는 값진 계기가 됐다.
매력도 분명하다. 비록 손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머리 굴리는 시간이 훨씬 길지만 기존 브런치 글을 발행할 때보다 시간, 장소 제약 없이 여유롭게 글을 쓸 수 있고, 주제어가 무궁무진한 덕분에 소재 걱정도 필요 없다. 거기에 단어를 고민하고 찾아보면서 어휘력이 상승하는 효과까지. 특히 브런치를 하면서 SN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짧은 글의 장점을 살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려 한다. 내게 N행시는 이런저런 핑계로 브런치가 부담스러워졌을 때 나타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시작이 반이니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 위해 앞으로 종종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