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나만 너무 낭만을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점점 더 ‘합리적인 사랑’을 찾아가는 이 시대에,
나는 아직도 설렘, 타이밍, 우연, 그리고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미세한 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이제는 결혼도 전략이어야 한다고. 누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부모님이 어떤 배경인지, 수입은 어느 정도인지. 그 사람과의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한 삶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정보회사에 자신의 ‘조건’을 입력하며 사랑이 아니라 계약을 시작한다. 직업, 소득, 키, 가족관계, 종교, 학벌, 출신 지역… 이제 사람은 누군가의 조건표로 환원된다. 나는 그 구조를 이해는 한다.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감정만으로는 모든 걸 버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가끔은, 나도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랑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 하지만 그게 먼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건은 감정을 확인하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감정을 대체하는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니까. 사랑은 설계가 안 되니까.
스물넷, 교보문고였다. 나는 그날도 책을 고르고 있었고, 어떤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예쁘고 고급스러운 말투, 매끄러운 제안. 처음엔 그냥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말했다.
“나는 프라이빗하게 사람을 소개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가장 예쁠 때, 가장 좋은 사람을 만나야죠.”
그녀는 대표였다. 말끝마다 우아함이 묻어났고, 당시 나는 ‘결혼정보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그녀가 일한다는 사무실까지 찾아간 기억이 난다.
조명이 은은했던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포트폴리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조건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항목으로 분류하고 그 조건들로 관계를 설계하려는 세상을 목격했다. 그 언니는 나를 설득했다. 지금부터는 연애가 아니라 결혼을 생각해야 한다고. 내가 누굴 만나는지가 내 인생을 좌우한다고. 좋은 학교, 괜찮은 직업,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 사랑은… 나중에 따라와도 된다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조건으로 사람을 고르는 건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은, 진짜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꽤 야무지게 말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야무짐에는 세상을 다 아는 척하는, 치기 어린 자존심도 함께 담겨 있었겠지만.
그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유튜브 안 보니? 30대 여자들이 왜 노처녀가 되어가는지, 그런 거 보면서 각성해야지.
야무진 애들은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 서른 넘기기 전에, 짝을 찾아놓는 거지.”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마치 지금의 내 미래를, 그때 미리 예언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정답은 없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조건을 따져 만나고 누군가는 감정으로만 만나기도 한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거나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 구조 속에 내 마음을 억지로 끼워 넣을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벌써 10년 차 직장인이다. 삭막한 현실에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하지. 나를 둘러싼 환경도 등급에 맞춰 사람을 고르고 그에 맞춰 살아야 하는 논리라면 너무 각박하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내 주변엔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있고, 그들은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수많은 커플이 그 시스템을 통해 만나 결혼에 골인하고 있다. 나는 그런 방법을 무시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데 어떤 방식이든 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다. 다만, 등급표를 나눠놓고 “자, 여기서 골라보세요.” 하는 그 구조만큼은 아직도 나에게는 거부반응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품처럼 진열하고, 서로를 선택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나열하는 방식은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너무 쉽게 가늠하려 드는 것 같아서.
나는 아직도 비효율적인 감정을 믿는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말의 결을 따라가며, 그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에 서서히 빠져드는 감정을. 그건 어쩌면, 지독히 계산적인 이 시대를 조금이라도 숨 쉬게 만들어주는 내 방식의 저항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