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사랑의 유통 기한

그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by 글시책

11장. 사랑의 유통기한


약속의 3년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게 꼭 재고를 따지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3년쯤이면, 사람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던 거다.

좋은 점도, 단점도, 그리고 콩깍지조차 어느 정도는 벗겨지는 시기.

3년이 지나면, 사랑은 현실의 문을 두드린다. 2년쯤 지나면 결혼 이야기를 해야 정상적이라는 말과 시선들.


모든 연애가 그랬던 건 아니다.

20대의 연애라 그랬을 수 있지만,

현실적인 것보다는 상황과 마음 때문에 헤어지는 이별들에 익숙했다.

하지만 지난 연애에서만은 달랐다.

그 사랑 앞에서는 유독 시간이 또렷하게 느껴졌고,

3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음속에서

결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관계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함께 살아도 될 사람일까.

사랑은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나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리는 발베니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날의 술은 대화보다 먼저 목으로 넘어갔고,

잔이 빌수록 감정이 날카로워졌다.

나도 모르게 다소 직설적인 말을 꺼냈다.

회식 자리에서 어떤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어,

3년이나 만났는데 결혼이야기가 없다는 건 끝난 거나 다를 바가 없다고.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참 언짢았다고. 왜 그렇게 단언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말에 기분이 나빠진 그는 표정을 굳힌 채 말을 던졌다.


“우리 회사 차장님이 그러더라.

너 같은 사람을 왜 만나냐고.”


그건 무심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뱉은 말에 기분이 상한 그는,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러 고른 말을

그 위스키 잔처럼 천천히, 그러나 정확히 흘려보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말에 약한지,

어떤 식으로 상처받는지.

그는 그걸 골라서, 나를 향해 정확히 겨눈 거였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속한 세계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직면하게 됐다.

소위 말하는 ‘스카이’를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기준,

해외대, 기업금융, 펀드매니저, 변호사 같은

이력으로 정리되는 사람들만

그의 곁에 어울릴 수 있다고 여기는 시선들.


그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자,

감정이 상했을 때 쉽게 꺼내 비하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기준에 미달된 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존중받지 못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슬펐던 건, 그 말이 맞아서가 아니라

그 말에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날 사랑했다면,

그 말을 고르진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와의 마지막 즈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내 인생의 1/10을 함께 했네.”

가볍게 들리지만, 그 안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사랑했고, 싸웠고, 함께 자랐고,

서로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시간.

사랑은 끝났지만,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감정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와의 이별 후 나는 사랑을 정말 열심히 탐구했다.

질문했고, 관찰했고, 분석했고,

때론 감정조차 실험처럼 마주했다.

그렇게 애써 붙잡고 다룬 감정인데도

결국 남은 것은 ‘사랑 없음’이라는 결론이었다.


그게 조금 슬펐다.

사랑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마지막에 남은 건 사랑이 아니라, 나를 깎아내렸던 기억이라는 것이.


어쩌면 사랑은

정의하거나 증명하려는 순간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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