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12장. 아직도 낯선 것 같아, 30대의 사랑방식
33살 상반기까지, 나는 아마도 20대의 연애를 해왔던 것 같다. 감정이 먼저였고, 설렘은 판단을 이겼고, 맞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번쯤 더 만나보곤 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내가 감정을 더 많이 쥐고 있는 쪽이라 해도 괜찮았다. 나는 사랑을 하면, 늘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상처 주는 사람보다는 상처받는 사람 쪽에 서는 게 덜 비겁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진짜 30대의 연애와 마주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무너졌다. 사랑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타이밍은 맞아야 하고, 조건은 어느 정도 정리돼 있어야 하고, 나이만큼 책임도 함께 따라온다. 이제는 상대의 감정뿐만 아니라, 이 관계가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매번 너무 무겁고, 너무 계산적이고, 너무 낯설다.
나는 여전히 감정으로 사람을 본다. 상대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말할 때의 눈빛이 먼저 떠오르고, 이름보다 내가 이상하게 조심하게 되는 그 분위기가 오래 남는다. 그런데 요즘 마주하는 사랑은, 감정보다 타이밍이 먼저였고, 감동보다 질문이 많았다. 우리 뭐야? 결혼은 언제 생각해? 부모님은 뭐래? 회사는 안정적이야? 내 마음이 다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 질문들이 먼저 현관문을 두드렸다. 내 앞에선 말하지 않지만.
그중 한 사람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력할 수 없어.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 말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변화할 의지가 없다는 선언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연애라는 건 서로를 위해 조금씩은 바뀌고, 부딪히더라도 맞춰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문장으로 그 모든 걸 다 거절했다. 그리고 더 슬펐던 건, 그 말을 듣고도 내가 여전히 그를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조금 더 맞추면 될 거라 믿었고, 내가 덜 예민해지면 이 관계가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결국 돌아오는 건 질문이었다. ‘왜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 사랑을 하고 싶다면서, 책임질 수는 없고, 감정은 깊지만 관계의 온도 조절은 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기가 원하는 건 분명한데,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건 불분명한 사람들. 나는 그들 앞에서 점점 고갈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사랑꾼이었구나. 좋아하니까 참았고, 사랑하니까 이해했고,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내가 더 많이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늘 사랑을 ‘해내야 하는 일’처럼 감당해 왔던 것 같다. 나만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랑이니까 하는 거라고 말하며, 감정과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려 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30대의 사랑은 단단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하고 불편해졌다는 걸. 감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고, 나이만큼 고민할 게 많아졌고, 나는 그 중간에서 여전히 감정형 인간처럼 서 있다. 사랑을 알게 된 나이가 되었는데, 정작 사랑이 가장 낯설다. 사랑은 여전히 하고 싶은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이가 되었다.
‘굳이’라는 질문이 떠올라 낭만을 잃은 나에게 실망하는 나이.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장점 하나만 바라보고, 그 사람을 사랑하던 나는 어디 간 걸까. 부족한 부분이 보여도, 그 사람이 가진 어떤 하나가 나를 충분히 설득해 줬던 시절. 그런 사랑을 당연하다고 믿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내가 조금 자랑스러웠던 시절. 지금 나는, 그 낭만적 사랑꾼이 더는 될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그게 성장인지, 상실인지 헷갈리지만 분명한 건, 이제 나는 더 이상 한 가지 장점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조금 서글프다. 사랑 앞에서조차 나는 조금씩 계산하고, 주저하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방어하려 드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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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지나간 계절 같고,
나는 이제 그 계절을 외면하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냥 여기, 사랑 앞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