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순례길 마지막날!
오늘은 해가 뜨고 8시쯤 길을 나섰다.
드디어 마지막 순례길이 시작이다.
이제 파드론 마을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지난 4일간 발의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오늘은 걷기 시작하자마자 발바닥이 아파온다.
이제 25km 정도 남았다. 어제 17km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더 걸어야 하니 겁부터 났다...
더욱 문제인 점은 괜찮았던 왼쪽 무릎도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왼쪽발에 물집 4개, 오른쪽발에 물집 2개, 오른쪽 무릎통증만 있었는데 왼쪽 무릎이 시려오니 다 걸을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래도 우선 천천히 계속 걸어갔다.
스페인 마을들을 지나다 보면 마을마다 공동묘지가 있고, 묘지마다 꽃들이 잘 놓여있는 것을 하루에 한 번씩은 본 것 같다.
그래도 초반에는 아프지만 힘이 충전되어 조금이라도 많이 가기 위해 최대한 빨리 걸었다.
그래도 한 시간에 4km 정도의 속력...
오늘도 7시간 이상 걸어야 도착할 것 같다.
오늘 길들도 예쁘고 오전에는 날씨가 선선해서 그중 다행이었다.
오늘도 만난 고양이. 엄청 째려본다.
하지만 먹을 것을 줄게 하나도 없다.
그러다 만난 오늘의 같이 걸을 친구들.
스페인에 사는 20대 중반 친구들이었다.
강아지도 보고, 중간중간 음악 연주하시는 분들의 연주도 들으며 걸었다.
이제 드디어 20km 돌파!!
오르막과 내리막, 마을길과 숲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스페인 3명의 친구 중 아드리안이라는 친구가 거의 나와 아픈 곳이 비슷했다. 발에 물집이 많이 잡히고 무릎도 아파 속도도 비슷했다.
아드리안은 26살에 santander라는 스페인의 큰 은행에 다닌다고 했다. 개발자일을 하고 있고 엄청 똑똑한 친구 같다. 이 친구도 평소에 많이 안 걷고 엄청 오래 앉아서 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둘 다 발과 무릎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아프지만 등산 스틱에 의존해 4족 보행을 하며 억지로 다리를 끌고 갔다. 중간중간에 택시 부를까? 장난으로 얘기했지만, 점점 진짜 택시를 타고 산티아고 대성당 1km 전에 내려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더워져 외투를 벗고, 햇빛무장도 하고 다시 걷는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목표지점에 도착해 환호성을 지르고 짐과 신발을 벗어던지는 모습만 계속 상상하며 걸었다.
점심으로는 보카디요(스페인식 샌드위치인 것 같다)를 먹고 발과 무릎에도 조금의 휴식시간을 줬다.
이제 8km 남았다.
이미 어제 걸은 거리만큼인 17km를 걸었다.
진짜 이때부터는 거리가 너무 안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이제 7km 남았다.
무릎에는 한계가 왔지만 여기서 포기를 할 수 없기에 그냥 진짜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계속 한걸음 한걸음 숫자를 세며 걸었다.
7킬로 남았으니까 세 발자국에 숫자 하나씩 7000까지만 세면 되겠지 하며 숫자를 세다 까먹어 다시 처음부터 세고, 까먹고, 계속 반복했다.
오후가 되니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과 풍경이 이어졌다.
이제 어려운 길들을 지나 산티아고 초입에 도착한 것 같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은 느낌.
하지만 끝이 날듯 끝이 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끝이 얼마 안 남았다는 흥분 때문에 그런지 엔도르핀이 나와 통증이 줄어들었다.
이제 산티아도 데 콤포스텔라 구시가지에 들어왔다.
이제 서서히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힘이 나서 빠르게 갔다.
이제 진짜 다 와간다. 너무 행복했다!
이제 대성당의 코너들을 지나 대망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 광장에 도착!!
진짜 너무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기분이었다.
우선 가방을 벗어던지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는데 세상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앞으로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드디어 순례길이 끝났다는 행복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도 끝까지 버텨준 발과 무릎에 감사했다.
다들 기념사진도 찍고, 누워서 행복을 만끽했다.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광장에서 나왔다.
나와서 인증서를 받으러 갔다.
드디어 받은 인증서!
나는 폰테 드 리마에서 출발해 152km 완주했다고 나와있다.
이어서 오늘 함께했던 친구들은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친구가 있어 차를 타고 바로 마드리드로 향했다.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개운하게 씻고 나와 숙소 근처에서 햄버거와 맥주를 사서 먹었다.
드디어 이로써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이 났다.
나는 풀코스 800km나 600km를 걸은 것도 아니다. 한 달을 걸은 것도 아니고 고작 5일을 걸었을 뿐이다. 다들 여러 가지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한다. 어떤 사람이 순례길이 인생과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었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안에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 들어있는 것 같다.
힘들게 걷다 먹는 물 한 모금의 소중함.
쨍쨍한 햇빛에서 만나는 나무 아래의 시원한 그늘.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의 종착지에 도착하게 된다.
아직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저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한데, 이 길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다음에는 프랑스길 풀코스로 한번 꼭 걸어보고 싶다.
나는 이제 마드리드로 가서 다음 목적지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