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나 힘들었다
오늘은 푹 자고 8시쯤 천천히 길을 나섰다.
룸메이트였던 덴마크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출발했다. 그 젊은 친구도 발에 덕지덕지 물집 밴드를 붙였는데 나는 무슨 깡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왔는지 후회됐다.
언제나 동틀무렵의 하늘은 너무 아름답다.
걷는 내내 비가 안 오는 것이 너무 대행이었고,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을 나서는데 마을 아주머니가 친절히 길을
알려주셨다. 나는 짤막한 스페인어로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하루 보내세요)‘를 말하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44킬로 정도 남았다.
가는 길에 스페인 아주머니도 만나고, 확실히 목적지에 다 와가니 순례객이 훨씬 많아졌다.
오늘은 흙길이 많아 좋았다. 어제 바늘과 실로 물집 6개 정도 터쳤더니 확실히 발 컨디션이 좋았다.
오늘은 다행히 길도 무난해서 사람들을 제쳐 빨리 갔다. 얼른 숙소에 가서 푹 쉬겠다는 일념하에.
스페인은 소나 말, 양들을 풀어놓고 방목하면서 키우는 곳이 참 많은 것 같다.
계속해서 나오는 숲길의 향긋한 숲 향기와 새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발바닥의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물집이 터진 곳에 제대로 조치를 안한채 걸었더니 물집 터진 곳과 발바닥 통증이 심해졌다.
결국 내가 일등으로 가다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제쳐 걸어갔다. 오늘도 일찍 도착하기는 글렀다.
나는 나의 속도로 쉬지 말고 꾸준히 걸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계속 아름다운 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돌바닥에 와서는 발바닥 통증이 너무 심해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아점을 먹으며 쉬었다.
쉬는 도중에 60대 홍콩 부부가 들어왔다.
부부 중 아저씨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물어보셨다. 나는 발이 조금 아프다고 했는데 양말을 벗어 보여달라고 하셨다. 내 발바닥을 보시더니 이러면 못 걷는다고 가방에서 물집밴드를 여러 개 꺼내서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붙이기 힘들어 보였는지 직접 붙여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발이 안 깨끗하다고 정중히 거절해지만 결국 밴드들을 직접 붙여주셨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이후 그 카페에서 쉬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고, 같이 걷자고 하셨다.
이후 나는 오늘 목적지까지 홍콩에 사시는 Fred 아저씨와 부인분과 함께 걸었다.
확실히 밴드를 붙이니 물집 통증이 훨씬 나아졌다. 양말도 하나 더 신으라고 하셔서 하나 더 신었다.
가는 길에 나온 다음 카페에서 물을 마시면서 조금 더 쉬었다. 통증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발의 피로도가 컸는지 속도는 잘 나지 않았다.
아저씨와 가는 내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콩영화 ‘무간도’부터 한국의 영화와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시는 아저씨의 얘기.
좋아하는 홍콩 배우 ‘양조위’, ‘주성치’, 한국배우 ’ 황정민‘, ’ 마동석‘ 등 작품과 배우 그리고 한국의 엔터산업이 현재 아시아 1등인 이유와 앞으로의 문제점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픔도 잊고 걸었다.
그래도 발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아저씨의 부인분은 앞서가고 아저씨가 나의 속도에 맞춰 걸어주셨다.
이어서 아저씨가 전 세계 12개 지사가 있는 패션회사 사장님이었고 지금은 은퇴해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고, 영화를 좋아해 전 세계 수많은 작품을 본다고 말해주었다. 흑백요리사도 보셨다고 하는데 정말 신기했다.
과거 홍콩과 일본의 엔터 산업이 흥망성쇠를 보시면서 결국 엔터 산업으로의 자본 유입이 가장 중요하고 현재 한국 엔터 산업도 잘 나가지만 투자가 줄어들고 있어 홍콩과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와 수많은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며 여러 가지 외국정세까지 파악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놀라웠다.
계속해서 얘기하며 쉬고 걷고를 반복했다. 오늘은 거리가 17킬로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발의 통증이 심했다.
위의 마지막 사진이 홍콩 아저씨의 뒷모습. 같이 찍은 사진이 있지만 올려도 되는지 동의를 구하지
않아 정면 사진은 올리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가 달라 헤어지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는데 숙소에서 간단히 먹고 쉬어야 할 것 같아 내일 뵙자고 정중히 거절했다.
숙소는 18유로의 알베르게인데 커다란 방에 30명가량 함께 자는 곳이었다. 그래도 엄청 깔끔하고 주인분이 너무 친절해서 좋았다.
나는 숙소에서 씻고 나와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고, (빨래방에서 홍콩아저씨를 또 만나서 내가 저녁을 사려는 곳을 추천드렸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연어덮밥과 초밥을 사서 저녁을 먹었다. 구글지도 평정 5점이었는데
음식들이 모두 저렴하고 너무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잠깐 나와 바람을 쐬는데 걸어가는 가족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유럽에 와서 느끼는 점은 가족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오늘은 17km를 걸었다.
내일은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도착하는
날이다. 제발 발이 잘 버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