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자유로운 영혼들
2020년 도쿄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케이트보드. 도심 속 일탈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문화이자 서브컬쳐의 주축이 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내 어릴적에는 모래와 흙먼지 가득한 놀이터에서 얼음땡을 하거나 주차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와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담을 넘는 것이 내 기준의 일탈이었다. 대구 칠곡에서 용인 신도시, 어릴 때 한 차례 대이동을 겪었지만 내 주변 어디에도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티비에서 Channel V에 나오는 에이브릴라빈의 Sk8er Boi MV는 힙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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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기숙사에서 항상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강의실로 수업을 가는 같이 밴드를 하던 조금 별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길게 쭉 늘어선 주하이 캠퍼스를 항상 시원하게 활보하고 다녔다. 그때 나는 자전거 가게에서 산 중고 자전거의 바퀴를 열심히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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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친구 생일파티에 엉겁결에 따라갔다가 알게된 또 다른 중국인 친구 하나도 스케이드보드를 겨드랑이에 끼고 걸어왔다. 그는 항상 목에 후지 카메라를 걸고 다니며 웨스트번드(西岸)에 가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이 가장 큰 취미라고 했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이 아마추어 보드 사진가 친구는 한달 전에 웨스트번드로 이사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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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디제이를 배우러 와서 알게 된 수원 출신의 동갑내기 친구는 수원에서 왕년에 스케이트 보드를 무지막지하게 타서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릴 때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신난다고 한바퀴 돌다 발목을 삐던 나와는 다르게 타투도 좋아하고, 본인도 어릴 때 그림을 그려서인지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도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힙해보인다는 것. 예쁜 여자는 찾기 쉽지만 잘생긴 남자는 정말 찾기 힘든 상하이에서 게이를 제외하고 좀 꾸민다고 하는 남자들은 스트리트 웨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대부분이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것 같았다. (다소 주관적인 견해임) 주말마다 상하이의 거리를 활보하다 보면 스케이트 보더를 흔히 발견할 수 있고, 켄다마를 들고다니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 스트리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 락 혹은 힙합.
상하이 양푸에 세계에서 가장 큰 스케이트보드장인 SMP 스케이트보드공원이 있고, 웨스트번드(西岸)에 가면 매번 적지 않은 스케이트보더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도 헬맷을 귀엽게 쓰고서는 곧잘 탄다. 작년에 나는 Xgames 익스트림스포츠대회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직접 눈으로 날아다니는 오토바이까지 보고 왔다. 스트리트 문화에 관심만 있지 깊이 알지 못하는 나에게 이 모든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왠지 모르게 내 주변에는 다 대학을 가고, 직장인이 되는 평범한 모범생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와서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각기 다른 학력과 배경의 사람들과 서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보드를 타는 친구들이 많고, 그들은 단순히 보드를 타고 스릴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순수한 열정으로 새롭게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상하이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뚝섬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보드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2015년에 중국으로 넘어올 당시에는 나는 롱보드를 타는 고효주 밖에 몰랐다......
중국에 있다보니 갇혀있던 나를 깨우는 것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서른이 지나고 왜인지 모르게 나는 뒤쳐진 옛날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유를 만끽할 줄 아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무진장 부러울 때도 많다. 암튼 나도 더 늦기 전에 배워봐야 겠다(조심하면서). 이렇게 버켓리스트에 한 가지가 또 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