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 중국만 빼고
최근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서 지난 11월부터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물론 그나마 가장 개방적인 상하이나 최근 확진자가 없는 지역은 예외. 핸드폰 번호로 지난 14일간 거쳐온 동선 코드를 확인하고 *별표가 있는 경우에는 핵산검사 보고서를 지참하면 사실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운좋게도 나는 지난 4월 청두에서 즐기고 온터라, 지난 11월 취소된 청두익스프레스라는 한국 라이브클럽데이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청두 디제이&밴드 대연합 페스티벌을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나는 다녀왔노라'하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작년 청두에 공연할 기회가 있어서 처음 가게 되었고, 그 때 청두삼림(Chengdu Express)라는 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올해의 일본 후지락페스티벌처럼 코로나 이후 전 로컬 아티스트 라인업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이고, 나는 계속 중국 인디밴드들을 탐구하고 있는 중이기에 한번에 몰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망설이지 않고 다녀왔다. 친구들에게 익히 듣기도 했고, 카메라를 들고 얌전히 공연을 관람하는 상하이와 다르게 한국인만큼 사천 사람들이 잘 논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무척 기대했었다. 놀라운 것은 사실 이렇게나 많은 베뉴가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곳곳에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보면서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시장이 규모가 진짜 작지 않구나 실감했다. 중국 인구가 많다보니 중국의 '소중' (대중의 반댓말) 이 그 규모가 한국과 비할바가 아닌 것이다. 또다른 놀라운 점은, 상하이의 경우 밴드와 디제이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완전 다른 커뮤니티인데, 청두는 다른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주최 측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Chengdu Express와 Chunyou가 되면 대동단결하여 함께 즐긴다.
청두삼림을 통해서 청두 시내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클럽과 라이브하우스를 다 구경할 수 있다. 홍대에 라이브클럽데이가 생기기 이전인 '위대한 락데이' 시절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와 비슷하다. 다만 더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클럽까지 함께 연계해서 운영한다는 점. 라이브하우스에서 라이브 공연을 즐기고 클럽에서 애프터파티로 클러빙을 하는 형태. 물론 커머셜한 일렉/힙합 클럽은 제외. 테크노나 펑크, 레게 음악 등 특색있는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이 상하이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 상하이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현재 Heim, Elevator, All 정도...? 나머지 유명한 클럽들은 거의 Commercial.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엄청 많은데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겨나곤 한다.
물가도 상하이보다 저렴한 청두 사람들의 삶은 느릿느릿하다. 최근 많은 중국의 젊은 사람들이 빠른 템포의 삶에 지치면 청두로 향하고, 거기에서 너무 여유로워 불안함을 느끼면 또다른 도시로 떠나는 듯하다. 지난 4월에 열린 Chunyou는 매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는 나름의 역사가 있는 청두의 지역 페스티벌인데 그 존재를 지난 청두삼림 시즌에 찾아간 한 레코드샵에서 처음 알게됐다. 상하이로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이미 알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페스티벌이었다. 과연 그 명성의 실체가 어떤지 확인해보기 위해 직접 가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시내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렸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유난히 먼 곳에서 열린다고 말들이 많았다. 사실 숙소도 지도를 보고 근처로 예약했는데 워낙 교통편이 열악한 곳이라 새벽에 나오니 차가 한시간 넘게 잡히지도 않아서 그냥 걸어서 돌아갔다가 개고생을 했다. 그래도 씻을 곳도 적당히 없고 전기 장판도 없이 텐트에서 숙박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사실 페스티벌 현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두 가지가 먹을 것과 화장실. 사천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사실 이 정도면 한국 락페의 먹거리 수준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간이 화장실을 계속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갯수가 띄엄띄엄 20개 정도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사실 락페를 갈 때는 화장실 더러운 걸 감안하고 가니까 이 정도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중국에서 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많이 배워서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환경도 한국과 비교해서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들만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었고, 내가 중국에 있다면 다음에도 또 가고 싶은 페스티벌이었다. 여기서 만난 청두 사람들은 상하이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보다 힙했다.
한국에서 최근에 간 락페가 2017년 지산락페이니 이미 4년 전의 일이구나... 그때도 용감하게 혼자 락페를 갔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랑 둘이 가서 풀밭에 누워 잠도 자고 미리 준비해간 것들도 많았으니 훨씬 더 편하게 놀다 올 수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항상 인스타에 뜨는 한국 페스티벌 소식을 보면서 보기 힘든 라인업에 침만 흘렸는데... 이제 코로나 때문에 직접 미국으로 가서 공연을 봐야하나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 든다. 왜 항상 돈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을 기껏 만들었더니 코로나라는 이런 변이... 퇴사 후에 코첼라와 이비자를 꿈꾸던 나의 허망한 꿈은 내 체력이 다한 마흔살이 되어서야 실현가능할런지. 그때까지 나의 열정과 체력이 남아있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