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건물에 둘러쌓여 하늘도 보기 힘든 곳에 살다가 해가 뜨고 지는 것, 별이 움직이는 것, 동서남북이 파악되는 곳에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마음의 여유도 얻었다.
한 눈에 파악되는 작은 동네인 만큼 방울이랑 산책다니다보면 이웃들의 얼굴도 익숙해진다.
처음엔 이 동네의 오지랖이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선을 넘지 않는 오지랖은 서로의 CCTV가 되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 깨달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강아지 산책을 하고, 같은 시간에 커피를 사고, 편의점에 들르면 '안부를 묻는 이웃'이 생긴다. 방울이가 친해진 강아지의 보호자와 동네 정보를 나누게 되고, 방울이를 안고 들어갔던 카페나 편의점의 사장님들이 안고 있으면 무거우니 방울이를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다음부턴 걸어서 들어오라고 말씀해주신다.
점점 그 시간에 사장님은 나를 기다리시고,(사실은 방울이를) 가끔은 방울이 간식을 사놓고 기다리실 때도 있다. 학기 중엔 바빠서 가끔 들르게 되면 힘들겠다며 공짜 커피를 주시기도 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겠다며 명절 선물을 챙겨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나도 사장님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굳이?'라는 의문이 들어서꺼내지 않았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엔, 외출하지 않으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지만 그나마 몇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건 방울이로 인해 만난 이웃들 덕이다. 방울이 덕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방울이는 나를 사람에게로 이끌면서, 정작 방울이 자신은 사람 근처에도 가지 않아 방울이의 과거에 대해 항상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학대 경험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나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하면 정이 넘치는 이 사람들은 '에잇, 나쁜놈' 이라며 같이 그 놈을저주해준다.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눈빛이 느껴지면, 방울이의 과거 사진까지 보여주며 변천사를 말해준다.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방울이가 원래 '귄이 있는' 강아지라고 한다. 이 지역 방언으로 귀염성이 있다는 뜻이란다.
나는 원체 내 삶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도 내 인생에 끼어드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느끼는데, 나의 안부를 물어주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싫지가 않다.
행복이라는게 엄청 멀게 느껴지다가도 정말 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과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고, 하하호호 웃다가 헤어지고, 다음 약속을 기약할 때,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귄있는 사람들이나의 냉소함을 마비시켰고, 지나치게 나만의 테두리를 지키려 했던 나의 마음을 녹였다. 행복해지려면 꽤나 요란을 떨어야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게 자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