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심층리뷰/결말포함] 웨폰 (2025)

현대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공포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by 뇨리

* 영화 <웨폰>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무섭다기보다는 연민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공포 영화임에도 내용의 대부분은 어린이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두려움 부모의 과잉보호로부터 느끼는 불쾌함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여러 사회, 특히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접하는 여러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원인까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회적인 관점 : 아이들이 사라진 시간(2:17)의 의미


아이들이 나간 시간인 2:17은 여러 부분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사라진 아이들이 17명이라는 점에서 2:17은 사라진 17명과 남은 2명으로 볼 수도 있고, 사라진 아이들의 보모 또한 17명이라는 점에서 2명의 피해자와 17명의 가해자로 나눌 수도 있다.


이렇듯, 2:17은 어떤 관계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 주제와 연과 지어 생각해 본다면, 2:17의 '2'라는 숫자는 크게 2가지 의미로 보인다.


첫 번째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17'은 자기 자식을 제외한 나머지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아처를 통해 이러한 관계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 반에서 17명이나 사라졌음에도 아처는 자신의 아들만을 집착하듯 수색한다. 아들이 사라진 17명 중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그는 나머지 16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심지어 아처는 그 17명의 자리에 남아 있는 알레스까지 싸잡은 뒤 관심을 거두어 버린다. 공청회에서와 경찰서에서 그는 자신의 아들은 착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나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경찰이 그러한 증거나 숨겨둔 사실이 있느냐고 묻지만 아처는 뾰족한 근거가 없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꺽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과 아들. 단 '2'명이 전부일뿐이다.


두 번째는, '2'라는 의미를 나와 친구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내면서 한 반에 여러 친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단짝을 사귀게 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 반에서 다른 절친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마음이 맞은 친구는 부모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이고, 힘든 상황을 버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면 부모는 자식이 질 나쁜 친구를 사귀어 아들이 망가지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두렵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찾는 건 부모가 아닌 자신의 옆의 친구다.


영화는 지독하게 부모와 자식, 그리고 친구의 관계를 끌고 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각 인물들이 다른 사람과 부모-자식, 그리고 친구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저스틴'은 선생님으로서 학생을 집까지 태워다 주는 등 인자한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학생에게 집착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지식을 전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지만 왜인지 저스틴은 선생님보다는 학생들의 속마음을 지나치게 알고 싶어 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스틴은 술과 관련하여 문제아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저스틴의 친구는 '폴'이었다. 그녀에게는 그와의 부적절한 관계도 어린 시절 한 번쯤 있었을법한 남사친과의 실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와 헤어지고 아처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친구로서 어려움에 맞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또한, 아처는 영화에서 부모로 등장하고 있으니 그에게도 동일하게 자식과의 관계와 친구와의 관계를 동시에 맺고 있는 셈이다. '폴'에게는 아내인 '도나'가 부모이다. 그들은 영화 상에서 전혀 부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도나는 일방정으로 남편에게 명령하고 있으며, 그가 잘못했을 때에도 마치 부모가 자식을 혼낼 때와 같이 캐묻는다.


이러한 관계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삼각형'의 이미지로도 표징 된다. 이 삼각형 또한 '부모-자식-친구'의 삼각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렇듯 인물들 간의 관계를 2:17과 삼각형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억압 때문에 아이가 느끼는 공포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공포영화와 오컬트 장르를 차용하여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바로 '부모의 억압과 무관심'이다.


이 영화에서 부모의 역할을 가진 인물들은 대부분 과한 걱정으로 인해 자식을 억압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품이 바로 CCTV이다. CCTV는 보통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지만, 실제 역할은 감시의 목적을 가진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부모의 감시와 억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진 아이들의 집에는 모두 CCTV가 달려 있었다. 그러한 집에서 아이들은 일제히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자고 있는 밤에 집에서 일제히 뛰어 나가는 장면은 사실은 무섭게 연출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볼 때에 이상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그 장면의 배경에 깔린 경쾌한 음악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톤이 어둡고, 숨죽이게 하는 적막함, 또는 불안한 음악들이 깔리는데 아이들이 뛰쳐나가는 장면에서만큼은 반대로 경쾌하고 심지어 따뜻하게까지 느껴진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니 그 장면은 부모들이 억압하고 있는 집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 뛰어가는 모습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자유로이 뛰노는 모습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도 동일하게 볼 수 있으며, 결말 스포가 되기 때문에 작성을 하지 않겠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공포는 문 건너편의 누군가가 내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오려 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영화의 초반부에 저스틴의 집에 누군가 밤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자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누군가 불시에 저스틴의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공포이며, 이것은 아이들이 부모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려 할 때에 느끼는 불쾌함과 공포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스틴도 알렉스의 집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자 창문의 틈새를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본다. 이처럼 부모는 계속해서 아이의 방 안으로, 심지어는 아들의 마음속으로 강제로 들어가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공간, 또는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굉장한 공포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러한 아이들이 느끼는 불쾌함과 공포가 그대로 전해진다.


아이가 가정에서 겪는 다른 종류의 공포는 부모의 불화와 무관심이다. 이러한 공포는 알렉스의 집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알렉스는 영화에서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유일한 어린이다. 그런 그의 집에 글래디스가 들어오면서, 집안의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라진다. 이는 영화의 연출에서도 보이는데, 처음에 알렉스의 집은 굉장히 따뜻한 톤으로 느껴진다. (비록 부모와 자식 간 상하 관계는 명확했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은 따뜻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비록 글래디스의 저주 때문이긴 했지만 알렉스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끊어진다. 그 뒤부터는 집 안의 조명이 굉장히 어두워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글래디스가 '부모에게 저주를 걸어서 서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사실은 부부 사이의 불화를 상징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의 알렉스의 적막한 집은 맞벌이 부모가 없는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으로 볼 수도 있고, 불화로 인해 부모 사이에 대화가 없어진 조용한 집에서 아이가 느끼는 공포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굉장히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참신하기도 하면서, 씁쓸한 연민도 느껴진다.



여러 사회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영화에서는 어린이들, 나아가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상에도 여러 문제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왕따, 음주, 절도와 범죄, ㅁ약 등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왜 발생하는가에 대해 영화는 매우 직설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고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폴'은 아내인 '도나'에게 꼼짝도 못 한다. 마치 집에서는 주눅이 들어 온순한 것처럼 보이는 학생이 밖에서는 조금만 자기를 다치게 하면 친구를 폭행하는 문제아의 모습과도 같다. '폴'은 그러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두려움이나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차에 달린 블랙박스 카메라가 지켜본다는 사실에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욱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의 중간에 '동충하초'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내용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개미가 자신의 의지대로 다니지만, 포자가 개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개미는 자유의지를 잃고 기생충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다시 사회에 광범위하게 포자를 퍼뜨린다. 이것은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아이들의 머리를 부모가 뚫고 들어가면 자식의 생명은 사라지고, 부모라는 기생충에 의한 포자가 사회에 퍼져나가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의 메시지로 보인다. 이렇듯 영화는 아주 직접적으로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자식들을 억압하고, 머릿속에 들어가 머리를 부숴버린 부모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글래디스의 주술로도 잘 드러난다. 영화의 중간에 글래디스가 알렉스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너의 아빠, 엄마는 조금 아플 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극 중 어른들도 어린아이들과 같은 미숙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부모들조차도 내면에는 아픈 부분들이 많으며, 부모들의 역할의 총합과 같은 글래디스의 방 안을 부모의 마음 속이라고 본다면 그 방 한가운데는 활엽수가 아닌 가시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부모들은 모두 자신들의 아픔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데, 그 가시를 통해 자신에게 피를 낸다. 그리고, 주술을 위해서는 상대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 마치 과거 자식들의 잘못을 하면 집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머리를 미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느껴졌다. 따라서, 부모들이 자식을 조종하는 방법은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대변되는 체벌과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는 것으로 표상되는 희생을 자신의 아픔에 잘 버무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토로한다든지 강제로 머리를 깎는 체벌 등은 자식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사악한 주술 행위일 뿐이다. 글래디스는 자신의 주술을 마커스에게 걸어 그의 친구와의 관계를 끊게 만들거나, 마을의 아이들을 자신의 지하실에 가두고 억압하는 데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의미인 웨폰(무기)는 과연 무엇인가? 부모들은 나쁜 친구들이나 자녀들을 위험에 빠뜨릴 어떠한 외부의 위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주술로 표현되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계속하여 세뇌시키고 있는 자신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한탄과 체벌, 억압들이 영화의 제목인 '웨폰(Weapons)'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