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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Oct 11. 2023

소극장에서 노래하는 심정으로 글쓰기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는 방법

힘이 들어가면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한다. '힘'이 뭘까 하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란, '결론을 미리 생각하는 마음'이다. 힘이 들어가면 잘 쓰고 싶어지고, 결론을 미리 생각하게 된다. 그런 글은 보통 진부하고 재미가 없다.

'네이버 밴드'에 며칠 글을 올리다 보니, 몇 개를 페이스북에 옮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큰 공연장이라면, 밴드는 소극장이다. 마이크 없이도 관객에게 소리가 전달될 만큼 작은 공연장. 나는 밴드에서 맨얼굴에 청바지, 티셔츠 하나 입고 기타 치며 연주하는 가수 같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면 떨린다. 화장도 해야 할 것 같고, 운동화 대신 구두 신고 무대에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노래인데,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을 신경 쓰다가 노래를 조금 망치는 느낌이다.

그래서 밴드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이곳에서 노래해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 작지만, 조명이 따스하고, 늘 관객이 앉아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글을 몇 개 옮기다 보니, 아까는 글쓰기 창을 켜자마자 부담이 엄습하는 게 느껴졌다.

'오늘 글도 완성도가 괜찮아서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무조건 결론을 미리 생각하는 마음을 낳는다. 노랫말 그 자체가 되어 감정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가수가 아니라, 겉멋이 들어버려 가사보다 기교에 집중하는 가수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같은 가창력을 가졌어도, 무대에 어떤 방식으로 몰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다를 것이다.

결국 그런 것도 실력이라고 한다면,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거나, 소극장에서 더 오래 노래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내가 언젠가 베테랑 가수가 되면, 큰 무대에서 별다른 긴장 없이 내 노래를 펼칠 수 있을까. 그런 가수가 빨리 되고 싶다고 바라기보다는, 오늘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수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지만, 작가라는 호칭도 어색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습작생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쓴다. 무엇 하나를 진지하게 갈고닦으면서,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해나가는 일이 좋다. 하루의 온점을 찍고, 비로소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나연아. 나지막하게 물으면서.

그렇게 내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방식이 무엇이든, 세상에 아주 작은 빈 공간 하나를, 내가 동그랗게 메꿀 수 있다면, 나 자신부터 아주 조금 더 예뻐질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 나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될 거라 믿으면서.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된다면, 덜 불행해도 될 거라 믿으면서.

결국 내가 쓰는 이유는 스스로를 사랑해서이다. 내 목소리를 세상에게 말함으로써, 스스로가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다. 미묘한 차이지만, 세상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먼저 당당해지고 싶은 나다. 그 자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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