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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Oct 11. 2023

나는 멀리서 보면 그냥 자동차다

겁쟁이의 초보운전기

요즘 운전을 배운다. 보행자일 때는 우주공간인 듯 아득하게만 바라봤던 도로에 속해버렸다.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 진입한 사람처럼 새로운 마음이다. 도로가 내 길이 되고, 나는 길 위의 다른 차들과 섞여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돌리는 새로운 일을 해나간다. 자동차라는 새로운 존재를 입은, 새 세상의 일원이 되고 있다.

내 작은 손과 발의 결심에 따라 커다란 자동차는 움직인다. 운전은 그래서 확실히 매력이 있다. 엄마는 이걸 '이동성'이라 부르곤 했다. 남편은 '발이 넓어진다'라고 했다. 물론 그럴 것이다. 내 마음대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니? 심지어 그 도로 위의 차들도 모두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거라니?

그러나 우리는 도로 위의 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좌회전•직진 동시신호, 비보호, 유턴 가능•불가능구간 등 도로는 어찌나 미리 합의된 긴밀한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는 건지. 운전을 배우기 전에는 훨씬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택시 아저씨가 과속을 하면 손잡이를 꼭 움켜쥐곤 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가드레일을 넘어 나를 덮칠 것 같고, 빨간불에도 멈추지 않을 것만 같고,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운전은 길 위의 통제된 규칙을 익히며, 남들과 잘 '섞여'가는 일이다. 그저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중 하나가 되어, 빨간불 앞에서는 앞차 뒤에 단순하게 정지하는 일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전부 다른 자동차를 타고, 다른 음악을 들으며 다른 목적지로 가지만, 보행자 앞에서는 잠깐 멈춰 설 거라는 약속. 우리를 위해 먼저 온 누군가가 좌회전 유도선을 그려 놓았을 것이라는 믿음. 과속감지카메라 앞에서는 제아무리 호랑이가 와도, 감속할 거라는 안전한 마음이 길러진다.

나는 멀리서 보면 그냥 자동차다. 그게 좋다. 자동차는 내 표정을 숨기고 그냥 달리기만 한다. 아무리 차 안에서는 벌벌 떨며 핸들을 잡고 있어도, 밖에서 보면 노란색 차 하나가 하얀색 차 뒤를 졸졸 따라가는 모양새 정도라는 게 좋다. 차선을 바꿀 때 핸들을 확 꺾여버려 차체가 조금 요동칠 수는 있어도, 정지선에서 딱 정지하는 걸 힘들어하더라도, 멀리서 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 게 좋다. 뒷 옆차의 '빵'소리마저 힘내라고 등을 팡팡 쳐주는 친구의 응원 같다.

그 모든 게 아주 몰랐던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좋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해나가고 있고, 매일 도전하는 마음으로 도로에 나간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익숙해질 거라 믿어보는 일이 좋다. 액셀을 도레미파솔라시도 연주하듯 밟아보자는 마음이다. 불안하거나 막막한 마음 따위야, 달리는 도로 위에서 기름처럼 줄어들 것이니.

다음은 기억하고 싶은 연수 선생님의 말씀들이다. 1. 멀리 봐라. 바닥을 보지 말고 앞을 봐라. 시야를 넓혀라. 2. 모든 건 오른발에 달렸다. 초보자는 자꾸 어깨에 힘을 주지만 어깨에는 힘을 빼라. 멈추고 싶으면 브레이크를 밟아라. 달리고 싶으면 액셀을 밟아라. 3. 어차피 해야 한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하다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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