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대신 마법사가 되기로 한 이유
자본주의 세상에서 낭만을 좇기로 한 건 그리 자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남들은 칼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드는데, 나 혼자 지팡이 하나 들고 마법사가 되겠다고 나선 게임 캐릭터 같았다. 20대 때부터 수입은 넉넉지 않았고, 통장 잔고 대신 메모장에 글을 모았다.
그러나 결혼 6년 차, 남편의 사업이 위기에 접어들면서, 나도 생활비 정도를 벌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마치 '취집'한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시나리오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생기면서 메모장 안의 일기들은 휴지조각이 되나 싶었다.
다양한 일에 도전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 면접도 보고, 공기업 입사 지원서도 정말 많이 썼다. 한 번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지만 저녁 시간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어려울 것 같아요" 대답한 날에는 눈물이 났다.
올해의 목표는 생활에 보탬이 될만한 수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6살 아이를 등·하원 시키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아야 했다. 글쓰기로 가능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적은 원고료는 받고 있었으나,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글쓰기 모임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오랫동안 꿈꿨지만, 밑천만 드러내고 끝날까 하는 두려움에 시작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급해지자 어디선가 용기가 불쑥 솟아났다. 그렇게 '언론사에 투고해서 채택되기'라는 거창한 이름의 글쓰기 모임을 기획했다.
그제야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직업 작가' 쪽으로 한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글을 써서 만 원이라도 벌면, 취미를 넘어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한다는 건 함께 쓰는 동료를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진심'과 '가성비' 뿐이었다. 커피 몇 잔 값이면 들을 수 있는 수업료를 책정했고, 그 대신 준비와 피드백에 모든 힘을 쏟기로 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정원이 마감됐다.
▲ 글쓰기 수업 카드뉴스 중 일부. © 서나연
의욕이 앞선 탓일까, 모집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다. 신청서에 가장 중요한 '연락처' 기입란을 빠뜨린 것이다. 입금은 확인되는데 신청자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모았지만, 수업 당일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는 분이 있었다.
수업 몇 시간 전, 전화가 걸려 왔다.
서나연 기자님 맞으신가요? 여기는 오마이뉴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장**님께서 서나연 님 연락처를 문의하셔서요.
수업을 신청한 분이 연락이 닿지 않자, 오마이뉴스 본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 내 연락처를 물은 것이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모임이라고 공지하기는 했지만, 수강생이 직접 전화할 줄은 몰랐다. 덕분에 그분은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 중 쓴 글이 기사로 채택되어 시민기자로 데뷔했다. 이름 모를 직원분의 배려에 감사드린다.
1기 수강생 5명 중 3명의 글이 기사로 채택됐다. 숫자로 보면 성과였지만, 마음은 마냥 가볍지 않았다. 평일 오후, 낮잠을 자거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에 굳이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쓰러 오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글은 결국 각자가 써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글을 정성껏 읽어주는 일이었다. 화려한 이력이나 명성은 없었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질문을 건네는 일만큼은 나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수강생들의 글이 연이어 채택되는 장면을 보며, 이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을 닫고 있던 사람도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는 조금 달라진다. 들꽃이 이름 불릴 때 꽃이 되듯, 글도 읽히는 순간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모임원끼리 피드백을 하고 공감해주는 것도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예상보다 큰 보상이었다. 내가 진짜 '마법사'가 된 걸까 착각할 정도로.
어느새 네 번째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수업료를 올려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많은 돈을 받고 '내가 정말 이 정도를 줄 수 있는지' 자문하기보다는, 적은 돈을 받고 '내가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드리자'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다. 빵집 딸로 태어났다면 친구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사랑을 확인했을 것이다. 나는 빵 대신 글을 나누고 싶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혼자 쓰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쓰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모임을 이끌다 보면 나 자신을 더 자주 일으켜 세우게 될 테고, 그러면 더 끈질기게 '쓰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게 성덕일까, 글쓰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결국 글로 밥을 벌게 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