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적는 글은 지독한 화로부터 시작되는 글이다. 이 화의 대상이 그들일지도 아니면 나일지도 모르며 무작정 써 내려가는 회고의 글이다.
항상 찾아야만 했다. 언제나 제출해야 했다. 나에게 준 저 종이를 다시 반납하지 않으면 항상 책임이 따라왔다. 내 몸보다 더 큰 책임이 늘 따랐다.
그에 반해 정확하게 절차를 지켜 납기를 지킨 저들에겐 달콤한 보상이 주어졌다. 설탕을 먹고 그들은 또 한 번 달콤한 맛을 위해 얼굴 위에 세상의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난 달랐다. 없는걸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나를 속일 순 없었다. 없으면 없다고 해야 했고, 했으면 했다고 말해야 했다. 종이에 그려진 네모 박스를 채우기보다는 내가 깎이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나폴레옹처럼 당당하게 걸어가 원본과 꽤 유사한 종이를 마패처럼 내밀었다.
신장이 1m를 간신히 넘어 키 번호로 줄을 세우면 매번 1,2번을 맡았던 아이는 그날 자신이 앉아 휴식을 취하던 의자를 머리 위로 30분간 들고 있어야 했다.
그날로 다짐했다. 그래도 이게 더 좋다고. 거짓말하고 잠깐의 달콤함을 위해 자신을 조각한 모습들 보다 이게 더 좋다고.
그때였나 너희들과 마주 보며 짓던 말랑한 웃음에 주름살 하나 패인 순간이.
그것만 없었지 내가 못 사는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뛰었고 달렸고 가끔 날았고 피나고 울고 웃었다. 밤에는 눈 감으면 잠들었고 아침이면 소풍 가는 학생처럼 오늘은 무슨 재미난 일을 만들어볼까 기대를 품고 이불을 걷었다.
처음에는 똑바르게 보이던 강물이 시간이 지나면 퇴적물이 쌓여 유려한 S라인으로 변하듯. 내 정신에도 퇴적물이 쌓였다.
이젠 모두 그동안 받았던 설탕을 쌓아두고 입가를 더럽히며 내 입술이 더 찐득하다며 서로 경쟁하곤 했다.
설탕의 절대적 보급량이 줄었다.
어떤 이는 털갈이를 마친 동물처럼 이제 그 선명하던 눈동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어떤 이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부르는 못된 녀석이 되기로 자처한 듯 보였다. 그들에게 더 이상 설탕은 없었다. 악플이 달렸다. 그들의 본능에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판단이 이마 위 핏줄을 서슬프게 올려 팔짝 거리게 만들었다.
눈과 입은 날이 섰지만, 난 알았다. 이마를 보면 바로 알았다. 아직 거기까지 미장을 하진 못한 처지였다. 서로 상반되는 에너지가 하나의 몸 안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저걸 봐버린 후엔 똑같이 행동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는 멋이 없었다. 그 당시의 표현으론 간지가 안 났고, 이해를 돕기 위해 더 저속한 표현을 곁들이자면 짜쳤다.
난 방향을 틀었다. 휘몰아치는 북풍보다는 남서풍을 택했다. 그래도 본인을 깎는 저들에게 저항은 해야 했으니 바람 말고 다른게 되진 않았다.
놀랍게도 온류와 한류는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서로 붙어 다니며 단체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이 에너지 불균형은 단체의 입장에선 태풍과 같았고 그들의 골머리가 노래지면 노래질수록 우린 얼굴에 썩어가는 조소를 폈다.
서로 이해관계가 합의점을 찾았으니 우리를 막을 자는 없다고 생각하며 날뛰었다. 더는 이들의 확장을 막을 수 없었던 그들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었다.
그렇게 다음날 우리는 결국 서로의 부모님과 같이 평소보다는 조신한 등교를 하게 된다.
난 재미 하나의 가치였던 것인데,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난 문제아가 됐다.
그리고 폭풍이 마침내 멈췄다. 하지만 극심한 시베리아 기단이 몰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람을 동반했고 메리 크리스마스의 눈송이보다는 싸리 눈을 무섭게 던졌다.
이 과정에서 난 잘못을 뉘우치고 통감했다기보단, 눈치 보는 방법을 배웠다. 난 나를 마침내 깎았다. 발밑에 떨어진 저것들을 보고 다짐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 울부짖으며 헐떡거리다 삼킨 침이 만들어낸 목 넘김의 감각만이 또렷할 뿐이다.
그렇게 살았다. 조각들이 더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두 팔을 끌어안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틈난 얼굴을 숨기려 붕대를 칭칭 감아 나를 숨겼다. 아니 그렇게 지켰다.
그 후로 6년쯤 지나니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그 누구도 내게 숙제를 주지 않았다. 모든 건 내가 결정해야 했다. 12년을 조종당했던 실험 쥐에게 갑작스러운 자유라니 놀라운 두려움이 심장을 타고 뻗어나가 온몸엔 닭살이 돋았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나. 스스로 뭘 하고 싶었지만 그 무엇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더는 연구원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도 지시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토록 바랬던 자유의 무게를 짊어졌다. 이게 다른 말로는 책임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나의 모든 행동에 대한 대가를 온전하게 내가 받아들여야 했다.
이게 내가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어른이구나. 이제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는 살 수 없구나. 아니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그건 책임감이 없는 거구나 알아버렸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서 강요한 것도 아닌 이 사실에 나는 또 조금 모양을 바꿨다.
그러다 들어간 군대에서 오히려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절제된 자유.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면 생기는 시간으로 나는 시간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사람을 다루는 법도 배웠다. 한때는 강압적이었고 한때는 담요 같았다. 그 둘 중 무엇이 더 효과가 좋았는지 보단, 무엇이 나를 조각하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한 선택 포인트였다. 그 결과 나는 담요가 되기로 했다.
몇 번의 나를 이기지 못하고 송곳으로 변하긴 했다. 그 송곳을 날카롭게 갈아 상대를 겨눌 때마다 상대는 상자를 꺼내 송곳 앞에 내 심장을 가져다 놨다. 그걸 보곤 더 이상 똑같이 행동할 수가 없었다.
전역을 하고 나온 뒤. 어찌 보면 아직 솜털이 창창한 시절. 이때까지 뼈를 조각하며 느낀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잊었다.
이번에 맞이한 자유라는 녀석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새끼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며칠 동안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끈적이는 설탕덩이었다.
나에게 빠졌다. 지독한 나르시시즘.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안쓰러운 새끼였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년이었고,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고,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한 조연들뿐이었고, 내가 세상을 돌린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동굴로 들어갔다. 빛이 들어오지도 않는 동굴. 그 속으로 끙끙대며 들어갔다. 기었고 기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열심히 밑으로 처박혔다고 안심하며 잠에 들었고. 눈 떠 마주한 어둠에 나를 원망하며 다시 깊은 굴 안으로 머리를 박았다.
등에선 진물이 끈적거렸고 매일 검정색 피가 새로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한참 지구를 가로지르고 있을 때쯤 너무 폭신하고 달콤한 상태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렇겐 못 살겠다.
이미 심각해진 몸 상태였다. 숨 한 번 한 번이 쐐엑 쐐엑 소리가 났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뇌는 언제 피클통에 담긴지 모르겠는 오이처럼 음란물이라는 곰팡이가 슬여있었다. 다리는 근육이 다 빠져 아침에 일어날 때면 침대에서 나오는 거부터가 이미 고된 노동이었다. 소화는 잘 못했지만 배는 항상 꼬르륵 소리를 질렀고, 목은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듯이 뻑뻑하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이마는 딱따구리가 칼날을 단 부리로 쪼는 듯 하루 종일 편두통으로 눈가를 찌푸렸었다.
하지만 이렇겐 못 살겠다 느껴버려도 즉시 변화를 꿰찰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싫어서 또 굴 안으로 몸을 열심히 구겼다.
또 시간이 지났다. 저번보다 텀은 짧았다. 다시 생각했다. 이렇겐 못 살겠다. 이번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창창했던 그때. 두려움이 없던 그때. 화가 많았던 그때. 눈 감으면 바로 잠들던 그 시절 나의 하늘색은 여름같이 뜨거웠고 녹음의 산보다 더 창창했다.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시절로. 어디 하나 피부가 까부라지면 붉은 피가 유전처럼 솟아오르던 그때로. 더는 피가 몽글거리는 것은 두고 보질 못하겠다. 나는 변한다. 내 드라마의 위기는 끝. 먼치킨 주인공이 화려하게 그 성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독자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고막을 반쯤 찢어놓는 희열이 이마에 스몄다.
내가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은 운동이다. 할아버지 차고에 박힌 먼지 쌓인 페라리의 엔진을 다시 가동 시켰다. 열쇠를 손에 잡고 손목을 돌려도 차는 컹컹거리며 짖을 뿐 기름을 온몸으로 보내기엔 역부족인듯했다.
계속해서 차 키를 돌렸다. 간신히 차에 시동이 걸렸다. 달력을 보니 일주일. 난 간신히 시동을 걸었다.
막상 시동이 걸린 차에 올라 핸들을 잡으니 소름이 돋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괜찮으려나. 내가 운전을 언제 하고 안 했더라.
그 순간 내 눈에 저게 들어왔다. 와 난 절대 못해 저런 거. 저런 건 진짜 선수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안돼.
머리는 안된다는 말을 계속해서 다양하게 나열했지만, 내 몸은 식은땀을 콧잔등과 겨드랑이 순으로 퍼 올려댔고 가슴에선 출정하는 장군의 군대에서 울리는 북소리가 났다. 귓바퀴에 뿔 나팔 소리가 파고 들어올 때쯤 나는 결정했다.
해보자 까짓것 씨발.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아버렸다. 실패를 위한 도전. 웰빙과 웰니스의 삶보다는 좀 더 치열했다. 난 인생을 걸었으니. 내 목적은 건강이 아닌 생존이었다. 난 죽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살아남았다. 더 난이도를 높여도 계속 숨이 쉬어졌다. 지는 게 싫었다. 저기 거울 속에 숨어 있는 저 새끼가 또다시 웃음 짓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엔 그림자가 항상 나를 조소한 채로 따라다녔다.
밤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머리만 닿으면 자버렸고 아침엔 장기 수술을 끝마치고 마치가 풀린 수면치료 환자처럼 눈을 꿈뻑이며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동안은 양치도 겨우 했고 힘이 없어 세수는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런 날에도 또 운동을 하러 갔다.
살기 위해 방 안에서 땡강을 부릴 때는 죽을 거 같이 괴로웠는데, 나를 죽여버리자고 마음먹으니 코로 숨을 쉬어도 편안했다.
몸이 온전해지니 이제 정신개조를 할 차례였다. 죽으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그 얘기를 내가 스스로 박살 냈다.
그리고 SNS를 지웠다. 중독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부정하던 내 의심을 확신을 가지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맞아 원래 이랬지. 하늘엔 구름이 떠 있고 바람은 살랑거렸고 나뭇잎은 소리를 냈지. 발걸음마다 밑창에 울림이 생겼고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했고 내 얼굴은 미소가 제일 잘 어울렸었지..
달과 태양이 같이 떠있음을 다시금 인지했다.
내가 없어진 저세상은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했다.
주위에 사람이 쌓였다. 이 사람들 모두 아프거나 아팠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 우리가 모여있으면 우릴 막을 존재는 없다고 느껴질 만큼 연대가 강하고 활기가 넘쳤다.
그들과 같이 먹고 웃고 땀 흘리며 나는 진짜 웃음을 되찾았다. 가끔 내가 그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건 SNS의 알람보다 수천 배는 짜릿했다.
이 짓을 제대로 시작한 지가 2월인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티비에선 또 종을 치는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드디어 나는 안정을 찾은듯하다.
이제 더는 죽기 위해 운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래 살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나는 이걸 드디어 즐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을지 그게 지금 나의 고민이다. 내가 이렇게 이겨냈다고 자랑하고 떠들고 동네방네 광고해서 지금 나 같은 사람을 꺼내주고 싶다.
아직 나도 여전히 아프고 병신이고 다 안다고 착각하고 쪽팔리고 실수하고 멋지고 사랑스럽고 지랄 맞고 까불고 박살 나고 아파하고 간지럽고 웃으며 산다.
내가 열반에 올랐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 긴 글을 써 내가 뭘 얻으려 한 것인지. 그것만큼은 기억해 놓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치사하고 불안하고 지끈거리고 담이 오고 무색무취의 계절에 두려움이 가슴에 진동하겠지만, 웃음의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아보련다.
얼굴근육을 찌그러트리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겠다.
그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