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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Nov 10. 2020

일상에도 띄어쓰기가 필요해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좋다. 그리 길지 않은 몇 분이지만 숨 고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클어져 있는 To-do 목록을 오와 열로 나누어 줄 세우며 바삐 걸음을 재촉하다가도, 신호에 걸려 타의적으로 일시정지 버튼이 톡 눌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더욱이 약속 시간 직전에 차도를 사이에 두고 걸린 신호는 설렘과 왠지 모를 긴장까지 동반한다. 횡단보도 건너편의 지인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든다. 상대방만 알아볼  있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인사를 하고 키득키득 웃으며 초록불을 기다린다. 그렇게 당히 예열된 만남은  뜨끈하고 눅진히 즐거울 때가 많았다. 바쁜 일상  수많은 건널목과 크고 작은 모퉁이들에서 적절한 끊어가기와 호흡 정돈의 필요성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생각하곤 한다.


일본에 와비사비(わびさび)라는 표현이 있다.

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 또는 미적 관념의 하나이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발췌)

언뜻 부족해 보이더라도 그 본질과 내면은 꾸밈없이 충만한 상태를 이르는 말인데, ‘와비사비 스타일’로 일컬어지며 미니멀리즘, 무소유의 가치 등이 소개되기도 했다. 내가 추구하는 와비사비는 ‘일상 속 의식적인 여백 두기’이다. 꽉 들어차 무엇 하나 나무랄 구석 없는 완전함도 좋지만, 아집으로 뻣뻣할 때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듯 모자라 말랑말랑할 때 의외로 신선한 자극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심코 마주친 풍경이 몇 마디 격언이나 위로보다도 더 큰 감동을 안겨줄 때가 있다. 억새 수염이 바람 줄기에 나부낄 때, 밭매는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굳센 세월의 흔적을 느낄 때, 군데군데 남겨 놓은 나의 여백이 순간 삶의 일렁이는 윤슬로 꽉 들어차는 벅차오름을 느낀다.

나는 이 지구별 어딘가 한 번이라도 나와 연이 닿았던 사람들이 인종,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짓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위안을 받는다. 시칠리아 골목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침 댓바람부터 카페 앞 파라솔 아래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하루를 시작하고 계시겠지, 몽골의 어느 사막에서 부모님을 따라 관광객들에게 낙타를 태워주며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던 바일라는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며 게르를 청소하고 있겠지, 에든버러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던 댄은 오늘도 애프터눈 티 예약을 받으며 늘 그렇듯 여름휴가는 웨일스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계획을 궁리하고 있겠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할 각자의 고민들에 누군가는 아파하고 누군가는 치유받으며, 또 어느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으리라.

이런 소소한 생각들에 마음이 가닿으면 잔뜩 굳어있던 몸을 이완하고 가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내가 나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처럼 지구 반대편의 내 또래 역시 그만의 세계를 오늘도 열심히 가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몇 칸 조금 더 띄어 쓴다고 아예 못 쓰는 글이 되지 않듯, 가끔 의식적으로 일상에 스페이스 바를 몇 번 톡톡 눌러 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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