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저번 주에 봤잖아.
그니까, 오랜만이잖아? 못 본 사이 액세서리가 많이 늘었네.
-반지 하나 더 낀거밖에 없는데.
귀걸이, 목걸이, 반지, 시계…또 뭐, 발찌도 한 거 아니지?
-혼날래?
잘 어울려, 액세서리. 근데 너는 금만 하고 다니네.
-왜 그런 줄 알아?
왜?
-샤워할 때마다 꼈다 뺏다 하기 귀찮거든.
그게 다야?
-응.
뭐야 시시해. 퍼스널 컬러라도 얘기할 줄 알았는데.
-뭐야, 너. 그런 것도 알어?
남자는 뭐 퍼스널컬러 이런 거 알면 안 되나.
-아니 니가 그런 거 얘기하니까 웃기잖아.
나는 아무래도 가을 쿨톤이야
-저기요, 가을 쿨톤 같은 건 없거든..?
가을처럼 고독하고 매사에 쿨하니까.
-미친, 벌써 안 쿨해.
근데 진짜 가을 쿨톤 없어?
-없어.
왜 없지? 대충 봤을 때 사계절 있고 웜 쿨 있던데.
-에휴. 나한테 얘기하는 것 까진 좋은데 어디 딴데가서 퍼스널컬러 아는 척 하지 마.
왜! 가을 쿨톤 없으면 겨울 쿨톤이라고 하고 다닐래!
-에효 맘대로 하셔.
뭐 겨울쿨도 없어?
-그나마 겨울쿨은 있어.
그럼 오늘부터 내 퍼스널컬러는 겨울 쿨이다.
-그거 그냥 자기가 막 그렇게 정하는 거 아냐.
내 퍼스널컬러는 내가 정한다.
-어휴.
그게 진짜 퍼스널이지.
-예예, 겨울쿨씨.
만족한듯한 너의 미소.
저게 바로 자기 퍼스널컬러는 자기가 정하는 겨울쿨톤의 쿨-한 미소인가.
이 유치하고 어이없는 대화가 화장할 때마다 생각난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새어나오지만 덕분에 화장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어디야?
-왜
그냥
-비밀
집이야?
-왜
말해줘 그냐아앙
-비미이일
어디냐고
-네가 올 수 없는 곳
그런 덴 없어
-물리적으로 지금 올 수가 없어
뭐 해외는 아니잖아
-해외는 아냐
그럼 내가 갈 수 없는 곳은 아니네
-못 와
어딘데
-왜 자꾸 물어
보고싶으니까
-뭐?
보고싶어. 너 또 듣고싶어서 일부러 못 들은 척 했지?
-뭐래
어딘지 좀 말해줄래
-오려구?
응
-못 온대두
지금 갈게. 10초컷 한다 해도 갈래
-10초컷까진 아니더라도 진짜 조금밖에 못 봐. 그리고 여긴 너무 멀어
그렇게 먼데를 가면서 나한테 왜 말도 없이 가
-그건 내맘이야
너무해
-음…
어딘지 알려줘
-바보
여기서 지금 차로 4시간 17분 걸린다고 나와
-봐, 못 온댔지
지금 그리로 갈게 드라이브도 할겸. 나 운전하는 거 좋아하잖아
-안 돼, 뭘 지금 와. 와봤자 한 시간도 못볼텐데?
일단 갈게. 나 도착할때까지 잠들지만 마
그러더니 정말 네가 왔다.
4시간 넘는 시간을 달려서.
-도착했어? 지금? 아니 진짜 올 줄 몰랐어. 나 진짜 한시간도 같이 못 있는데. 너 이렇게 먼길왔는데 내가 미안해지잖아.
괜찮아, 미안해 할 필요없어. 오히려 내가 고집부려서 너한테 미안하지.
그리고 30분 정도 드라이브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너는 다시 갔다. 이 정도면 됐다는 듯이.
나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런 적 첨이다? 20살인줄 어쩌구저쩌구
보고싶었어 어쩌구저쩌구
그래도 얼굴보니 좋네 어쩌구저쩌구
담에는 이렇게 멀리 갈 땐 말 좀 미리해주고 가 어쩌구저쩌구
이거 뭐 분리불안도 아닌데 나 왜이러지 어쩌구저쩌구 얼굴 보니 안심돼 어쩌구저쩌구.
다 꿈결같이 흩어지는 말이었는데 자려고 누우니 자꾸 생각이 났다. 네가 주고간 마카롱 4개를 물끄러미 보다 냉동실에 넣었다.
“그냥 마카롱 아니고 뚱카롱. 출발했을 때 이미 늦은 시간이라 문 열린 곳 겨우 찾았다?”
귀여운 너의 생색도 함께 냉동실에 꽁꽁 얼려두고 싶었다.
다 별 거 아냐. 지나면 그뿐인 그런 것들.
그렇게 말하는 네 옆모습은 슬프고 처량한데도 왜 그토록 아름답고 성숙해보였는지.
지나면 그뿐인 그런 것들
지나면 그뿐인
지나면 그뿐
인 것들
지나면
다
별 거 아냐
꼭꼭 씹어삼키듯 다부지게 발음되는 모든 음절들,
그런데 힘은 빠져있는 느슨하면서 강한 묘한 말투.
옆 모습.
한 손엔 핸들, 네 화각에 걸려 얼핏 보일 내 왼쪽 옆얼굴, 살짝 열린 창문, 그 틈으로 들어오는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 그런데 왠지 모르게 따뜻한 밤공기.
다 별 거 아냐?
네가 그렇담 난 그렇게 믿고 싶어져.
4시간 17분과 30분
시간의 궤적
드라이브
대화
너는 견고한 어른.
나는 그게 참 든든해, 너는 멋져. 너는 어른의 방식으로 순수를 말해서 나는 매번 그 점에 한사코 반하고 말아.
결국 남겨지는 덩어리는 그런거더라.
순수한 감정, 진실, 진심, 표면이 아닌 이면의 것, 포장되지 않은 알맹이.
나 출근 잘 했어요. 피곤하지?
-응, 피곤해.
에고… 출근은?
-나 휴가썼어. 오늘부터 쭉- 쉬어, 한 일주일?
하, 휴가일정은 미리 좀 알려줄 수 있지 않나.
-그런 거 비밀인데.
나도 낼부터 쉴래 그럼.
-왜
그냥, 나도 파업이다.
-난 파업이 아니라 굳이 따지면 ‘휴업’이야.
나는 파업.
-그러시던가.
그러더니 너는 다음날 날 따라 진짜 연차를 냈다.
휴가일정, 미리 말 해줄 수도 있었는데.
그랬다간,
너에게 미리 알려줬다간,
네 생각에 온 휴식의 시간을 바치게 될까봐.
그건 결국 진짜 ‘휴식’이 아니니까.
나는 지레 겁먹었던 것이다, 바보처럼.
내가 지금 어딘지,
언제 휴가를 갈 건지가 아니라
이게 진짜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