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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Mar 18. 2017

봄, 연인 같은 운동화와 함께 #1

예쁘면서 오래 신어도 질리지 않는다.

 봄이 오면 운동화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아지랑이와 함께 스멀스멀 올라온다. 운동화 밑창이 다 닳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1년을 동거동락할 운동화이니 이번에 새로 살 운동화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운동화를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이다. 첫째, 예쁘면서 오래 신어도 질리지 않아야 할 것, 둘째, 평소에 입는 옷에 잘 어울려야 할 것, 셋째, 발이 편해야 할 것. 올해 봄에도 운동화도 사려한다. 운동화를 새로 장만하는 겸 운동화를 고를 때 고려하는 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1. 예쁘면서 오래 신어도 질리지 않는 것

 2. 평소에 입는 옷에 잘 어울려야 할 것.

 3. 발이 편해야 할 것.


 

 세 가지 조건을 수첩에 메모해놓고 보니 ‘연인'이 떠올랐다. 오래 봐도 예뻐 보이는 사람,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편한 사람. 가장 많이 신고, 곁에 두는 신발이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 연인 같은 신발을 고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연인 같은 신발을 고르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예쁘면서 오래 신어도 질리지 않을 것


 고전 운동화의 멋|

 고장 난 아이폰4를 몇 년 동안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서랍을 열 때마다 아이폰4의 칠흑같은 색상과 직육면체의 완벽한 비율을 보고 감탄한다. 아이폰4는 시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는다. 새로움과 유행, 시간이 따라잡지 못하는 멋을 가졌다. 이런 명작은 시간을 넘어서는 멋이 있다.


 운동화에도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판매되는 명작이 있다. 운동화 브랜드들은 고전 명작 운동화 그대로, 또는 현대 디자이너들의 감성을 가미시켜 변화를 준 고전 운동화를 선보인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찾는 고전 운동화는 오래 신어도 쉽게 진부하지 않다. 유행에 뒤쳐지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고 싶다면 고전 운동화를 사기를 추천한다.


 나이키의 대표 고전 운동화는 에어 시리즈가 있다. 나이키 에어 기술을 만든 루디는 원래 나사의 기술자였다. 루디는 우주복 헬멧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스를 고무에 주입하는 기술을 운동화를 만드는데 적용했다. 이것이 나이키 신발에 투명한 공기층을 만드는 시초였다. 나이키 에어 맥스는 중창에 공기층인 투명한 고무층이 있다. 반면 나이키 에어 포스는 공기층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나이키 에어 포스 시리즈 중 흰색 에어포스 1(White on White라고 불린다.)은 많은 나이키 운동화 수집가들에게 최고로 손꼽힌다.

나이키 에어포스1 (White on White) (c) http://www.shoeselluk.com/


 아디다스 운동화의 고전으로는 이큅먼트(EQT)가 있다. 아디다스의 창립자였던 아디 다슬러(AdiDassler 또는 Adolf Dassler)는 천재 신발 기술자였다. 그는 현재 존재하는 많은 전문 스포츠 운동화를 만들었다. 비록 나치에 부역했다는 논란은 있지만 그는 운동화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디는 사업가라기보다는 기술자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걷고, 뛰기 편한 운동화를 만들까 고민하는 공학자였다. 아디는 항상 디자인과 마케팅보다 신발의 기능과 품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아디다스 이큅먼트는 창업자 아디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큅먼트는 디자인을 최대한 단순화하되, 기능성에 집중을 해서 만든 운동화이다.

아디다스 이큅먼트 러닝 서포트 93 (c) https://hypebeast.com


 푸마를 만든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는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디 다슬러의 형이었다. 두 사람은 같이 사업을 하였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다툰 후 결별했다. 두 형제는 각자의 회사를 세웠고, 운동화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되었다. 푸마가 만든 대표작으로는 클라이드가 있다. 클라이드라는 이름은 1970년대 농구 스타 월트 클라이드 프라이저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선수는 직접 운동화 클라이드를 디자인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클라이드는 운동화의 갑피를 타고 흐르는 유려한 능선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푸마 클라이드 (c) http://about.puma.com


 뉴발란스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이다. 1906년 창업자인 윌리엄 J. 라일리는 세 갈퀴로 나뉜 닭발이 중심을 지탱하는 모습을 보고 완충 신발을 떠올렸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뉴발란스 회사의 모태 기술인 ‘아치 서포트’를 개발했다. 뉴발란스의 유명한 고전 운동화로는 뉴발란스의 N 로고가 처음 붙여진 모델 320과 전 세계 판매율 2위인 스웨이드 운동화 574가 있다.

뉴발란스 574 클래식 (c) http://www.newbalance.com




운동화와 관계 맺기|

 오래가는 아름다움을 찾는다고 무조건 고전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운동화 브랜드에서 열심히 개발한 신상 운동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운동화 디자인에서 어떤 부분이 마음이 드는지 해부한다. 그러면서 운동화의 소재, 무늬, 색상, 형태, 질감, 무게, 라인 등을 보고 마음껏 상상력을 펼친다. 거칠게 마감 처리된 갈색 원단으로 만든 운동화를 보면서 오래된 나무 상자를, 회색 니트 운동화를 보면서 회색 스웨터의 따뜻함을, 오돌토돌한 회색 운동화를 보면 가파른 암벽을 떠올리곤 한다.


 이는 추상 미술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추상 미술은 화가가 자연에서 받은 인상, 감정, 느낌 등을 점, 선, 면으로 표현하려는 예술 사조이다. 추상화를 통해서 화가가 어떤 것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더라도 감상자는 무한한 상상을 한다. 운동화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디자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감상을 한다.


 감상은 구체적으로 한다. 운동화를 표현할만한 명사를 떠올린다. ‘빈티지 웨딩드레스’, ‘그라피티’, ‘중학교 때 체육복’, ‘황금’, ‘클럽’, ‘다스베이더’, ‘초등학교 책가방’ 등. 이중 친근하거나 끌리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운동화를 구매 선택의 후보로 올린다.


운동화에서 구체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운동화와 신는 사람 사이의 결속을 선명하게 해준다. 운동화에서 심상이 떠오른 순간 운동화와 신는 사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므로 그 운동화는 상품이 아니라 정이 담긴 물건이 된다. 소유자와 밀접하게 가까운 일기, 앨범, 장난감 등을 쉽게 버릴 수 없듯이 신는 사람과 연관성이 생긴 운동화는 쉽게 버리기 힘들다.


 여행에 빠져있을 때 운동화를 급하게 사야 했던 적이 있었다. 운동화 매장에서 유달리 눈에 들어오는 색상이 있었다. 하늘색이었다. 시원한 하늘색을 보니 ‘자유’가 떠올랐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즐기고 있을 때라서 필자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색 운동화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랐다. 그렇게 운동화와 친밀한 관계를 만드니 운동화를 신는 동안은 단 한 번도 신발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을 할 수 없을 바쁜 시기에도 그 운동화를 보면 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정을 주고 줬던 운동화를 밑창이 다 닳아서 버릴 수밖에 없었을 때까지 고집했었다.


 운동화를 보고 떠올리는 개인의 상상은 브랜드가 운동화를 만들 때 의도한 컨셉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아디다스 ZX500과 자르비스의 컬래버레이션 운동화의 경우는 수영장을 컨셉으로 했다. 운동화의 전체 색상은 수영장에 가득 찬 물과 같은 파란색이다. 운동화 밑창의 모양은 수영장의 벽과 바닥의 타일을 연상시킨다. 이런 컨셉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소비자는 이 운동화를 보고 파란색 페인트나 요술 램프 속 지니를 떠올린다. 하지만 제작자가 그림을 그릴 때 의도한 방향과 감상자가 그림을 보고 느낀 인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추상 미술의 매력인 것처럼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고르는 과정도 디자이너의 컨셉과 구매자의 상상이 정답과 오답의 관계일 필요는 없다.

아디다스ZX500과 자르비스 컬래버레이션 운동화(c) http://www.sneakersnstuff.com



운동화 디자이너의 상사 디자이너가 되기|

 아무리 운동화가 전하는 이미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정말 예쁜 운동화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비판의 날을 최대한 날카롭게 세우자. 만약 우리가 이 운동화 디자이너의 상사라면 어떤 지적을 할 것인지 고민하면 여러 운동화 선택지들 중 상당수가 걸러진다. 운동화가 너무 길다, 복숭아뼈가 조금 더 보였으면 좋겠다, 운동화 끈 모양이 납작했으면 좋았을걸.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상사인 것처럼 이런저런 지적을 하면서 불만이 있는 운동화를 선택지에서 배제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선택될 운동화가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때부터는 타협이 시작된다. 운동화 끈은 따로 사면되지 않을까, 메쉬 소재 구멍이 이 정도로 큰 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 설포가 짧은 것 같지만 이 정도면 봐줄만하지. 이런 생각 노동은 누가 정해놓은 답도 없어서 더욱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을 하다 보면 1시간을 훌쩍 넘어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이렇게 운동화를 고르며 매장에서 머물다 보면 매장 사장님이 눈치를 주실 수 있다.

“뭐 찾으시는 것 있어요?”

이 질문은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언제까지 죽치고 있을 것이냐는 핀잔이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잔뜩 움츠렸었지만 언제부턴가 뻔뻔하게 혼자 살펴보겠다고 대답한다. 적게는 7만 원 많게는 20만 원까지 드는 운동화인데 남의 시선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운동화 한 짝 가지고 예술 작품 고르듯이 고심하는 모습은 어쩌면 과장되어 보인다. 그렇지만 곁에 오래 머물 물건을 살 때는 초반에 들인 고민과 탐색의 시간이 길수록 기다림과 노력에 따른 보상 심리로 더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김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에서 대학생 때 디자인이 잘 나온 어느 회사의 노트북이 너무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얇은 지갑 사정과 소유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큰돈을 들여서 노트북을 샀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김정운 교수는 그 노트북 산 후 큰 행복을 느꼈고, 노트북을 열 때마다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느낀 간절함은 그것을 얻은 후에 행복을 더 크게 만든다.


 지금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필자의 운동화 선택 방법을 소개했다. 운동화를 사는데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은 필자가 운동화를 고르는데 들이는 노력과 시간만큼 심혈을 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 글 다음에 올릴 글인 <봄, 연인 같은 운동화와 함께#2> 중에서 발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발에 대한 내용은 꼭 읽었으면 한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건 발 건강과 관련해서 알아두면 정말 유용한 정보를 많이 만났고, 다음 글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젊어서부터 몸조리 잘 하라는 잔소리를 들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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