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O낙 Sep 20. 2022

4. 나쁜 놈 둘이 더 나쁜 놈 하나를 잡는거지.

이원태 <악인전(2019)>

 극 중, 수배중인 범인으로 나오는 ‘강경호’는 독특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제시된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여성 혹은 어린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지만 강경호는 그렇지 않다. 성별, 나이에 관련없이 살인의 대상으로 삼는다. 영화 “악인전”은 이렇듯 인물의 행동반경에 초지일관 큰 제약을 두지 않는다. 강경호는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 중 하나로 ‘인물의 삶과 죽음이 한 손에 들어오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한다. 즉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각각의 상태를 한번에 지닐 수 있는 상황을 뜻하는데 이는 영화 전반적으로 확대되어 다른 인물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선인과 악인 양쪽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 ‘장동수’와 경찰과 조폭의 경계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 ‘정태석’이 대표적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이 세 인물 모두를 악인으로 통칭하고 있다.


 첫 번째 인물인 ‘장동수’는 나쁜 짓을 일삼아 다니는 조폭의 우두머리이다. 불법 도박장 사업을 운영하여 커다란 돈을 불러모은 이 인물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악인”의 표상이다. 그가 조폭으로써 행하는 모든 악한 행동의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영화는 비 오는 날 장동수가 소녀에게 자신의 우산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관객들이 알지 못했던 또다른 이면의 모습이다. 그런 장동수의 행동을 보며 정태석은 그가 깡패니까 그가 주는 것은 함부러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그가 본질은 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가 겉모습은 비단 조폭일지라도 저지르는 모든 행동을 섣불리 악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두 번째 인물인 ‘정태석’은 장동수와는 반대로 정의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찰을 직업으로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하는 행동을 조폭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심지어는 조폭과 손을 잡고 수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정태석이 조폭과 경찰의 경계에 가장 위태롭게 놓여지게 되는 상황이 있는데, 바로 상대편 패거리가 습격했을 때다. 이 장면에서 정태석은 장동수와 손을 잡은 상태이므로 즉 장동수 패거리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장동수의 편에 서서 행동하게 되고 결국 그는 상대방의 우두머리 격인 인물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지금껏 정의와 악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던 정태석은 이 상황만큼은 완전한 악의 편에 서게 된다. 그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내 회복된 모습을 보인다. 그의 모든 행동은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졌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올바르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

 세 번째 인물인 ‘강경호’는 이전의 두 사람과는 다르게 천성이 악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영화에서 일체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쾌락과 본인의 만족만을 위해 살인을 일삼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판장 앞에서는 본인이 죄가 없다며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행동에는 장동수나 정태석처럼 이유가 없다. 그 행동 자체를 행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강경호의 심문 장면에서 정태석은 이른바 그의 “인생 콘셉트”에 대해 질문한다. 정태석이 정의의 경찰을 콘셉트로 하여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콘셉트가 없다. 그저 살다보니 살아졌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재판 장면에서 강경호는 선한 얼굴을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야말로 ‘진짜 악마’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이 후 카메라는 강경호의 대사 이후 정태석의 얼굴을 비춘다. 그는 강경호가 언급한 ‘선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마지막 장면, 범인을 잡은 정태석은 표창을 수여받고 스스로 자수를 한 장동수는 강경호와 같은 감옥에 수감된다. 극 중 인물들의 “콘셉트”로써는 이것이 옳은 결말이지만 관객들에게는 떨떠름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정태석을 경찰을 떠나 한 명의 악인으로 보일 수 있도록 설정해두었기 때문이다. 정태석은 본인을 ‘선한 경찰’로 콘셉트를 잡았지만, 행동의 선과 악은 결코 원하는 대로 결정지을 수 없다. 즉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쓰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영화는 다른 세 부류의 악인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 스스로가 이야기를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악인이라면, 여기서 정말로 심판 받아야 할 인물은 누구인지. 애당초 우리가 인간이라면, 과연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감히 심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3.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