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책기록

by 물결


제가 본 북유럽의 바다는 눈이 물들도록 검푸른 빛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이슬란드의 바다도 그랬고, 덴마크에서 스웨덴을 넘어가면서 본 그 긴 다리 아래 출렁이던 바다도 그랬습니다. 루시드 폴. p. 36.


열기로 뜨거운 한국의 여름날. 내 방에서 루시드 폴님과 마종기 시인님이 서로에게 썼던 책을 읽으며 긴장의 숨을 어루만졌다. 루시드 폴님도 나와 같은 나이에 같은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는 점이 나에게 동질감과 안도감을 준다. 그는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검푸른 바다를 보았다고 한다. 나도 곧 그 출렁이는 바다를 두 눈으로 볼 것이다.


한 학생 생각이 났습니다. (중략) 어느 교수도 그를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박사님께서 그 친구를 박사과정 학생으로 받아주기로 약속을 할 당시 그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이 날 안 불러주면, 나는 더 공부할 곳이 없어요.” 루시드 폴. p.52.


8월이 되고서 나서 나는 미래의 거센 바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스웨덴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스스로 선택한 유학 앞에서 왜 이렇게 캄캄해지고 두려워지는지 혼란스럽다.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2024년, 1년 동안 덴마크에서 본 별천지와 같던 아름다움도 떠오르지만, 그와 반대로 내가 길거리에서 겪었던 인종차별들, 아시아인으로서 겪었던 크고 작은 모멸들, 슬픔들, 눈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에게 침을 뱉거나, 아시아인을 폄하하는 말을 서스럼없이 하곤 했다. 북유럽에서 나의 외모는 확연히 눈에 보이고, 은근한 편견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란 어렵다. 현재 스웨덴은 이민자들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타 국가 사람들에게 관대해지기 어려운 상황도 이해하고 감수해야 할 터이다.


돌이켜보면 음악을 시작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문학을 하시는 선생님은 홀로 글을 쓰는 작업이 당연하게 느껴지기겠지만, 여러 소리를 모아야 하는 음악인에게 혼자라는 사실은 때로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지독하게 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도대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싶지만, 이미 너무 오랫동안 혼자 음악을 해와서인지 더이상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앨범을 한 장 한장 내고 곡을 하나하나 쓸 때마다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과 저의 한께가 쉽게 바닥을 드러내지는 않을지, 더 넓고 깊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드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여러 동료의 영향권 밖에 있는 제 위치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몇 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는 또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겠지요. 루시드 폴. p.41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했다. 엄마는 내가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의 ‘애뜻한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참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나의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과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엄마 자신보다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 엄마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이미 마음으로 동하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새로운 사람, 새롭게 하게 될 일이 내게 바람 곁에 스르르 누운 갈대처럼 몰려있다.


선생님의 시구 중 어머니를 '구제 신발'을 신은 '꿈처럼 무용만 아는' 분으로 묘사하셨던 시구가 기억이 납니다. 올해 내내 그 시구가 맴돌았습니다. 마치 제가 그분을 직접 뵌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꿈처럼 음악만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자각하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을 보는 방법과 시각이 '음악'으로 굳어지는 걸까요. 로잔의 가을은 고국보다 쌀살합니다. 서머타임이 끝나면 밤은 더욱 성큼 다가오겠지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니만큼 곡을 쓰기에도 좋고, 시를 읽기에도 더얿이 좋은 시간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여행에서 돌아오신 이후로 많은 시들을 쓰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가을 속에서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라며, 건강하십시오. 또 편지 쓰겠습니다. 로잔에서 윤석 올림. p.71.


떠나기 전, 나는 내 양심을 향하여 당찬 다짐을 한다. 나는 나의 목표와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의 꿈을 믿으면 못 해낼 것이 없다고 믿는다. 시기의 길고 짧은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김장하 선생님, 홍순명 선생님, 구랑실, 조병헌 선생님은 뜨거운 횃불처럼 우리네 길을 밝히고 있다. 나도 사회로부터 윤택하게 받은 것을 나누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이다.


직접 만나본 코엘료는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조금 권태로워 보였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의 작품 중 그나마 저에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오 자히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고향인 리우에 대한 질문과 다른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리우의 바다'에 대해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답변을 하더군요. 그는 리우의 바다에 대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리, 학교가 모든 기억의 전부라고 했지요. 아마도 관광엽서에서나 봄직한 코파카바나copacabana, 이파네마ipanema, 레블롱lebon과 같은 유명한 해변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 같았고, 그런 바닷가에 대한 평범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의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루시드 폴. p.94.


권태로움의 사전적 의미는 알겠지만, 나는 그것을 진정으로 느껴본 적은 없다. 권태로움을 직접 느끼면 어떤 샹각이 들까? 사전적 의미는 뇌로 알지만, 느껴본 적 없는 단어들이 내게는 많다. 나에게 세상은 발견하고 경험할 것들로 넘쳐난다. 권태로움도 초롱초롱한 질문자 앞에서는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코엘료는 다음 약속이 있다며 부랴부랴 집을 나섰고, 잡지가 기자 분은 계속 사진을 더 찍었습니다. 그사이에 저는 집에서 일하고 있던 40대가량의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브라질 사람 같아 조심스럽게 포르투갈어로 말을 걸었지요. 사마라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포르투갈어로 말을 거는 동양인이 너무나 반가웠는지 음악 이야기, 여행 이야기, 그녀의 고향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 이름을 빽빽하게 적어주었습니다. 저 역시 너무나 좋아하는 제카 파고징유zeca pagodinho부터 마리나 몬치marisa monte와 다이엘라 메르쿠리daniela mercury에 이르기까지 신나게 적어내려갔어요. 그녀는 떠나는 저에게 혹시다로 브라질 여행을 가게 되면 항상 몸 조심, 지갑 조심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사라바!'라고 인사를 하고 아쉽게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루시드 폴. p.95.


노래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지 안다. 노래는 사람을 살리게 한다. 인류는 노동을 하며 노래해 왔고, 잠이 들지 못하는 아가를 위해 엄마들을 정성껏 노래해 왔다. 노래는 하루를 변화시키기도, 순간을 더 창조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뉴스에 언급되는 제 모습을 스스로가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멀었구나 싶었습니다. 나에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값싼 허영심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런 허영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저를 다시 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많이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는 무언의 표시를 언론이 대신해주었기에 후련함을 느꼈던 건지, 좀더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된 또다른 '나'를 보면서 그걸 즐기고 있었던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루시드 폴. p.106.


값싼 허영심에 매료되기 얼마나 쉽상인지 느낀다. 자그마한 허영심에도 허약한 나의 마음은 금방 파르르 동나고 만다. 칭찬일색, 허영심, 인색함, 도시의 차가움에 익숙해지기보다 나의 발전과 성장과 현재와 미래를 양심적으로 채우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책임감은 때로 나를 우뚝 서게 한다. 그러면서도 부모님과 이 세계과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은 나를 하늘로 둥둥 뜨게 한다. 그들이 있어 두렵지 않고, 내 곁의 이들 때문에 내가 이곳까지 당도했다는 것을 안다.


문득 오늘 아침 하늘을 보았는데 순간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머물자. 내가 믿을 수 있는 결과를 낼 때까지'라고 스스로에게 답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영국 학교의 교수님으로 계신 어느 은사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결과에 네 욕심이 들어가면 논문에서 금방 표시가 난다'라는 말씀이었지요. 저에겐 매우 날카로운 질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많이 정리했습니다. 스스로 2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지금 이 순간부터 무모할 정도로 계속 반복을 거듭하기로 했습니다. 만일 미약한 오류라도 보이면 그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그러지 못하면 논문을 쓰지 않거나, 오류가 없는 부분만 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부분의 결과로 지금 교수님이 염두에 두시는 저널에 투고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루시드 폴. p.108.


나의 촉감과 촉수가 가진 돌기 성분인 ‘민감성’을 관찰한다. 나는 미묘한 느낌을 읽고 그 느낌에 물처럼 풍덩 들어갈 때가 많다. 그 작은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투명하고 순수한 눈에 욕심, 거짓, 치졸함, 교활함은 눈빛에 쉽게 읽혀 보인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보는 이들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니 나의 생각을 항상 선에 가까이 두고 베품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 안의 베품, 인내, 미소를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더 좋은 할머니가 되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많은 평론가들이 내 시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해석할 것도, 분석할 것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내가 정말 무식해서만일까요. 나는 시를 분석의 대상으로나 관념의 방법학으로는 쓰지 않습니다. 아니, 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문학은 내게 너무나 소원한 존재입니다. 윤석군의 음악에서 내가 느끼는 가사와 음악의 아름다움이 더이상의 학문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그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고, 그것만으로 늘 싶이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종기. p.114.


모두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 모두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노래는 분명 넓은 이해심을 담고 있다. 모두가 아는 용어로 현상을 설명하는 순간과 그 사람은 참 멋지다고 느끼곤 한다. 들어주는 이, 풀어주는 이, 설명하는 이, 이해해주는 이를 참 닮고 싶다.


친구의 진로, 의술, 사랑, 실패한 결혼....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저는 우리가 나누었던 그 밤의 이야기들이 이미 쌀쌀해진 11월, 눈이 쌓인 알프스 산맥 그 국경의 밤에 아직 녹지 않고 걸려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시드 폴. p.181.


가여워. 사람들이 가여워. 불쌍해. 인간들이 불쌍해. 내면의 목소리가 속상인다. 커가며 커지는 점은 이상하게도 인간에 대한 가여움과 연민의 감정이다. 때로는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반드시 울어야만 하는 때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눈물이 내 눈 속에서 고여서 다음 차례에 더 많은 울음을 가을날의 은행잎처럼 쏟으리란 점을 직감과 몸으로 안다. 나는 이젠 더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고 싶다. 공책의 글씨가 틀려도 종이 한 장 전부를 찢어버리지 않는다. 책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보아도 겉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의 실패, 실수에 집중하여 좌절하기보다 극복, 과정의 반복에 집중하여 긍정하고자 한다. 그래서 실패나 실수가 이제는 인간의 삶의 필수 코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수만 있던 어린 시절에는 실패를 하면 삶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실수와 실패를 거듭한 어른으로 어떻게 타인을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월급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무려 5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귀국을 했던 때입니다. 그때는 고국이 가난해서 국적기도 없었지요. 물론 직항도 없었고요. 고국이 점점 가까워오던 시간에 비행기 기내 방송에서 갑자기 '여기부터가 한국입니다. 30분 안에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한국어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반사적으로 비행기의 작은 창을 통해 및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마종기. 2025년 8월 13일


물론 2025년의 한국은 더 발전하고 부유해졌지만, 나에게도 해외로 떠나는 특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복이 있는 나는 이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이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없고, 타국을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점을 안다. 스웨덴에서의 공부를 선택한 나는 그 특권을 다른 이에게 누릴 수 있도록 또 전달해야만 할 것이다. 무섭고 복잡하고 반짝이고 더럽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모두에게 바른 사람, 누구에게나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환원이라는 책임감의 환영을 풍선으로 잡아들고, 내 손 끝에 달린 수많은 사랑 방울들을 환하게 매달고 나는 나아가고 있다.



2025年 8月 1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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