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Hopper-Hommage에 대한 감상
미국에 온지도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오늘은 룸메가 넌지시 가지고 싶다고 말한 해먹을 주문했다.
그 애가 가지고 싶은게 뭔지 알아서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나,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으나 외로운 건 마찬가지다.
익숙한 고향으로 돌아간다해도 달라질 건 없다. 어차피 막막한 문제들, 진로, 돈, 가족, 신앙 모든 문제들이 아직도 등을 꼿꼿이 펴고 날 기다릴 걸 알기에 나는 사실은 아무것도 그리운 것이 없다. 오히려 이걸로도 부족해 더 먼 곳으로,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런데 도망쳐봤자 또 마주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그냥 이제는 포기하고 가만히 나를 마주보고 앉아있다.
내가 사랑하는 영어를 위해 결국 나는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다. 내 열정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으로는 지속가능한 달리기를 할 수가 없어 주저앉아버리고 싶어진다.
흰 도화지에 새 한마리만 그려넣으면 주위가 온통 하늘이 된다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니까, 내가 나 자신으로 꼿꼿이 서있기만 하니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저 똑같을 뿐이다.
고민 생각 외로움 부담감 무력감. 하고싶은 것을 위해 살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오는 억울함과 불안감이
온통 엉망으로 뒤섞여 하루를 꾹꾹 채운다. 과연 이대로 죽지않고 안전하게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해놓고도 누구 그림인지 몰랐는데. 이 사람 그림이었다.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오후 빨간 커피잔이 탁자에 놓여있는 그림이었는데. 보자마자 마음이 불현듯 편안해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 그림을 다시보니 울지 않을 수 없어진다. 한결같이 구석을 주목하는 외로운 구도와 무뚝뚝한 표정들. 고독을 씹고 또 씹고 아무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 이제는 그게 단맛인지 신맛인지 분간이 안갈 때까지 그려놓은 느낌이다. 고독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쓸쓸하지만 않고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직시하고 감내했기 때문일까.
오늘은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봤다. 그것들 중 내가 지금껏 사랑하고 있는 것은 없다. 꼭 사고 싶었던 옷도, 꼭 사귀고 싶었던 친구도, 꼭 이루고 싶었던 꿈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도, 꼭 먹고 싶었던 음식도. 대상은 남아있지만 사랑이 없어졌거나, 사랑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젠 다 날 스쳐 지나가버렸다. 코끝이 찡하도록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공포가 엄습해온다. 그것들이 왜 이제는 없는지 너무 슬퍼지고 허망해진다. 시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어지지만 돌아간다 해도 무엇으로 돌아가야 할지가 이제는 점점 더 흐릿해져간다. 아직도 과거를 다루고 놓아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인 나에게, 시간은 미치도록 무서운 존재다.
왜 그땐 지나갈 것들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내가 사랑했던 것들, 내가 원했던 것들은 너무 다 독했다. 가지고 나면, 이루고 나면 꼭 나를 죽이고 갔다. 삶을 사랑하는 감각을 하나둘씩 죽이고 지나갔다. 그리고선 허무의 구렁텅이로 속절없이 날 밀어넣었다. 나는 무엇이 원인인지 결과인지 감별하지도 못한채 삶의 굴레가 날 이끄는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사랑해, 사랑한다 태초부터 외치고 있는 하나님 음성이 귓가에 아련히 들리는 것 같기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한심한 인생, 한심한 세상, 그냥 끝내버리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아직도 둘 중에 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내 자신을 참아주는 것도 못해 가끔은 초조해지기만 한다.
내가 사랑하는 글도 영화도 미술도 별안간 다 회색빛으로 바래고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의미없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도 이렇게 살기싫을 때마다 매번 죽어버릴 순 없으니까. 진짜 삶을 사랑하는 건, 살기 싫을 때도 꾹 참고 한 순간 더 살아내는 힘에 달려있는 거니까. 내 꿈에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다시 내일부터 쫓아봐야지. 이번엔 꿈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면서. 미래를 사랑하는 만큼 순간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