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리 Jun 21. 2023

핑크 호수

나는야 우물 안 개구리...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틀에 박힌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와사가 비치를 방문한 적이 있다.

푸른 바다가 땅덩이만큼이나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해수욕과 썬텐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 거주 중이던 내 친구의 말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기 바다 아니라 호수야."

왓???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가 늘상 봐오던 해수욕장이 분명한데 이게 호수라고?

거짓말. 친구가 내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곳에선 여름엔 물놀이를 할 수 있지만, 겨울엔 호수가 꽁꽁 얼고 그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서 겨울 레포츠를 즐긴다고 한다.

바다는 얼지 않는다. 고로 와사가 비치는 호수가 맞다...ㅠㅠ


난 왜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했을까?

수평선이 저 멀리 펼쳐진 호수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탓이다.

모래사장이 있는 호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호수에서 썬텐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경험과 학습의 지식이 전부인양 살아온 내 뇌가 아무 의심 없이 호수를 바다라고 믿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드넓게 펼쳐진 물을 보면 바다인지 호수인지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당연히 바다라고 믿었던 그곳이 호수였다는 사실이 내겐 진한 배신감으로 깊이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난 호수의 두 번째 배신을 경험하게 되었다.

서호주에 핑크색 호수가 있다는 말에,

"에이~ 설마. 호수가 핑크색인 게 말이 돼?"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서호주에 있는 핑크 호수들 사진이 수두룩하게 떴다.

"사진 참 잘 찍었네~ 핑크여 봤자 연한 핑크색이 겉도는 정도겠지. 요즘 사진 보정 기술이 좀 좋아?"


처음엔 별관심이 없어 여행 일정에 넣을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동하는 길목에 있어 별생각 없이 들리게 되었는데, 오 마이 갓!

사진에서 보던 그 핑크색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연한 핑크도 아니라 진심 찐 핑크!

아니, 호수색이 어떻게 진분홍일 수가 있지? 이게 가능해?

나의 학습된 뇌는 계속해서 의구심을 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핑크 호수는 방긋방긋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난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로 달려갔다.

가까이서 봐도 진짜 핑크색일까?

진짜 핑크였다. 와... 대박.


그제야 나의 뇌가 사과를 한다.

"미안.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인 줄로만 알았어."


그랬다. 세상엔 바다처럼 생긴 호수도 있고, 핑크색 호수도 있었다.

다음엔 또 어떤 호수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진으로 표현 안 되는 색이라 아쉬울 따름.

핑크 호수는 날씨와 기후에 따라 핑크색의 농도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날은 건기가 아니라 물도 많고 햇살도 따사로웠다.

모든 게 다 감사했다.  


이번 여행으로 난 또 다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은 넓고, 나의 경험은 짧다.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인양 교만하게 살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비포장 도로가 내 인생처럼 느껴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