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회상한다
지금은 한국이 미국의 무비자 협정국 (VWP)이 되어 가벼운 여행이나 출장에 특별히 비자가 필요하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출장을 가려면 미국비자가 꼭 필요했다. 미국대사관 앞에 언제나 늘 장사진을 이루던 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여름에는 가벼운 차양이 쳐져 있고, 중간중간 대사관 보안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던 풍경. 당시에 미국 비자는 한번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단수 비자와, 10년짜리 관광비자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미국 비자받기가 쉽지 않았는데, 미혼의 경우 비자가 잘 안 나오고 특히 여자는 더 그렇다고 여행사 직원이 말해줬다.
때는 초여름이었다. 우리는 7월쯤 미국출장이 잡혀 있었다. 네 명 정도 되는 직원이 가게 되었고, 각자 여행사에서 알려준 대로 미국 대사관에 비자 인터뷰를 신청하고 업무시간에 시간을 내 대사관에 가서 줄을 섰다.
그 출장에서 나는 Supporter였고, 나머지 세 명이 key guy였다. 그들은 미국 파트너 회사와의 프로젝트 개발자들이었고 나는 해당 업무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원하고 현지 코디와 협업하는 담당자였다.
인터뷰 날이 왔다.
할아버지 같은 미국 영사는 오랜 기간 외교관 생활을 한 역전의 노장 같았다. 그는 내 서류를 잠시 흝어보더니 미국에 가는 목적을 물었다. 나의 예상질문지 1번 질문이었다. 나는, 프로젝트 supporter로 따라가는 거라고 말하면 왠지 집요한 추가 질문들이 이어질 거 같아서, 당시 그즈음에 있던 현지 전시회를 보러 약 2주간 머물 예정이라고 말했다.
"10년짜리 비자를 주겠습니다.
음...... 2주는 양국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기에는 너무 짧고요,
즐거운 여행을 즐기기에는 매우 좋은 시간입니다. Nice Trip! "
하고 바로 비자를 내주었다. 그는 웃지 않았지만, 입가에 여전히 웃음을 참는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너무 긴장해서 내뱉은 한 젊은 외국인의 우스꽝스러운 멘트를 미소로 받아 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약간 허무하리만큼 10년 짜리 미국비자를 너무 쉽게 받았다. 내가 미혼이라 비자가 안 나올까 봐 걱정했던 회사에서는, 내가 무슨 엄청나게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를 잘해서인 줄 알고 상사들이 칭찬해 줬다.
문제는 그 세 명의 key guys들의 비자였다. 웬일인지 그들은 세명 모두 비자를 거절당했고, 출장일정을 감안한다면 다시 신청을 한다고 해도 일정 안에 비자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사에서는 할 수 없이, 미국 비자가 있는 인력을 아웃소싱하여 새 팀을 꾸려, 나는 낯선 이들과 함께 미국 출장을 따라나섰다. 낯선 이들과의 1주일이 넘는 출장일정도 힘들었지만, 우리가 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난감했고, 회사로서도 아무 소득이 없는 채로 우리는 귀국했다.
이후, 그 해 9월 중순쯤 우리는 2번째 출장일정을 잡았다. 다행히 그 key guys들의 미국비자가 두 번째 재신청에서 나왔다. 그렇게 원래대로 해당 엔지니어들이 다시 출장을 가기로 했고, 내가 또 supporter로 가야 된다고 했다.
지난번 출장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이번 출장은 다른 직원으로 대체해 달라고 상사에게 간곡히 부탁했고, 다행히 타 직원분 중에 비자 있는 분이 있어 그분이 출장을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의 미국 출장은 가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 프로젝트의 Supporter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 뉴스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안 되는 TV 화면.
결국 그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와는 인연이 없었던 건지 그렇게 흐지부지되면서 종결되었다.
이후, 나의 그 10년짜리 비자에는 서너 번 정도의 미국 입국세관 스탬프가 찍혔다.
그 프로젝트의 유일한 성과는, 나의 미국 비자 하나가 전부였다.
지금도 그 할아버지 영사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양국관계를 증진시키는 커녕, 즐거운 여행조차 못하고 돌아온 게 못내 그에게 미안하다 (웃음). 그렇게 흔쾌히 비자를 내주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