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그 이사님은 Computer science를 전공한 분으로, 대기업에서 전산팀장을 잠시 하시다가 품질관리 쪽으로 커리어를 바꿔 오랫동안 일하신 분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 근 20여 년을 품질관리 총괄로 근속하고 계셨는데, 회사임원진과 대표님께는 꽤 신임을 받고 계시는 반면, 후배 아래직원들은 그분을 오래 버텨내지를 못했다. 그 팀은 거의 일 년마다 직원이 퇴사하고 새 직원을 뽑는 불안정 정국이었다. 리더인 그분 혼자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는 뭐랄까, '깃발 하나로 버티는 모래성' 같았다. 다들 그분의 완벽주의를 그 원인으로 뽑았는데, 완벽주의는 일중독을 부르고, 일중독은 주변의 모든 이들을 떠나게 하기 마련이니까.
50대 중반의 그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는 가장이었는데, 늘 한 시간쯤 일찍 출근해서,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했다. 일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는 집에서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걸로 보였다. 직원들은 그를 다 불편해했다. 직원들의 불만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숨 막히는 근무일과
아침 7시쯤 출근해서 점심시간, 퇴근 시간 즈음까지 그는 하루종일 직원들을 불러 모으고 회의하고 지시하고 확인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모두 최소한의 업무만을 그에게 컨펌받고, 최대한의 시간을 그와 거리를 두며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점심시간에도 늘 혼자서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끝난 이후 한 10분 동안 허겁지겁 혼자 밥을 먹고 올라와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퇴근시간까지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퇴근시간이 되어 직원들이 하나둘씩 퇴근인사를 하면, 매우 서운한 표정으로 내일을 기약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또 혼자 남아 일을 하다가 9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과다한 / 버거운 보고서
전산전공자의 특징이셨을까? 그는 필요 이상의 보고서를 직원들에게 요구했고, 요구하는 퀄리티가 매우 높았다. 그렇게 초안, 수정하고 다시 작성, 또 수정과 수정을 거듭한 완벽한 보고서는 늘 대표님께 큰 칭찬을 받았다. 밑의 직원들이 그렇게 자주 바뀌도 퇴사와 입사를 거듭해도 그의 팀이 문제없이 굴러간 것은, 그의 보고서와 매뉴얼 위주의 품질관리 업무처리, 절대적으로 긴 근무시간을 녹인 결과였다.
셋째, 일 얘기 말고는 아는 게 없는 편협함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그는 이 세상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워크숍을 가서 전 직원들이 즐겁게 노래하여도 춤을 출 때도 그는 한쪽 구석에서 혼자 꾸벅꾸벅 졸거나, 팀회식에 가서도 계속 혼자 일 얘기만 끊임없이 해 대서, 결국 주위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바꿔가며 시간을 메꾸기 일쑤였다. 노래방에서도 맥주 한 캔을 쥐고 멍하니 다른 이들의 노래를 듣다가 졸던 그.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팀에서 근무하던 기혼 여직원이 사표를 냈다. 아직 아이가 어린데, 그런 심한 일중독 상사와 일하기가 이젠 너무 버겁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잇달아 사표들을 냈고, 그 팀에는 이제 그만 남는 상황이 될 형국이었다. 아무리 유능한 리더도 혼자서 모든 걸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팀 상사가 그와 저녁 한번 먹으며 직원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할지 한번 얘기해 본다고 나섰고, 그 저녁자리에 나도 동석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그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컴퓨터를 너무나 좋아했어.
시골 고등학생이 아무리 용돈을 모아도 퍼스널 컴퓨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대학 가서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한 후에야 PC 한 대를 살 수 있었지. 막상 전산이라는 전공을 접하고 나자 실망한 부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난 전산이야말로 '적성'에 안 맞으면 할 수 없는 분야라고 봐.
컴퓨터의 언어라는 게 정말 신세계처럼 느껴지고, 내게는 그 분야에 딱 맞는 적성이 있다고 생각했지.
완벽주의 성격은 그때 생긴 것 같아. 딱 맞아떨어지는 거, 난 그 '0의 결과값'에 매료되었다고나 할까?
졸업 후 꿈꾸던 대기업 전산팀에 입사했지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고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어. 하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오래 근무하지는 못했어.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임신중독증이 심하게 생긴 아내는 가까스로 출산을 하긴 했지만, 결국 평생을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장애를 가진 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럼 나라도 그 직장을 오래 다녔어야 했는데, 어느 날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어.
당시, 사내 전사적 업무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때였는데, 해당 프로그램을 사내에 론칭하고 전 직원들 대상으로 사용법 교육, 버그수정 등의 작업을 하던 때였지. 프로그램은 각 팀에서 각자 자기 데이터를 정확히 입력해야 그 자료들이 팀 간에 유기적으로 반영되어, 복잡한 결과가 간결한 방식으로 산출되는 '전산 본연의 위력'이 발휘되는 법인데 말이야. 특정팀의 어느 한 직원이 지속적으로 본인 화면의 데이터를 제대로 입력을 하지 않아 계속 전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어. 여러 번 얘기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 직원은 실수와 상황을 핑계 대며 계속 문제를 방치시키며 팀워크를 깨고 있었지.
나는 그 직원을 찾아가서 때리기 시작했어.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그 직원은 비명을 지르며 코피를 흘렸지.
그 일로 인사위원회가 열리고 나는 해고통지를 받았어. 그 직원은 나를 폭행으로 고소했다가, 가까스로 아내가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겨우 합의를 받아내 마무리가 되었지.
한동안 나도 아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 그 이후로 나는 잠시 쉬다가 지금 회사에 경력자로 입사해서 20여 년을 근속하고 있는 거지. 새 직장으로 온 이후로는 '후배 직원들이 못 따라오는 부분들은 후배들을 시키지 않고, 나 혼자 날밤을 새서라도 나 혼자 다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차 있었어. 그러다 보니 일중독이 되고, 타인과의 협업 스킬이 자꾸 더 줄고 서툴어지고, 다들 아마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야.
다 내가 부족해서야,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아픈 아내는 평생을 투석하면서 살게 되었고, 그렇게 몸이 아프면서 불안증세가 생겨 늘 그를 의심한다고 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병이 생긴 아내와, 이제 곧 있으면 제 인생을 찾아 떠날 아들을 떠올리며 그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긴 듯 보였다. 외로움, 나는 그에게서 너무나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일하는 것으로 도망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날 이후, 그 팀에는 새로운 팀장이 와 그의 지휘아래 팀을 정비하고, 그는 품질관리 영역에서 약간 벗어나 현장관리로 업무 필드를 약간 변경했다. 당연히 직원들 입장에선 그 많던 보고서와 문서작업이 없어지고, 그는 현장중심의 관리로 자신의 자리를 재정비해 나갔다. 이런 업무조정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대표님도 그의 꼼꼼한 현장점검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즉 그는 현장에서 혼자 근무하고, 해당 결과들을 혼자 꼼꼼히 보고서를 만들어 대표님과 일종의 핫라인을 구성해 일했다. 그렇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인생은 코딩과는 많이 다르더라고.
빈틈이 있어야 사람도 드나들고, 여유도 있어야 말로 천냥빚도 갚아볼 수 있는 거고, 때로는 누구를 칭찬도 해주고 해야 내 부족함도 남들이 한 번쯤은 눈감아 주는 거, 그게 인생의 셈법이지.
인생의 수학을 너무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