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s of the fall
세상의 끝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 오른 것은 새벽 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나이 마흔세 살에 16년간몸 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이리저리 몇 번인가 부서 이동을 하긴 했지만 16년이라는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고 내가 학교를 다니느라 허비했던 시간만큼의 인생을 한 달 전 정리당한 직장에서 나는 보내야 했다.
처음 내가 회사형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 올리기 시작한 건 입사 3년 차가 되던 해 가을이었다. 어느 정도 회사일에 대한 업무파악이 이루어졌고 선임과 후임에 대한 경계도 몸으로 체득하던 그 시기에 왠지 아침. 저녁 회사를 오가는 내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나를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그 상상도 아득히 멀어져 갔는데 지금에 와생각해 보건대 그 당시 회사를 떠나 다른 일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공연한 생각도 해 보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생각은 더욱 바빠졌다. 늘어 나는 지출에 들어오는 돈은 빠듯했고 회사를 떠난다는 생각도 용기도 이미 나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3년 전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두 아들을 데리고 아내는 언니가 거주하는 캐나다 ‘퀘벡’이라는 낯 선 곳으로 떠났다. 적극적인 동의도 반대도 아닌 그 중간쯤 어딘 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내 의사 표현에 아내는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요즘 세대의 통과의례 정도로 아내는 해외에서의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 얼마 안 되는 급여의 대부분이 캐나다 달러로 환전되어 급여 바로 다음 날 내 계좌에서 사라져 버리는 일이 되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에 전조가 있듯이 갑작스레이 나의 해직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2년 전쯤 회사에 연봉제가 도입되었고 1년 전부터는 업황이 악화되어 어쩌다 모이게 되는 입사 동기 몇 명과의 밤늦은 시간 술자리에서 쉬쉬하며 서로의 분위기를 주고받는 일이 유독 잦아졌다. 그러다가 담당 부서장과의 지난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해고 통지를 전해 들었다. 그에게서 위로 같지 않은 위로와 함께 소주 한 잔을 건네받으면서.
밀양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회사에서 나왔음을 알려 드리려 했는데 차마 내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지 않고 맴돌았다. 공연한 안부만 서로 주고받다가 결국 통화는 그 끝을 맺었다.
산골 마을 칠 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아버지는 나름 의지를 가진 분이셨다. 고학을 하며 서울에서 법대를 다니셨고 고등고시 사법과 2차 시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후에 결혼과 함께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날들이 이어졌지만 내가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정권이 바뀌면서 해직되셨고 꽤 알려진 회사에서 다시 일자리를 얻으셨지만 금융위기 시절 그 회사가 넘어지면서 밀양으로 낙향하신 아버지.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 엄마에게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은 깊어졌다. 매달 보내야 할 송금도 송금이고 집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채 새로운 직장을 빠른 시간 내 구하기에는 내 나이 마흔세 살이라는 무게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맡은 내 업무에는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세상과 새로 대면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 나약한 사람이었다.
얼마간의 퇴직금과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보증금을 빼서 뭐든 한 번해봐야 할까 싶은 생각을 안 해 본건 아니었고 여러 날을 두고 고민을 했지만 그 일이라고 결코 쉬울리는 없었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써넣은 곳에서는 감감무소식인 날들이 몇 주 째 계속되었다. 애써 나 자신의 불안을 달래면서 잘 되리라는 생각을 억지로라도 유지해 보려 했지만 마음 밑바닥에 낮게 깔린 그 불안은 불면의 밤을 계속 이어가게 했다.
그러다가 밤늦은 시각. 세상의 끝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 구글 지도를 앞에 놓고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눈으로 훑었다. 낯 선 나라들. 그나마 익숙해 보이는 지명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정도. 도대체 뭘 하며 마흔세 살의 세월을 지나왔다는 말인가?
항공권을 알아보니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가 잡혔다. 장장 열아홉 시간. 세상의 끝까지 가는데 열아홉 시간이 꼬박 걸린다. 충동적으로 카드번호를 적어 예약을 확정하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 훅하고 연기를 길게 내뱉어 보았다. 창을 열다가 바라보는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왜 이처럼 낯설게 느껴지는지.
공항에 도착해서 아내와의 짧은 통화를 했다. 내일 한인교회 체육대회라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언니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목소리를 들어 본 지도 6개월이나 지나 있었다. 점점 서먹해지는 그리고 돈 보내주는 내가 아닌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예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 나는 그동안 제대로 살아온 것이 과연 맞는가?
짐을 보내고 보딩 패스를 손에 받아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이었다.
비행기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내게 로마 공항까지의 12시간은 무척 견디기 힘든 여정이었다. 닭장에 앉은 듯 나는 몇 시간에 한 번씩 나누어 주는 식사를 웅크리고 앉아 먹다가 그리고 자다가 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게다가 외국 항공사는 전부 할머니들이 승무원인지 국적기에서 만나게 되는 미소가 아름다운 젊은 여승무원들을 보기는 힘들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띵띵 거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로마 공항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을 두리번거리며 다녀왔다. 게이트 번호를 좇아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거기서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환승구역 창구에서 연두색 트렁크 하나를 옆에 둔 채 창구 직원과 함께 대면하고 서 있던 그녀는 영어가 서툴어 보였고 창구에서 그녀를 대하는 직원의 표정도 대략 뚱해 보였다. 생김새가 앳된 아가씨였다. 지나칠까 하다 내가 불쑥 끼어들어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먼저 묻자 그 아가씨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한국 아가씨였다.
비엔나에서 타고 온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타야 할 비행기가 이미 출발했고 연결 편을 찾고 있는데 창구에서의 의사소통이 힘들고 마음만 급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적지는 공교롭게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나름 직장생활 틈틈이 익혀 둔 비즈니스 영어를 동원해서 십분 여만에 내가 타고 가야 할 카사블랑카행 비행기의 티켓을 한 장 더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요청으로 나와 나란히 앉는 좌석으로 자리 배정을 받게 되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영어가 서툰 여자가 혼자서 모로코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숨을 돌리고 얼굴을 다시 보니 그녀는 보기 드문 동양의 미인형이었다. 160센티미터가 좀 안되어 보이는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작은 얼굴에 서늘한 눈매를 돋보이게 하는 쌍꺼풀까지. 의도하지 않게 짧은 여정의 동행자가 생겼다.
위로 누나가 둘 있지만 나는 왜 여자에게 항상 서툴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내를 만나기 전 만났던 여자들과의 연애는 내게 별다른 기억을 남기지 않았고 두 아이를 둔 남자로 나는 여전히 여자를 모르는 사춘기 소년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스무 살은 차이가 날 듯한 여자가 지금 내 옆에 앉아 곤하게 잠들어 있다. 일찍 결혼을 했더라면 이만한 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불현듯 내 나이가 다시 느껴졌다.
로마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카사블랑카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 공항 건물을 빠져나오자 날이 어느새 아침이었다.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가치 꺼내 물고 불을 붙여 훅하고 연기를 내뱉어 보자 내가 비로소 낯선 땅 위에 서 있다는 걸 실감했다. 시내로 나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함께 공항을 빠져 나왔던 그 아가씨에게 행선지를 묻자 그녀는 자신도 시내를 나가야 한다며 함께 시내까지 가자고 했다. 시내에 가서 아침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이름이 '영원'이라고 했다. '서영원'. 세련되고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도착한 카사블랑카 시내는 낯선 모습이었다. 유럽풍의 전차가 시내 한복판을 지나고 아랍어 간판이 즐비한 곳이었다. 딱히 아는 곳이 없어 택시를 잡아 문을 연 식당을 묻자 택시 기사는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맥도널드?"하고 물었다. 영원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내를 출발해 카사블랑카의 명소라는 바닷가 ‘핫싼 2세’ 모스크를 거쳐 계속되는 택시 기사의 수다와 함께 대서양 해안가로 택시는 달렸다. 말로만 듣던 대서양. 그 어디쯤엔가에서 눈에 익은 그 햄버거집의 반가운 노란색 간판이 보였다. 공항에서 환전해 둔 낯 선 모양의 국왕 얼굴이 그려진 지폐를 꺼내 조심스레이 셈을 치렀다.
바닷가 햄버거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대서양의 파도소리가 들렸고 오후로 차츰 바뀌어 가는 그 시간의 햇살이 우리 둘의 머리 위를 가득 비추고 있었다. 한적한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왠지 이런 생각이 들자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무슨 사연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영원이의 첫마디는 뜻 밖이었다
.
"집이 못살아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이야기가 거냈다.
"너무 답답해서 어디엔가로 떠나고 싶었어요. 저 몇 살쯤으로 보세요?"
내가 다소 얼 띤 목소리로 "스무 살......" 하자 영원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올해 이제 스물다섯이에요."
여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내 나이 스물다섯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더라 하는 생각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한동안 침묵하고 앉아 있다 영원이가 슬며시 일어나 대서양 바다가 보이는 철제 난간 앞에 서서 수평선으로 그녀의 시선을 가져갔다. 담배를 피우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녀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영원이를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지금 들여 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이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옆에 섰다. 여기가 바로 내가 생각했던 세상의 끝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바다 위에 시선을 고정해 두다가 영원이를 돌아보니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운 모스크에서는 정오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슬람의 기도 독려 안내)’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딱히 목적이 없는 여정이었고 어쩌면 영원이와 나의 행선지는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영원이와는 같은 일정을 보냈다. 느지막하니 일어나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오래된 시장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바닷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또 저녁에는 전차를 타고 종점에서 또 다른 종점까지 가다 내리기를 반복하다 다시 내리고 싶은 정거장에서 불쑥 내린 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먼저 그 제안을 한 것은 영원이었다.
"포르투갈 ‘포르투’에 가려고 하는데 함께 가실래요?"
진지하게 그녀는 묻고 있었다.
"포르투갈?"
영원이의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말없이 끄덕이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함께 비행기 편을 알아 보고 예약을 했다. 이미 밤이 늦어 있었다. 그만 쉬라는 말을 내가 먼저 건네자 영원이는 밖으로 나가서 차 한잔만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가까운 찻집에 앉았다. 촛불이 은은하게 비추는 동굴 같은 찻집에 앉아 모로코 차를 주문하자 젊은 웨이터 한명이 다가 와 높이 든 주전자에서 차를 잔 가득히 따라 주었다.
"고등학교 마치고 화장품 가게에서 일했어요.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오빠 친구와 사귀게 되고 결혼 상견례 날짜까지 잡았는데......"
그녀의 볼에서 굵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가 몸이 아프고 아버지께서는 노점을 하세요. 오빠가 한 명 있는데 지방에서 근무하죠. 돈을 모으면서 살지는 못하고요. 제가 결혼을 하면 친정집을 도울 수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사귀던 오빠와도 다투기 시작했고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이 순간도."
잘 알지 못하는 여자가 자신의 어두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촛불이 일렁거리듯 흔들렸고 영원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내 마음 또한 촛불 마냥 마구 흔들렸다.
"그런데 그 오빠가 새로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고는......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 분하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제...... 마음을...... 그래서...... 떠났어요. 결혼할 때 쓰려고 얼마간 모아 두었던 돈을 들고......"
흐느끼던 그녀의 어깨가 위아래로 한참을 들썩거렸다.
숙소로 늦게 돌아와 혼자 자리에 누웠다.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다만 영원이가 측은 하게 여겨졌다. 연민과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내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왔다. 세상은 참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영원이의 결혼 상대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러다가 생각은 다시 나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누굴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영원이가 어쩌면 나보다 나은 상황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이내 내 마음을 무겁게 눌러 댔다.
다음날 아침 생각보다 영원이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웬일인지 화장도 정성 들여 한 듯 한껏 화사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영원이는 쉬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기 친구들 이야기와 학창 시절에 자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얼짱이었다는 이야기들.. 그녀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한 듯싶다. 나는 주로 듣고만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기 보다 영원이의 말하는 표정에서 애써 명랑함을 보이려 하는 애잔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흔셋 나이의 남자와 스물다섯 나이의 여자가 우연히 만나 포르투갈에 가고 있다. 이건 또 어떤 형태의 운명인 건까?
짐을 찾아 공항에서 전차를 타고 포르투의 중심부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 어느 한 사람 우리에게 눈길을 유심히 던지는이는 없었다. 카사블랑카에서의 유난했던 관심을 화제로 우리는 또 키득거렸다. 전차가 '상 벤투역'에 서자 우리는 서둘러 내렸고 예약한 숙소로 가는 동안 줄곧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에서 캐리어가 덜커덕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쳤다. 저녁 어스름이 지는 시간 가볍게 옷을 갈아 입고 천천히 영원이와 걸음을 옮겨 ‘도오루’ 강변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눈 앞에 전차가 왕래하는 '동 루이스 다리'가 성큼 나타났다. 철교로 된 다리 위에 서서 한참 동안 불빛이 반짝이는 도오루 강변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잠시 동안이지만 서늘하게 부는 바람 속에서 나와 영원이는 세상의 근심을 서로 잊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살짝 잡자 영원이가 나를 살짝 돌아보았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그 순간 불빛에 반짝거리던 상대방의 눈동자에서 서로의 모습이 보였다. 전차가 한 대 덜컹덜컹 지나가면서 철교가 그 진동으로 웅. 웅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영원이와 나는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다고 느꼈지만 사실 낙원은 처음부터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