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e River Weset, I Sat Down and Wept
워낙에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지금에 와서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 해 여름 아버지가 내 열두 살 생일날을 기념하여 오리 한 마리를 선물해 주셨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열두 살 여름이 막 끝나 가던 계절이었다고 생각해. 그 시절에는 열두 살 여자아이의 생일을 기념해 새끼 오리 한 마리를 선물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지.
나의 아버지께서는 어부셨어. 이른 아침이면 안갯속으로 노를 젓는 작은 배를 가지고 나가 오후 햇살이 저물 무렵에 생선 몇 마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었지. 아버지가 늦는 날이면 난 강 가에 혼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려 보거나 석양이지는 테베 강물 위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하나씩 세어 가며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오리에게 전날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던져 주곤 했었어.
그날도 아버지께서는 많이 늦으셨어. 저녁 해가 강물 위에 마지막 빛을 던지고 멀리 대추야자 숲으로 뉘엇 넘어가는 시간까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작은 배는 내 눈에 좀처럼 보이지 않았지. 강 가의 나무 등걸 위에 앉아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여기 사니?"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나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지. 난생처음 보는 아이였어.
말끔해 보이는 옷차림에 금실로 수를 놓은 신발을 신고 있던 그 아이는 처음 보는 내게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가 앉은 나무 등걸에 같이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지. 유심히 눈여겨보니 그 아이는 심하게 다리를 저는 듯 보였어. 나는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뒤 그 아이가 앉을 수 있도록 나무 등걸 위에 작은 자리 하나를 만들어 주었지.
무척이나 잘생긴 아이였어. 달빛에 드러난 그 짙은 눈동자는 묘하게 반짝거렸고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은 갈색이 감도는 검은색이었지.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의례히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은 그 아이의 입술을 더욱 붉어 보이게 만들었지. 엄마가 일곱 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던 나에게 그 아이는 은은한 재스민 꽃향내를 떠올리게 했어.
믿지 못하겠지만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오던 그 아이의 짙은 눈썹과 왠지 슬퍼 보였던 그 눈동자는 아직도 잘 잊히지 않는데 맹세컨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아이의 숨결이 내 얼굴에 직접 닿을 듯 느껴지곤 해. 그 아이가 웃을 때면 태양신 라의 모습이 연상되었지.
그 시간 밤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어. 신들이 산다는 하늘의 세상을 그 아이와 나 둘이서 바라보고 있었지. 별똥별 하나가 하늘 위를 가로질러 별들 사이로 멀리 날아갔어. 내가 별똥별을 보는 내내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말했어.
"어서 소원을 빌어. 이루어진단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저 별똥별을 가지고 싶다고 하자 그 아이는 상냥하게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내가 어깨를 움츠리자 그 아이는 자기 어깨를 덮고 있던 옷자락을 풀어 황금빛 망토를 내 어깨 위로 살짝 덮어 주었지.
그날따라 아버지는 꽤 늦으셨어. 강 건너 이웃 마을에 들러 일을 보고 오셨다고 했던가?
그날 이후로 강가에서 그 아이를 이따금씩 보곤 했었어. 저녁 해가 테베 강물에 잔잔히 잠겨 드는 시간에 그 아이는 대추야자 숲 사이의 오솔길을 걸어 천천히 내가 앉은 나무 등걸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왔었지. 멀리서부터 그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 그리고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짓는 그 아이의 두 눈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은 왠지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찼었지...... 왜 그랬을까?
어느 날인가 아침시간에 아버지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중 한 명이 자기는 파라오의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그가 나를 장식이 잘 차려진 나귀의 등에 태우고 파라오의 궁전으로 데려갔어.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궁전의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찾아온 사람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귀부인이었어. 그녀는 자기가 파라오의 어머니라고 했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파라오의 어머니는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남자를 불러 뭐라고 이야기를 했어. 잠시 후 그 남자가 은쟁반 위에 작은 칼 하나를 가지고 와서 파라오의 어머니에게 건넸지. 그리고 그녀는 그 칼을 내게 다시 건네며 파라오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더군. 황금으로 된 칼집에 손잡이는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멋진 칼이었어. 손잡이 끝에는 투명한 유리가 반짝이고 있었지.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파라오의 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어. 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아버지에게도 말이야. 나는 그 아이가 생각날 때면 조심스레이 그 칼을 꺼내어 보곤 했어. 칼집을 열면 은색의 칼날이 반짝였는데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신비로운 빛이 칼날 위로 내 얼굴을 비치게 만들었지.
이후로 그 아이는 보지 못했고 시간은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있었지.
어느 늦은 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셨어. 파라오가 저승의 신 ‘야누비스’와 함께 서쪽으로 가는 태양신 라의 배를 탄다고 하셨지. 내일 아침 일찍 파라오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일하는 일에 아버지도 함께 하신다고 했어.
그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있었어. 파라오가...... 그 아이가 죽었어. 내게 작은 칼을 선물했던 그 아이.
그날 밤 대추야자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 테베 강가를 혼자 찾았지. 그 아이와 함께 앉았던 오래된 나무 등걸 위에 앉아 달 빛에 빛나는 강물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내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걸 느꼈어.
좀처럼 멈출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졌어. 나는 울음을 멈추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들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지. 별들 사이로 밝은 별똥별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걸 보았어. 그것은 아마도 그 아이의 영혼이었을까?
다음날 새벽,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몰래 간직하고 있던 그 작은 칼을 건넸지. 파라오의 무덤에 그 칼을 함께 넣어달라고 이야기 하자 아버지는 내 눈을 쳐다보며 한동안 말이 없으셨어.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꼭 쥐어 주셨지. 아버지는 뭔가를 알고 계셨던 걸까?
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영국인 몇 명이 테베 강기슭의 사막에서 오래된 파라오의 무덤 하나를 발견해 내었어. 바로 그 아이의 무덤이었지. 그 사람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투트 앙크 아멘'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아이의 무덤 속에 있던 많은 보물들 중에서 내가 그 아이에게 돌려주었던 작은 칼 하나도 함께 발견되었지. 나중에 사람들은 그 칼이 별똥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그 아이에게 고백한 별똥별을 가지고 싶다는 내 소원은 벌써 이루어졌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