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복지를 찾아서

대한민국 사회복지는 우리 고유의 것인가?

by 오아시스
제 개인의 것입니다


평소에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냉장고를 부탁해(JTBC)」에서 스승과 제자의 요리대결을 펼친 적이 있었다. 한참 요리대결을 하던 중간에 진행자가 제자인 요리사에게 “지금 하고 있는 요리의 레시피(recipe)는 스승님께 배운 것입니까?”라고 묻자 제자가 “아닙니다. 제 개인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었다. 물론 예능프로그램에서 우스개로 한 말이었지만 스승과의 요리대결에서 어린 제자의 당찬 자신감에 방송을 보는 내내 누가 이길지 끝까지 궁금해 하며 지켜봤었다. 결과는 제자의 승리였다. 요리의 기본기는 스승에게서 배웠겠지만 자신만의 비법으로 스승을 이겼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정말 뜬금없는 일이긴 하지만―)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과연 우리 고유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백수가 된 요즘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던 일을 멈추고 나니 (―아무래도 남는 게 시간이다 보니―)주변에 사소한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물론 TV를 보는 것도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보긴 한다. 그러다보면 또 잡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 또한 백수의 고질병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n번째 백수의 삶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나의 잡생각의 90%이상은 사회복지에 관한 생각들이다. 지금까지 내가 일 해온 사회복지는 그저 주어진 대로 책임만 다하려고 했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의미인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이참에 그동안 못했던 잡생각들을 최대한 많이 글로 써보자는 생각에 다시 펜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사회복지는 우리의 것이 맞는가 말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신탁통치와 한국전쟁,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그 옛날 유구한 역사에 존재했던 우리 고유의 사회복지 모습은 급격히 퇴색되었다. 그리고 일본, 미국 더 나아가 유럽의 사회복지 제도를 모방과 변이 과정을 거쳐 매우 빠른 속도로 토착화되고 또 확장되어 왔다.(권중돈, 2019)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복지에 대한 성찰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사회복지는 단순한 정책 수단이나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전제를 반영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고유의 복지제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서구식 복지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전후(戰後) 복구로 이어진 시기 동안에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은 거의 실시되지 못했다.(박효정, 2016) 또한 7-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에 이어 갑자기 불어 닥친 IMF 경제위기로 추락을 겪은 우리 사회는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 정신과 상부상조의 전통을 살리기보다는 소득 하위계층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데 더 급급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경제적인 지원만이 사회복지의 최종적인 형태는 아니다. 사회복지의 진정한 목표는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토대를 구축하는 데 있지 않겠나.(박효정, 2016)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사회복지 전통이 전혀 없었던 나라가 아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구휼 제도, 향약, 계(契), 상호부조의 관습이 사회 전반에 존재했다. 이 제도들은 국가와 공동체, 가족 간의 책임이 연결된 윤리체계로 작동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러한 전통은 근대화 이전의 낡은 관습으로 평가절하 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사회복지 제도의 사상적 근간으로 복원되지 못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 서구에서 수입된 사회복지 제도는 근대화된 선진국의 문화로 정당화되었고, 우리의 역사적 사회복지 전통은 현실에서 쉽게 배제되어왔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복지는 우리 정서에 맞는 복지사회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없이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설날에 가끔 보는 풍경이긴 하지만 한복 위에 패딩점퍼를 입고 구두를 신은 것 같은 어정쩡한 모습이 지금 우리의 사회복지 표상이다. 그동안 전통사회가 가지고 있던 사회복지적 요소와 공동체적 연대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서와 경제 수준에 알맞은 복지제도를 모색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완성도가 높은 북유럽 국가의 복지모델을 선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은 이들 나라와는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문화적 환경도 전혀 다른 동방의 나라다. 우리나라의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우리에게 알맞은 사회복지의 상(像)을 마련해야 함에도 급박한 현실적 필요에 의해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에 복지제도 간에도 충돌이나 중복 등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사상적 기반과 사회적 환경이 판이한 북유럽의 복지제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개인을 권리의 주체로 설정하고, 국가를 주요 복지 제공자로 전제한다. 이 구조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공동체의 윤리와 유대를 중요시 하는 나라는 복지의 책임이 전적으로 국가로 이전될 경우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상부상조 기능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연민과 책임, 관계성이라는 사회복지의 도덕적 기반이 빈약해질 위험도 존재한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역사적 분단과 여전히 진행 중인 지역 간 반목과 세대갈등 같은 현실적 문제들은 문화적 동질성과 높은 사회적 신뢰를 전제로 형성된 북유럽의 제도적 모델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우리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전통적 사상과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정서에 맞는 보다 현실적인 사회복지 제도를 만들어 내야 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사회복지의 사상적 배경이 서양에서는 기독교적 박애 정신이라면 동양에서는 불교의 자비 정신과 유교적 인정(仁政)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공동체적 연대와 유교적 가르침에 토대를 둔 수준 높은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다.(박효정,2016) 그 중에서 우리의 유교적 가치관은 종교적 성격보다 자기 수양의 학문적 성격과 윤리 규범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비교적 쉽게 수용될 수 있는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유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사회복지는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족과 공동체,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복지의 핵심 축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북유럽 복지모델과 본질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다. 따라서 전통적 유교사상은 현대 사회복지의 핵심 원리와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권리 중심의 서구 복지국가 모델이 지닌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나는 고향이 안동이라 유교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 왈(曰), 맹자 왈(曰) 하듯 유교를 따져가며 사회복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의 사회복지 제도가 우리의 현실과 정서에 잘 어울리는 제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와 친숙한 유교사상을 예로 든 것뿐이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제외하더라도 민주화 이후 우리의 사회복지 제도는 비약적으로 확대·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정치적인 일회성 복지정책이 남발되고, 공무원식 성과주의 사고방식으로 인한 서비스 중복과 숫자로 계량화된 복지지표를 가지고서는 더 이상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지나간 과오를 들춰내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제와의 과거사 문제해결도 그렇고, 1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는 반성도, 문제해결도 딱히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열심히 달려가다가도 중간에 멈춰서 숨도 고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볼 필요도 있다. 그러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느낌이 이상하면 지금까지 달려 온 길을 되돌아보고 필요하면 방향을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 열심히 달리기만 해서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여태껏 우리의 사회복지가 그랬다. 그저 과거로부터 해오던 관행대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지 분명한 목적지가 없다. 우리가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유럽국가의 국민처럼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우리의 중요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국민 정서의 문화적·윤리적 토대를 무시한 모방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우리의 복지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삶과 정체성이 무엇인지부터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외국에서 온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사대주의를 가지고서는 결코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의 사회복지제도는 대한민국의 전통과 국민정서를 토대로 국가와 사회, 개인의 책임을 조화롭게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의 문제이자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 과제이다.


...n번째 백수생활의 잡생각(1)


※ 이 글은 “권중돈, 「맹자의 사회복지실천적 함의」, 2019, 한국사회복지교육학회”, “박효정, 「맹자의 사회복지 사상에 관한 연구」, 2016, 성균관대학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