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춘추전국시대(BC 770년~BC 221년)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春秋)시대와 전국(戰國)시대를 합쳐서 부르는 말인데, 후대 동아시아 사회의 정치·윤리·교육·통치 이념을 형성한 거의 모든 사상적 토대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사상가들이 모두 이 격동의 시대에 등장했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되었으며 약자의 삶이 짓밟히는 절망의 시대였다. 반면에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고 학문과 사상이 발전하는 등 절망의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혼돈의 서막
기원전 1050년 전,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는 황하(黃河)에서부터 장강(長江, 양쯔강)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지배해야 했고 이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나라 무왕(武王, ?-BC1043년, 주나라 초대 천자)은 자신의 친척이나 믿을 만한 신하를 제후로 삼아 각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처럼 왕으로부터 권력을 하사받은 제후가 영주가 되어 각지를 지배하는 체제를 봉건제도라고 한다. 봉건(封建)이라는 뜻은 토지를 하사(봉封)하여 나라를 세운다(건建)라는 뜻이다. 천자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은 제후들은 자신의 권력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혈연관계로 맺어진 정치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즉, 고대 중국의 정치체제는 법과 행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법치(法治)체제가 아니라 혈연과 제사, 의례, 도덕에 의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종법(宗法)체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봉건제도와 종법체제 하에서 여러 제후국들이 큰형님(주나라 천자)을 대신해 서로 자신이 형님 노릇을 하기 위해 힘을 겨루는 시대를 춘추시대(BC 770년~BC 403년경)라고 한다. 춘추시대에 대의명분은 그나마 주나라의 왕(천자)을 높이 받들고 오랑캐를 무찌르자는 것이었다. 제후국들끼리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매우 신사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쟁의 날짜와 시간도 서로 합의하여 진행했고, 힘의 격차가 보이면 더 큰 희생을 만들지 않고 이른 시기에 승패를 결정지었다.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상대가 고개를 숙이면 협정과 조공으로 마무리 지었지 패배한 제후국을 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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