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을 도와야 하는가?
맹자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에 따른 도덕적 덕목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이기도 하지만, 도덕체계가 무너진 시대적 상황에서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현실적 실천 동기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도덕체계 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까닭에 특정한 사회구조를 관리, 조정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변화와 상황에 걸맞은 도덕체계 내지는 윤리 덕목이 필요하다.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잔혹한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동란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자가 제자들과 깊은 산속을 가던 어느 날, 한 여인이 통곡하는 것을 보고 까닭을 묻자, 여인은 남편과 자식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잃었다며 하소연했다. 공자가 여인에게 산을 떠나 마을에서 살면 될 것 아니냐고 권하자, 여인은 마을에서의 삶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서 산을 떠날 수도 없다고 했다. 이를 듣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세상의 잘못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단단히 기억해 두어라.” -《예기(禮記)》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알려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인간과 사회를 관념적으로 논한 철학이 아니라, 피로 물들여진 전쟁터와 같은 삶 속에서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염원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고 한 것이나, 맹자가 제 시대를 두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이 시대가 두렵다”라고 진저리를 쳤던 것은 모두 도덕체계가 무너진 사회상을 한탄한 것이었으리라. 공자와 맹자는 그저 시대를 한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무너진 도덕 질서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했다. 이처럼 공맹의 유가 사상은 단순히 윤리강령이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문명적 처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는 2500년 전 공자와 맹자가 치열하게 살았던 시대보다 과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굳이 그 옛날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더라도 불과 100년 전과 비교해도 현대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분명한 성취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 것으로 인정된다. 이는 인간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문명의 성과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이뤄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도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과연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 말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북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복지국가는 연대와 공동책임의 원리에 기반하여 사회복지제도를 발전시켰다. 빈곤, 실업, 질병, 노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위험으로 인정하고, 국가는 이를 공동체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과제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사회복지가 개인의 생존과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삶과 고통을 사회적 문제로 전환하면서 개인 상호 간의 의존성과 도덕적 책임 의식이 약화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이러한 현상을 이른바 복지국가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그로 인해 사회복지제도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사회복지는 더이상 자선이나 시혜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자 공동체는 무너지고, 실업자는 증가했고, 사회적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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