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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2. 2024

도덕 도우미로서 자괴감을 느껴

2차 고사 성적 받은 따님 워딩이시다.

“엄마, 이거 넌센스야. 잘 들어봐. 내가 내성적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게?”

“음. 그러게 말이다.”

“I를 생각해.”

“몰라.”

“내성적이라서.”

“아!”

누나 유주가 바른생활부장인 건 알았거든.

그런데 웬 도덕 도우미.

친구들 아무도 안 한다고 하는데, 수행 가산점에 귀가 솔깃했대.

남들 싫다는 도우미까지 다 해놓고 받은 점수인데 또 웬 자괴감!

한평생 “No”를 모르고 사신 내 엄마, 그러니까 유주 할머니께서는,

“100점 맞으면 노력을 안 해서 못쓴다고, 그냥 지금처럼만 하라고,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고 지극히 비현실적인 칭찬을 퍼부어 주셨다는 소문이….”

 학기말이 되니까 유주 학교에서도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나 봐.

영화관에 나가 단체 관람도 하고, 교내에서 체육 행사도 하고.

방학이 다가온다.

모처럼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꼼꼼하지 못한 누나 짐 싸는 것부터가 부담이구나.

형은 이 더위에도 축구를 하러 나갔어.

아빠 닮은 유주도 태권도를 무려 7년이나 했잖아.

하교 후 영수 학원 끝나면 저녁 먹기도 빠듯해서 결국은 도장을 그만뒀는데, 건강 관리 차원으로 운동 시간을 확보해야겠기에….

도대체 무엇을 포기해야 한단 말이니.

점수에 연연하는 건 절대 아닌데….

국영수는 기초가 튼튼해야 하잖아.

너도 알다시피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뭐 이렇게 해야 할 것들이 많은 거냐고.

한 분야에서 한 우물 파기도 사실 만만한 일이 않은데, 선택의 여지없이 지워지는 의무 영역이 비현실적으로 다채로운 거야.

KBS 방송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해 가히 공격적인 전략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모양이더라만.

자율과 강제 사이 어디쯤이 개인도 국가도 행복할 수 있을 지점일까?

인간이 자기를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가정이든 사회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거야.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감정을, 욕망을 통제한다는 것 혹은 건전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무엇보다 남녀노소, 장애인까지 맘 놓고 운동할 수 있는 시공간이 있다면….

이 누나도 수영이다 승마다 복싱이다 빡시게 굴러보고 싶단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집 도덕 도우미 자괴감 안 느끼고 운동해도 괜찮도록 평일 의무교육 이수 시간을 단축하라 단축하라 단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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