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작심 3일에 무한 되돌이표를 찍어서라도 이것만큼은 달성해 보겠다 투지를 불태우고 계신가요? 아니면 교회 혹은 절이나 성당에서 마음을 수련하며 차분하게 한 해를 시작하고 계신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실패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스스로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기를 선택한 게으른 겁쟁이 김밀도라고 합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속 주인공 ‘바틀비’처럼 말이지요.
지난해에는 1월에게 ‘발’을 약속하며 실천과 행동을 다짐했더랬지요.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40대들의 국민 미션인 운동과 다이어트에도 도전해 보았고, 전화 영어 회화에 참여하며 영어 공부를 시도해 보기도 했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 실력이 늘기 바랐으나 매번 아쉽게 마감되는 20분은 짧기만 했습니다.
저는 쓰기와 읽기에 중독된 중증 시각장애 여성입니다. 직업은 특수교사, 4학년 딸아이를 하나 키우는 워킹맘이자, 2021년 제 이름으로 된 첫 에세이를 출간한 새내기 작가지요.
은희경 작가가 쓴 소설 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자님들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같은 시간이라도 세 시간 같은 30분이 있는가 하면 3분 같은 30분이 있잖아요? 저에게 3분 같은 30분은 쓰거나 걷거나 읽을 때입니다. 쓰기는 학창 시절 학급일지를 쓰면서 적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식구들이 몰래라도 들여다볼 수 없는 점자 일기를 커다란 바인더북에 묶어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문학이 좋았고, 문과 과목 공부가 편했어요. 다행히 맹학교와 복지관 도서관에는 신간 도서들이 제작되어 대출되고 있었습니다. 무턱대고 들었지요. 그때부터 제 세계는 소리로 열렸고 또 닫혔습니다.
실명하고 거울 앞에 서지 않아요. 사진도 즐겨 찍지 않습니다. 비장애인 친구들이 언택트 시대를 맞아 줌 화상 회의나 업무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의 표정에 깜짝 놀랐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들이었어요. 표정 관리가 어려운 저에게 쓰기는 그래서 더 구원이었습니다. 내 마음 날씨를 고스란히 비춰주는 유리창 같았으니까요. 한바탕 쓰고 나면 가슴이 후련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마주하고 보면 제 표정이 읽혀요. 깨달으니까 관리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기적 같은 변화였습니다.
걷기는 다리로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활동지원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우리 같은 시각장애인도 산책하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잖아요? 남산 산책로는 저 같은 지방 거주민들에겐 그림의 떡. 가까운 곳에 계신 분들이라도 부지런히 활용하시기를 권장합니다. 맹학교 이료교육과정에 나오는 10개 교과를 통틀어 건강관리 비법으로 걷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관절이 약한 어르신들은 물속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이지만, 우리처럼 시선축이 없는 전맹인들은 고개도 갸웃, 사실 부러 바른 자세를 의식하지 않는 이상 지켜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균형 잡힌 몸과 마음을 위해 우리 조금씩만 더 움직여 봅시다.
읽기는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간접 경험은 물론 제한된 행동반경의 지평을 확장시켜 주지요. 팟캐스트 방송부터 유튜브 영상까지 들을 거리가 넘칩니다. 여기에 책마루, 한소네, 스마트폰, PC 등 우리들의 독서 환경은 나날이 윤택해지고 있습니다. 고마운 손길들이 완성해 주시는 신간 도서들이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제공됩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웃고, 쓰고, 걷는 삶이라면 저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의 3분 같은 30분이 궁금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 뿐일 2024년의 1월을 여러분들은 어떤 색깔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일본에서 20년이 넘게 헌책방 벌레 문고를 운영하는 주인장 다나카 미호 씨는 이끼 관찰 일기를 연재하는 특이한 생태 연구가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느 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허름한 헌책방을 열어요. 매출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지인과 얘기하고, 팔리지 않는 문학 전집 전질을 굳이 진열해 놓으며 벌레문고의 책방다움에 안도합니다. 독특한 개성이 녹아 있는 굿즈(Goods)를 제작하고, 지인들의 사진이나 그림 등을 전시하며 공간의 효율성을 확장해 나가요. 영세한 책방 명맥을 이어주는 애로 서적은 취급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킵니다.
“이끼는 꽉 차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늘과 구석에 마음을 쓰고, 우리 생활과 정신에 깊숙하게 얽혀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제가 이끼에 끌리게 된 가장 큰 이유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나의 작은 헌책방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만족스러운 생을 증거 합니다. 몰입의 기쁨을 넉넉히 누리셨으면 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또한 독자님들 것이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