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들 모두 코로나 예방접종은 하셨나요? 저는 1월 3일 모더나로 3차 부스터 접종을 마쳤습니다. 다행히 왼쪽 팔에 약간의 근육통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눈 말고는 건강을 자부하는 저라서 사실 1~2차 접종 때는 큰 걱정 없이 주사를 맞았더랬지요. 남편이 백신 체질이라고 놀려댈 정도로 수월하게 넘어왔습니다. 독자님들은 코로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의료진, 병원, 주사, 감염, 차단, 면역력 뭐 그런 단어들이 얼른 생각나는데요. 오늘은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상적인 의료진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독자님들도 병원 진료 경험 많으실 거예요. 특히 안과 진료에 관해서라면 한두 시간 정도는 이야기보따리를 너끈히 풀어낼 만큼 각양각색 히스토리를 품고 계시겠지요? 저 역시 다르지 않아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넉넉하게 전신 마취 경험이 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수술대에 오를 때마다 두려움에 절어 온몸이 뻐근하도록 긴장했었지요. 초등학교 입학 무렵 갑작스럽게 발병한 각막염이 녹내장으로 발전함에 따라 6학년까지 매년 눈수술을 받았습니다. 실명하고 더는 수술할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아니더군요. 딸아이를 낳고서 양안 의안을 넣었습니다. 최근에는 부인과 수술까지 넘치게 마취를 했어요. 지금 이 부실한 기억력이 감사할 지경으로 제 뇌는 인위적인 죽음을 이미 수차례 경험한 셈이지요.
제 몸을 수술해 주신 의료진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이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두고두고 무한 신뢰가 샘솟는 B병원 주 교수님이에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발견하고 최근 몇 개월 몸과 마음이 무척 분주했습니다. 생전 처음 6일 이상 병가를 신청했고 부랴부랴 수술 일정을 잡았지요. 심전도를 비롯 혈액검사와 CT촬영을 했습니다. 주 교수님은 제 몸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어요.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신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제가 시각장애인임을 감안하여 수술 도구를 부러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실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복강경을 뱃속에 넣어 가위처럼 환부를 잘라낸다고 설명하며 부작용이나 외상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과장하거나 감추지 않으면서도 환자 입장을 십분 고려한 태도가 과연 프로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또렷한 불쾌감으로 남아 있는 의료진이 있습니다. W대학병원 수술실에서였죠. 차갑고 건조한 수술실 공기에 압도되어 잔뜩 긴장해 있는데 마취의가 다가오더니 누군가에게 심상하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안 깬다. 죽겠네. 새벽 1시까지 마셨다니까.”
다름 아닌 내 손목 링거줄에 마취약을 넣는 사람이 하는 말이었어요. 기가 막혔지만 항의는커녕 수술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 술김에 실수하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의식이 멀어졌어요.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 심한 구토감이 느껴졌습니다. 간호사가 진통제 부작용이라고 하더군요. 환부 통증이 심했지만 진통제는 더 맞을 수 없었습니다. 약을 빼며 간호사는 사무적으로 약물 비보험 청구 비용을 고지했어요.
B병원에서도 같은 진통제를 맞았습니다. 간호사는 환자가 직접 주사량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를 제 손에 쥐어주었고, 조작 방법을 찬찬히 일러주었지요. 구역감 같은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스위치를 더 눌러 진통제 양을 조절할 필요도 없이 무난하게 회복할 수 있었어요.
똑똑한 AI(인공지능)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키오스크가 도처에 설치되고 무인점포도 곳곳에 운영되지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적 시스템이 구축되는 가운데, 특별히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공간이 병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편리하고 간편한 도구라 할지라도 오직 사람만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체온이 있잖아요? 걱정하는 마음에는 진심이 묻어납니다. 상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는 마음이 모이면 놀라운 힘이 돼요. 다름 아닌 치유의 힘이지요. 저 역시 사랑하는 이들의 응원과 기도에 힘입어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어왔습니다.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목소리에 묻어나는 기운의 크기를 가늠하고, 입맛 없어하는 환자에게 죽 한 숟가락이라도 더 떠먹이고, 커피보다는 허브티를 권하는 마음에는 “당신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의 간절함이 녹아 있으니까요.
병원, 참 가기 싫은 곳입니다. 새 생명의 출생을 제외하고는 좋은 소식보다 아프고 슬픈 소식이 많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 듣는 것이 고문처럼 느껴집니다. 입원 환자들 중에도 왜 그렇게 어린아이들이 많은지 젊은 부모들이 사력을 다해 명랑을 쥐어짜며 간호하고 달래는 모습들이 예사롭게 지나쳐지지 않더군요.
‘우리 엄마도 예전에 저러셨겠구나.’ 싶고, ‘아들 같은 씩씩한 딸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행복이구나.’ 싶고….
긴급 수술에 들어가는 저를 보고 지인들은 마흔이 넘으면 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된 것일 뿐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앞으로 더 마취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님들도 특별히 건강관리 잘하세요. 겪어 보니 썩 달갑지 않더라고요. 적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관리가 생활이 되길 당부드립니다. 저처럼 철퇴 맞고 선택의 여지없이 금주다 소식이다 그러지 마시고, 알아서 스마트하게 챙겨 가시면 아플 일도 후회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저도 몸 사리고 아끼며 잘 회복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