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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12. 2023

시험관 시술할 결심

마흔, 마흔여섯 신혼부부③

픽사베이


만 35세 =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산부인과학회가 정한 ‘노산’의 기준.     

 

난 노산의 나이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 결혼했다. 올해 만 나이가 도입되면서 그나마 30대 막바지에 걸터앉았다.^^      


아이 생각이 있었던 터라 지난해 가을, 결혼하자마자 동네에서 제법 큰 산부인과를 찾아 남편과 함께 검사받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차트에 적힌 내 나이를 보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했더라도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여자의 가임기는 변하지 않는다.”     


가끔 주변에서 40대 중반에 출산하거나 연예인들이 40대 중후반에 출산하는 경우를 듣게 된다.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화제가 됐을 뿐, 확률적으로는 극히 드문 케이스란다.      


동의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면 계획을 잘 짜라고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몇 달 동안은 자연임신 시도하고 바로 시험관을 들어가는 게 좋다고. 명확하고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시험관’ 얘기를 들었을 때 좀 놀랐다. 시험관 시술 중인 지인들이 있는데 다들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다.    

  

‘시험관 할 결심’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쳤다. ‘반백살’을 앞둔 신랑은 하루빨리하자고 했다. 맞는 말이고 남편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너무 나 몰라라 하는 듯해서다.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줄 순 없을까?”    

 

이 문제로 남편과 몇 번을 다퉜고, 미래를 걱정했다. 집도 없는 우리가 아이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대출금과 양육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까, 시술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삶은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등등.     

 

희망과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눈치 없는 꼰대들은 말한다. “알아서 잘 큰다.” 옛날 옛적 얘기엔 대꾸조차 하기 싫다.      


인터넷 카페에도 내 얘기를 올려봤다. 댓글이 생각보다 줄줄이 달려서 깜짝 놀랐다. 얼굴도 안 봤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6월 말에 시험관 시술을 해보자고 했다. 한 번이라도 해보고 생각해 보자고. 우린 4월 초에 서울역 차병원에 가기로 손을 맞잡았다.     


병원에 가기 전 유명한 의사를 검색했다. 역시 대한민국 인터넷 세상엔 정보가 넘쳐났다. “어떤 의사가 좋더라” “어떤 의사는 불친절하다,” “병원에 가서 한 번에 임신했다” 등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건 단순하게 생각했다. 일단 회사나 집과 가까워야 하고, 대기가 길지 않아야 한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난 회사에서 가장 가깝고, 집에서도 가까운 곳을 택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나이를 고려해 ‘고령 전문’으로 픽했다.  

   

남편과 함께 토요일 오전 8시 30분에 예약을 잡고 갔다. 주말이라서 그랬던 걸까. 병원 안 풍경은 출산율이 낮다고 연일 아우성치는 모습과 다르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초진이라 이것저것 검사해야 했는데 피검사, 심전도 검사, 자궁 초음파 등 여러 검사를 할 때마다 대기에 대기가 이어졌다. 


무려 2시간을 그렇게 대기하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선생님은 먼저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고, 우리는 동네병원에서 검사한 결과지를 내밀었다. 동네병원 선생님의 한 말과 비슷한 말이 이어졌다.    

  

한두 달은 자연임신을 시도해도 괜찮지만 그 이상은 권하지 않았다. 여성의 나이가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2시간이 넘게 기다려 만난 선생님과 마주한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이 ‘5분’을 위해 많은 사람이 새벽같이 나와 절박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몇몇은 대기가 지쳐 보였고, 임신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난임일기’를 쓰는 듯 무언가 빼곡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병원에 오기까지 가끔은 상처 주는 말을 뱉었고, 또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음을 눈으로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기다리는 모든 사람을 응원해주고 싶다. 결과가 생각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이 문을 두드린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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