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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Sep 26. 2023

6개월 전 퇴사한 14년 경력자의 솔직한 속마음 3가지

상극으로 안 맞는 회사 9년 버틴 퇴사자입니다.

 본론에 앞서 저는 대학병원 간호사 5년 7개월, 공공기관 8년 7개월 총 14년 2개월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올해 2월 퇴사한 전업주부입니다. 대학 졸업 직후 첫 직장 근무를 시작으로 중도 이탈이나 계획 없는 포기는 생각조차 못했던, 늘 직장과 학업(혹은 육아와 논문)을 병행하며 자기 계발에 진심이던 사람. 그런 사람이 오래 다니던 회사를 뚜렷한 계획 없이 박차고 나온 것이죠. 이제야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찾겠다면서요. 간도 크죠? 호기롭게 내 발로 나온 퇴사 언박싱 6개월 기념으로 은밀한 현재 속마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출처 : 내 사직서


1. 내 자리는 여기라는 확신


 고작 6개월에 확신? 그렇다. 이제는 감히 확신이라 명명할 수 있게 됐다. 9년 내리 고민한 탓인지 6개월간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안정적인 직장, 타이틀은 없지만 딴딴한 경력은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나 신기할 지경이다. 본디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잘 웃고, 웃기고, 잘 놀고, 할 땐 하고, 사람 좋아하고.


이렇게나 좋은데,
이렇게나 살 것 같은데

 그리고 매일 확언한다. “난 무조건 잘된다.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허를 찌르는 포텐이 있어. 결국은 잘될 거야. 남들에겐 근거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지겠지만, 남들은 내가 아니잖아? 두고 봐, 내가 이렇게 공표해서 못 이뤘던 일은 지금껏 단 하나도 없었어. 내가 원하는 일로써 소명을 이루며 살 거야."



2. 1년이라도 더 어릴 때 새로 시작할걸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했듯 복직 직전에도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도전이라는 명분으로 덧없는 끄나풀을 잡았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될 바엔 차라리 복직 전에 바로 그만둘걸, 머지않아 마흔인데. 그럼 1년이라도 더 벌었을 텐데. 건강까지 나빠질 것 없이 산뜻하게 시작하는 건데. 아직 치료 중이라 백 프로 일에 매달리지도 못하는 상황도 화가 났다. 복직 전엔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3개월 전엔 그래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확신이 깊어 갈수록, 부끄럽게도 후회감도 깊어졌다. 그러나 후회해 봐야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선택에서도 늘 유념하는 수밖에.



3. 버티는 과정에서도 분명 얻은 것은 있었다.


 하나,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어딜 가든 힘들다고, 나랑 맞지 않다고 바로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끈질기게 부딪혀보는 근성 있는 사람이라는 자가 기특함과 믿음. 그리고 하얗게 불태워보고 그만뒀기에 눈곱만큼의 미련도 없다. 그게 생각보다 크다. 그만두고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덤으로 어딜 가도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다.


 둘, 일이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통계, SAS, SQL, 분석, 논문 스터디, 통계 로직 화면 출력, 회의자료 작성, 결재, 회의록, 보고서, 회의준비와 마무리, 발표, 공문 등 통상 대부분의 회사에서 해 봄직한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 재취직해 어떤 업무를 해도 완전 생으로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


 셋, 이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가 생각보다 통계 분야에 소질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지막 복직 없이 바로 그만뒀더라면 영원히 통계와 멀어져 있었을 수도 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글은 단순 퇴사 찬양글이 아닙니다. 제가 마지막 순간을 이겨내 팀장으로 승진을 했더라도 지금쯤 웃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 잡스의 명언 두 개가 생각나네요.


Connecting the dots.
인생에 쓸모없는 우연은 없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여정이 곧 보상이다.


 지금 너무너무 지쳐버려서, 혹은 그 사람이 싫어서, 업무가 나랑 너무 안 맞아서, 조직문화가 헬이라서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비록 잠시 무가치해 보일진 몰라도 인생에 쓸모없는 여정이란 없고 지금 이 최악의 여정이 나도 모르는 새 내게 중요한 자양분이 되거나, 훗날 큰 보상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지금 내가 버티는 이 순간순간이 모여 더 나은 내가 되는 성장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진심을 다 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그 선택은 충분히 그럴만해서 한 것일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을 믿으십시오.


 앞으로의 선택과 여정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의 여정을 믿습니다.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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