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수개월이 지나가니 전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정제되어 점차 한 발씩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회사를 다니는 9년 동안 좋았던 기억은 과연 없었을까?
대출만 영끌하냐
추억도 영끌해왔다.
여름 휴양소, 숙박 할인권을 쏠쏠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아주 가끔 후원 및 제휴 행사로 문화생활도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사내에서만 인정되지만 고난도의 데이터 분석 관련 자격증 시험을 통해 당시하고 있던 업무 외적 역량을 키우며 나름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다.
합격이라는 결과는 늘 야근과 과중한 업무로 지쳐있던 내게 자신감과 동기부여감을 주었다. 해당 자격증 소지자라고 하면 사내에서도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걸 빌미로 부당하게 일을 몰아주려는 챌린지나 퇴사 전 마지막 헬부서(신사업부서) 배치 결과를 보면 실속은 없는 쯩이었기에 편하게 가고 싶은 직원들 대부분 기피하는 자격증이기도 했다.(는 좋은 거 맞냐)
그래서 더 어려운 다음 시험은 지난 시험 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액받이(?)로 등 떠밀려 혼자 부서 대표로 뽑혀 응시, 두 번째 시험은 실습도 해야 했기에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합격했음에도 부서 한턱은 당연히 내가 쐈고 부장이 유독 떨떠름해했지만 노상관. 이때 이후로 막내인 날 보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을 격려하는 분위기 또한 자연스레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다. 학업을 위한 유연근무제가 있어 8A-5P 근무가 가능했기에 비교적 적게 눈치 보고 대학원 진학이 가능했다. 사내에서도 대학원 진학자들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입학 추천서를 받기 위해 당돌하게 부서장님과 이사님, 잠깐 계약직으로 일했던 전 직장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어렵고 높은 분들을 설득하여 흔쾌히 추천서 3장을 받아 합격한 경험은 난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강력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비극적 이게도 졸업장과 사내 자격증 콜라보는 브레인들만 모이는 헬 신사업부서 발령이라는 오해의 결과를 낳음. 원거리 출퇴근자+육아 조력 전무함을 강력히 어필했음에도 ‘원주 그 부서’에 발령이 남)
(좋은 거 맞냐고)
힘들게 공부해 2번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을 때 기부니가 매우 좋았다.
내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라오는 사진들이었다. 허리 디스크와 시력저하, 골반 비틀림은 생겼지만 이런 시간들은 분명히 보람 또한 컸다. 하루에 물량 2,000건을 후다닥 마감하고 퇴근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아무도 없는 사무실 불 끄고 나와 달을 보며 퇴근할 때의 알 수 없는 뿌듯함이란.(이건 나만 좋은 거 아니냐)
여하튼 늘 일 잘한다고 인정받았고, 성실하고 성과 좋다고 인사 고과는 잘 받았다.
(힘들었는데 자랑 좀 흐즈)
이 시간들이 힘들지만 너무 좋았다. 살아있음과 성장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이제 보니 난 스스로를 갈아 넣을 때 희열을 느끼는 듯(는 변x?)
선순환으로 공부한 것을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
상사들 모시고 부산까지 벡스코 학회 갔을 때. 나름 재밌고 색다른 경험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다들 가기 싫어해 또 등 떠밀려 온 학회였는데 뜻밖의 회사 밖에서 콧바람 힐링 ㅋㅋㅋ 다녀오니 다들 쩔은 얼굴로 부러워하더라
많진 않았지만 훌륭하고 좋은 상사는 분명히 있었고 그분들에게 여러모로 배울 기회도 있었다. 아래는 대학원 추천서를 써주셨던 부장님께서 부서 내 과장 승진자들을 모아놓고 나눠 주셨던 책 글귀다.
늘 회사 게시판에 지친 직원들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글을 올리셔서 천사라는 별명의 감사님. 물론 곧 다른 좋은 곳으로 다시 가셨지만 그분에게 받은 좋은 영향력은 나포함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위 짤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서 서면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직원들의 경조사를 늘 이렇게 챙기시던 분이었다.
그리고 사진엔 없지만 내가 존경했던 팀장님 한 분. 개인적으로 지금도 뵙고 싶은 분이다. 일도 너무 잘하시고 인품도 좋고 똑똑, 꼼꼼하신데 사내 정치에 취약하셔서 뱀 같은 타 팀장님들 사이에서 늘 승진에 밀리다 결국 승승장구하신 분인데,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시며 격려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본사 이전으로 부서가 해체되었을 때 팀장님과 마지막으로 포옹했는데, 이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윗 분들은 내 롤 모델인 분들이셨다. 지금도 그립다.
쓰다 보니 엄청 긴 장문의 글이 되어 버렸네.
나름 하나씩 추억하다 보니 훈훈한 마음도 든다.
지금도 여전히 원주의 등대인 그곳이지만
여러 복지적 배려가 있었기에
오롯이 육아에 전념할 3년의 시간과
대학원 졸업을 할 기회도 있었다는 건 팩트다.
그래,
이제 아름다웠던 시절로 마무리하자.
하얗게 불태우며 몸담았던 그 시간들이
퇴색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