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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Nov 15. 2023

공기업 재직 중 좋았던 순간 영끌 모음 5

퇴사 수개월이 지나가니 전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정제되어 점차 한 발씩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회사를 다니는 9년 동안 좋았던 기억은 과연 없었을까?

​대출만 영끌하냐

추억도 영끌해왔다.



공공기관 재직 중 좋았던 순간 5


1. 크고 작은 복지들


여름 휴양소, 숙박 할인권을 쏠쏠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아주 가끔 후원 및 제휴 행사로 문화생활도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2. 자기 계발을 통한 레벨 업의 순간들

막내 대리의 첫번째 시험. 우리 부에선 유일한 합격자였다.
부서 대표로 출전(?)해 두번째 합격

사내에서만 인정되지만 고난도의 데이터 분석 관련 자격증 시험을 통해 당시하고 있던 업무 외적 역량을 키우며 나름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다.

합격이라는 결과는 늘 야근과 과중한 업무로 지쳐있던 내게 자신감과 동기부여감을 주었다. 해당 자격증 소지자라고 하면 사내에서도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걸 빌미로 부당하게 일을 몰아주려는 챌린지나 퇴사 전 마지막 헬부서(신사업부서) 배치 결과를 보면 실속은 없는 쯩이었기에 편하게 가고 싶은 직원들 대부분 기피하는 자격증이기도 했다.(는 좋은 거 맞냐)


그래서 더 어려운 다음 시험은 지난 시험 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액받이(?)로 등 떠밀려 혼자 부서 대표로 뽑혀 응시, 두 번째 시험은 실습도 해야 했기에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합격했음에도 부서 한턱은 당연히 내가 쐈고 부장이 유독 떨떠름해했지만 노상관. 이때 이후로 막내인 날 보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을 격려하는 분위기 또한 자연스레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다. 학업을 위한 유연근무제가 있어 8A-5P 근무가 가능했기에 비교적 적게 눈치 보고 대학원 진학이 가능했다. 사내에서도 대학원 진학자들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입학 추천서를 받기 위해 당돌하게 부서장님과 이사님, 잠깐 계약직으로 일했던 전 직장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어렵고 높은 분들을 설득하여 흔쾌히 추천서 3장을 받아 합격한 경험은 난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강력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비극적 이게도 졸업장과 사내 자격증 콜라보는 브레인들만 모이는 헬 신사업부서 발령이라는 오해의 결과를 낳음. 원거리 출퇴근자+육아 조력 전무함을 강력히 어필했음에도 ‘원주 그 부서’에 발령이 남)​

(좋은 거 맞냐고)

그래 기부니는 좋았다.

힘들게 공부해 2번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을 때 기부니가 매우 좋았다.



3.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낀 순간들


신혼여행 다녀와 밀린 업무 주말에 나와서 할 때
주말 근무
야근
또 야근
야근 후 퇴근 정리

내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라오는 사진들이었다. 허리 디스크와 시력저하, 골반 비틀림은 생겼지만 이런 시간들은 분명히 보람 또한 컸다. 하루에 물량 2,000건을 후다닥 마감하고 퇴근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아무도 없는 사무실 불 끄고 나와 달을 보며 퇴근할 때의 알 수 없는 뿌듯함이란.(이건 나만 좋은 거 아니냐)

여하튼 늘 일 잘한다고 인정받았고, 성실하고 성과 좋다고 인사 고과는 잘 받았다.

(힘들었는데 자랑 좀 흐즈)


대학원 기말고사 앞두고 퇴근 후 독서실에서
육아와 논문 병행하던 시절
SAS와 맞짱 뜰 때

이 시간들이 힘들지만 너무 좋았다. 살아있음과 성장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이제 보니 난 스스로를 갈아 넣을 때 희열을 느끼는 듯(는 변x?)

선순환으로 공부한 것을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

 상사들 모시고 부산까지 벡스코 학회 갔을 때. 나름 재밌고 색다른 경험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다들 가기 싫어해 또 등 떠밀려 온 학회였는데 뜻밖의 회사 밖에서 콧바람 힐링 ㅋㅋㅋ 다녀오니 다들 쩔은 얼굴로 부러워하더라



4. 가끔 칼퇴했을 때





5. 인생의 스승을 만났을 때


많진 않았지만 훌륭하고 좋은 상사는 분명히 있었고 그분들에게 여러모로 배울 기회도 있었다.​ 아래는 대학원 추천서를 써주셨던 부장님께서 부서 내 과장 승진자들을 모아놓고 나눠 주셨던 책 글귀다.


당신도 아름다웠습니다.


늘 회사 게시판에 지친 직원들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글을 올리셔서 천사라는 별명의 감사님. 물론 곧 다른 좋은 곳으로 다시 가셨지만 그분에게 받은 좋은 영향력은 나포함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위 짤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서 서면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직원들의 경조사를 늘 이렇게 챙기시던 분이었다.

​그리고 사진엔 없지만 내가 존경했던 팀장님 한 분. 개인적으로 지금도 뵙고 싶은 분이다. 일도 너무 잘하시고 인품도 좋고 똑똑, 꼼꼼하신데 사내 정치에 취약하셔서 뱀 같은 타 팀장님들 사이에서 늘 승진에 밀리다 결국 승승장구하신 분인데,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시며 격려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본사 이전으로 부서가 해체되었을 때 팀장님과 마지막으로 포옹했는데, 이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윗 분들은 내 롤 모델인 분들이셨다. 지금도 그립다.




쓰다 보니 엄청 긴 장문의 글이 되어 버렸네.

나름 하나씩 추억하다 보니 훈훈한 마음도 든다.

지금도 여전히 원주의 등대인 그곳이지만

여러 복지적 배려가 있었기에

오롯이 육아에 전념할 3년의 시간과

대학원 졸업을 할 기회도 있었다는 건 팩트다.

그래,

이제 아름다웠던 시절로 마무리하자.

하얗게 불태우며 몸담았던 그 시간들이

퇴색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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