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이에 대한 기억

견뎌 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

by 사이

죽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온다. 이제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 6개월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무겁다.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 부모가 견뎌야 할 고통, 그 모든 고통의 총합은 그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만큼의 무게일까.


과거 우리 곁에 잠시 머물렀던 아이가 떠올랐다.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 시작은 그저 감기였다. 산모가 산후 조리원에서 퇴원한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쉽게 나을 줄 알았던 감기는 폐렴으로 발전했고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입원 후 폐렴을 치료를 위해 아이의 몸에 놓아진 많은 주사와 링거 바늘이 미세한 혈관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뼈를 건드려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폐렴은 완치됐으나 아이의 다리뼈에 염증이 생겼다. 발열과 구토, 입원과 퇴원의 반복.


아이의 병에 대해 사람들은 엄마의 무책임과 게으름이라 쉽게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금줄’ 이야기를 하며 산후 조리원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책망했고, 산모가 직접 신생아를 돌보지 않고 남의 손에 맞기는 요즘 세대를 비난했다.


한 달, 두 달, 힘든 시간이 쌓여 갔다. 아이의 고통 점점 커져 갔고, 부모는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방관자가 되어 갔다. 병원은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하는 듯 치료를 계속했으나 다리뼈에서 시작된 염증이 온몸의 뼈로 퍼져나가자 손을 놓고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아이는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은 아이의 첫 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는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기원하며 입히는 남색 돌복이 아닌 쭈글쭈글한 거즈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누렇게 변한 흰 내복을 입고 있었다.


아이의 배에는 죽음의 기운이 차오고 있었다. 젓내나던 하얀 피부는 사라지고 윤기 없는 검붉은 얇은 막이 겨우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배에 차오른 복수 때문에 더 이상 굽혀지지 않는 몸을 한 손에 의지하며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다. 나를 바라보던 노란 눈. 그 눈에 절망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웃는다.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다. 내가 기억하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다.


1년 하고 몇 개월. 엄마의 자궁 속 어둠을 벗어나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아프기 시작한 아이는 그 짧은 생을 고통 속에 살다 떠났다.


또 다른 아이가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세계 여기저기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각하게 된다. 운명을, 신을 원망해 본다. 최소한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이해할 만한 정도의 삶은 살게 한 후 아프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아니, 그저 그들의 고통이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이기를, 그들의 살아 있는 순간순간에 최고의 행복이 고이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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