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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01. 2019

가을 강변의 연어 무덤

가차없는 생의 주기 앞에서 삶을 생각하다

“형부는 뭐하세요?” “낚시하러 갔지. 요즘 한창 제철이잖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대화에서 계절을 실감한다. 아, 벌써 가을이구나.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C마을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온 산을 불태운다.


더불어, 겨울이 오기 전에 제 몫을 다하려는 연어들의 출현으로 강가는 늘 부산하다. 태평양 바다를 떠돌던 연어들은 때가 되면 제 어미가 그러했듯 바닷물과 강물이 뒤엉킨 경계를 넘어 자신이 태어난 이곳으로 돌아온다.



몇 천 킬로미터의 바닷길을 거슬러 온 연어들은 강에 다다르자 마지막 힘을 쥐어짠다. 펄쩍. 힘겹게 물 위로 뛰어오르며 역류하는 연어들의 은빛 갑옷은 찢기고, 상처 입고, 빛을 잃었다.


산란을 위해 회귀하는 연어를 맞이하는 것은 줄지어 서 있는 인간들이다. 강가의 낚시꾼들은 보이지 않는 줄 끝에 먹이를 달아 지친 연어를 유혹한다. 회유하고, 밀고, 당기며 그 뜨거운 몸뚱이를 갖고자 욕망한다.



차라리 장어가 될 것을 그랬나 보다. 연어와 달리 장어는 바다에서 산란하고 민물에서 살다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장어는 생애 최고의 시기에 인간 근처에 머무른다. 3000킬로미터를 헤엄쳐 돌아가기 위해 몸집을 키우고, 근력을 강화하고, 에너지를 저장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장어는 아직까지 인간에게 ‘신비한’ 물고기다. 아무도 회귀하는 장어의 목적지를 모른다. 사람들은 그저 저 깊은 바다 어디쯤 그들의 무덤이 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반면에, 연어의 죽음은 처연하다. 생의 주기가 끝난 연어는 조장(鳥葬)을 치른다. 회귀와 산란을 통해 모든 에너지를 소멸한 연어는 이제 그 몸을 새들에게 나누어 준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도 아닌, 시끄럽게 울어 대는 갈매기들의 부리에 찢기고 뜯긴다.  



하늘을 신성시하는 티베트인들은 새들이 죽은 이의 몸을 하늘로 운반한다고 생각한다. 새를 불러 모으기 위해 벌거벗은 시체 늑골 아래 부분을 갈라 내장을 꺼내고, 돌로 머리를 부셔 놓는다.


연어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낚시꾼의 유혹에 빠진 연어는 저 죽을 자리도 찾지 못한 체 머리가 부서지고 배가 갈린다. 낚시꾼의 자리가 연어가 죽을 자리다.



강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어 무덤을 지날 때면 숙연해진다. 새들의 부리에 눈알이 빠지고 살이 찢긴 연어들. 부패하기 시작한 그것들은 산란의 의무를 다한 어미의 위대함도, 험난한 여정을 이겨낸 승자의 고귀함도 없다. 그저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 가차없는 생의 주기 앞에서 나는 오히려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한다. 출생, 성장, 젊음, 고난, 행복, 노화. 그 모든 삶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회귀해야 할 순간이 다다를 때까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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