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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24. 2017

불성실한 생활일기

20170624

부모님께서 당구장을 운영한 것이 내가 대학 3-4학년 무렵인지 대학원에 다닐 때인지 잘 기억에 없다. 시작은 불분명하지만 IMF의 여파에 밀려 문을 닫았던 걸로 기억이 나니 2000년 전후 어느 때였을 것이다. 어쨌든 당구장은 식당, 노래방, 술집 등 여러 가지 서비스업을 거쳐온 부모님의 거의 마지막 사업이었다. 아니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60 전후한 나이에 자영업자의 신분에서 밀려난 부모님은 경비나 청소 같은 퇴직자들의 직업세계에 발을 디뎠고, 다시는 그 계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부모님의 마지막 사업이었던 당구장 풍경은 늘 휑했다. 가끔씩 갈 때마다 손님이 있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다. 하릴없이 당구장을 지키느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엄마와 작은 언니가 혼자 당구를 치는 모습을 볼 때도 많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꽤 당구 실력이 늘었지만. 나는 부모님이 노래방을 하실 때도 공짜로 노래를 부르러 간 적이 별로 없고, 당구는 더더욱 쳐볼 생각도 거의 하지 않았다. 텅 빈 당구대들이 더 어색해서였는지도 모르고, 가끔 가게를 대신 볼 때마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 공을 닦고 수건을 빠는 일들이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당구장은 주로 남자들이 이용하는 탓인지 화장실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오줌 냄새가 났다.(남자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소변기의 필연이라고 엊그제 라디오에서 들었다.)  

어제 종로에서 참 오랜만에(역시 뭘 하든 오랜만이다.) 당구장에 갔다. 그 시절 많이 치던 4구가 아닌 포켓볼을 쳤는데, '당구장 집 딸'이라는 주장과 달리 우스운 실력으로 꼴등을 하고 게임비를 냈다. 한참 우스갯소리를 하며 당구를 치다가 차례를 기다리며 당구장을 둘러보는데, 그 옛날 엄마 아빠의 당구장 풍경이 겹쳐 보였다. 넓은 홀에 가득 늘어선 당구대, 벽에 붙은 큐대들, 드물었던 당구 치는 사람들. 그 풍경이, 그 풍경을 지켜만 보며 서서히 가라앉듯 쇠락했던 부모님의 시간이 문득..


* 엄마에게 전화로 여쭤보니 당구장을 한 것은 96년 부터 일년 남짓이었다고 한다. IMF 직격탄에, 새로 생겨난 PC방에 밀려, 한 대에 500만원인 당구대 9개를 거의 공짜로 넘겨주고 나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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