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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의 쓸모 Sep 27. 2022

프레임, 언어를 통해 형성된 가치체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리뷰


원래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년 사이에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 안에서 정치적 견해의 양극화가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듣게 된 단어가 ‘프레임’이라는 단어였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랐지만, 정치판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도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한번 읽어봤지만 당시의 나는 이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책장에 꽂혀있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눈에 띄었고, 다시 한번 펼쳤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절대악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끝나고 몇 달이 더 지난 지금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쪽에 속해있기보다도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을 관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제3자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니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보일 때도 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프레임은 관점이다. 각자가 어떤 가치체계로, 어떤 가치와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이다. 프레임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고정관념에 함몰시키기도 하는 것을 많이 보았고, 나도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10p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 안에 특정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그 단어를 사용함에 따라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의미를 뇌가 인식하고 그 관점, 즉 프레임을 스스로 갖출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그 프레임을 갖게 한다는 주장이다.


즉,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해도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한번 생각한 후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한 작업을 거친다는 말이다. 진보는 자신들의 주장을 보수에서 쓰는 단어를 통해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보수적인 견해를 사람들에게 심어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수에서도 진보의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를 써서 우리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12p


어떤 프레임을 씌운다는 의미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언어와 관점 안에는 신념, 즉 가치체계가 들어있다. 그래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에 대한 의미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정치판에서는 어떤 용어 선점은 이익집단의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 용어의 의미와 가치가 사람들에게 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수 주의가 선점한 용어들을 통해 만들어진 프레임을 재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론은 ‘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언어는 그 안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즉 프레임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언어를 통해 이미 그러한 가치체계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이다.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 …  새로운 프레임은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12p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통제 사회 속에서 빅브라더의 통치 방식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신어’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빅브라더는 새로운 용어들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왜곡시키고, 조작했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체계를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이 도구로 사용된 것이 바로 ‘언어’이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단어들을 새로운 단어로 바꾼 것이다.


이한 방식은 단지 소설 속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지 레이코프를 통해 증명되었다. 언어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의 힘을 최초로 증명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23p


프레임을 형성한다는 것은 여론 조작이 아니다. 물론 여론 조작을 통해서 이뤄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프레임의 본질은 ‘신념’ 즉, 가치체계다. 그것을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부터 프레임은 정치판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프레임은 정치판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정치판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프레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든, 특정한 이름이 없이 말이다.

언어의 원리와 프레임에 대한 개념은 저자를 통해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정치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프레임과 언어의 원리이지만, 오히려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저자의 말만 들어보면 보수는 양심도, 공감 능력도 없는 이기주의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른 주장과 논리에 대해서는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프레임에 대한 설명은 탁월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탁월한 언어학자인 듯하다.

최근 들어 ‘말, 언어’에 대한 책을 부쩍 많이 읽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에는 어떤 힘이 있는지, ‘어떤 말’을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진보주의에 대한 선전용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특정 정치적 견해에 함몰돼서 접근하기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 그 자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좀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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