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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jActivity Mar 17. 2019

감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1 (The Gambia)

2018/03  서아프리카, 세네갈, 카폰틴(Kafountine) → 감비아, 지보로(Jiboro)


  한낮에 이동하면 더위로 고생할 것 같아 일찍 배낭을 메고 나섰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이곳 세네갈 카폰틴에서 감비아 국경까지는 셉플라스로 50분 남짓 걸린다고 했다. 셉플라스(sept-place)는 세네갈의 대표 교통수단인데 프랑스어로 '일곱 좌석'이라는 뜻이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계기판도 먹통인 데다 미등이나 방향지시등도 멀쩡한 게 없고 내부 인테리어는 다 뜯겨나가 차체만 덩그러니 남은 낡아빠진 푸조나 폭스바겐의 스테이션 웨건인데 운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좌석에 총 일곱 명을 태울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자리가 다 찰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마냥 손님을 기다리기 때문에 사실상 운행 계획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도 나름 체계가 있는 모양인지 표를 판매하는 매니저는 다음 출발할 차번호와 운전자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승객수를 연신 확인하며 왔다 갔다 하느라 꽤나 분주해 보였다. 내가 타려는 차는 나까지 해서 이제 고작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노점에서 타파라파 빵에 양념된 마카로니와 양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다. 대충 요기를 하고 나니 금세 만차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국경까지 가는 차라 승객이 많은 듯했다.

세네갈 카폰틴에서 탄 셉플라스

 

 묵은 먼지 냄새가 풍겨오는 차 맨 뒷좌석 구석에 파묻히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가 북동쪽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방 차 안이 후끈해졌다. 바닷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햇볕은 따가워도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해풍 덕에 그렇게 덥지는 않은데, 지금처럼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서면 내리쬐는 햇볕에 흐르던 땀까지 말라버리고 이따금 모래먼지가 뒤섞인 열풍이 온몸을 휩쓸며 지나가곤 했다. 다행히 차가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뜨뜻한 바람이나마 어느 정도 차창 안으로 불어 들었다.

 

  울창한 덤불 숲 사이로 길게 뻗은 도로를 달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 국경마을 셀레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가 출국 도장을 받고 나왔다. 세네갈 남부 까사망스 지역과 감비아를 수도권을 잇는 국경답게 오가는 사람들과 노상에서 이것저것 파는 사람들이 한대 뒤엉켜 번잡했다.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남은 동전 몇 백 프랑을 털어 머리에 계란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대야를 이고 있는 한 아이에게서 삶은 계란을 몇 개 샀다. 마지막으로 군 검문소에서 여권에 찍힌 출국 도장을 확인받고 다시 차에 올라 세네갈을 벗어났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감비아 지보로 국경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셉플라스는 여기까지만 운행한다. 이곳에서 감비아 입국도장을 받고 감비아 최대 도시 세레쿤다까지 가는 대중교통을 타면 된다. 순조로웠다. 늦어도 오후 2시 전에는 도착하지 싶었다.

세네갈 국경마을 셀레티

  차에서 내려 배낭을 짊어지고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갔다.

"헬로 마이프렌드! 하우 알 유? 오늘 아침에 벽에 페인트를 새로 칠했으니 조심해!"

한 경찰이 친절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감비아의 공식 언어는 영어다. 프랑스, 모로코, 모리타니아, 세네갈을 거쳐 오는 내내 프랑스어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에 영어를 들으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여권을 꺼내서 감비아 방문 목적과 계획을 설명했다. 이곳 책임자로 보이는 입국심사관이 입국 도장을 찍으려다가 여권을 이리저리 한참 뒤적거리며 넘겨보더니 내게 비자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감비아는 무비자 입국인데? 무슨 소리야?' 내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 입국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비자가 없으면 입국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오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고 말을 했는데도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비자를 받고 통과할까 해서 발급 수수료를 물어보니 제법 비쌌다. 게다가 비자를 발급받고 나면 짐을 검사해야 한다며 검사 비용은 또 따로 내야 한다고 했다. 순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생글거리고 있던 입국심사용 표정을 싹 바꿔 심각한 얼굴로 정중하게 입국심사관에게 감비아의 비자 정책이 담긴 문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세상 어느 국경에 가도 그 정도 문서는 비치해두고 있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입국심사관은 '요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안쪽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왔다. 그러더니 나한테는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혼자 몇 페이지를 팔랑팔랑 대충 넘겨보더니 자기네들 서류에는 South, North Korea만 있다며 내 여권에 적힌 Republic of Korea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모르겠으니 돈을 내고 비자를 받던가 아니면 세네갈로 돌아가라고 했다. 여권에는 South나 North 어느 쪽도 명시되어있지 않으니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허무맹랑하면서도 자기들 딴에는 그럴싸한 핑계였다.

  그 말을 듣자 마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감비아는 전 세계에 몇 없는 남북한 모두 입국할 때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라서 이런 억지가 전혀 소용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UN총회 참석차 뉴욕에 갔을 때 감비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졌다는 기사를 읽다가 감비아가 북한 사람이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입국심사관에게 남한이든 북한이든 무비자 입국이지 않냐고, 서류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 보여 달라며 따졌다. 입국심사관은 서류의 내용은 외국인에게 함부로 보여 줄 수 없다며 되지도 않는 말을 잔뜩 늘어놓고는 결국 돈 내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불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그가 여권을 내게 던지듯 돌려주고는 내 얘기는 더이상 듣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여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까 내게 친절하게 인사를 해준 경찰이 내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나를 사무소 밖으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나를 앉혔다. 경찰관이 일단 진정하고 니가 말한 대로 비자가 필요 없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걸 증명할만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공식적인 문서를 가지고 있는 건 당신들인데 나보고 증명을 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언성을 높여 따졌더니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슬쩍 눈짓으로 사무실 안의 입국심사관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기도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데 심사관이 그의 상관이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비아에는 우리나라 대사관이 없고 세네갈에 있는 대사관이 감비아를 겸임국으로 맡고 있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세네갈 심카드로 신호가 잡혔다. 그런데 문제는 대사관 번호를 몰라서 검색을 해보려니 신호가 약해 전화만 되고 인터넷은 먹통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려 당황스러운 와중에 입국심사관이 안에서 창문 너머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심사관 앞에서 실컷 언성을 높이고 나서부터는 경찰들이 다들 나를 피하는 기색이라 다카르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 번호를 알아봐 줄 수 없냐고 물어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거나 아예 들은 체 만 체 했다. 막막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화 통화는 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외교부 영사콜센터로 전화를 했으면 됐을 텐데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질 못했다.)


  그때 감비아 쪽에서 땡볕 아래로 한 여행자가 짐이 가득 매달린 자전거를 몰고 나타났다. 나는 그 사람이 출국 도장받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말을 붙여 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듣고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핸드폰을 꺼냈다. 다행히 그가 감비아 심카드를 갖고 있어서 인터넷으로 한국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알려주었다. 바로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세네갈인 현지 직원이 받았는데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2시 이후에 걸어달라고 했다. 젠장!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다.

  자전거 여행자가 몸을 풀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쉬는 동안 짧은 대화를 나눴다. 자전거로 서아프리카를 여행 중이라는 영국인 제임스는 자기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국경과 검문소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모리타니아 국경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과 잠깐 얘기한 것만으로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 휴식을 마친 제임스가 자전거를 다시 일으켜 세워 헐렁해진 짐을 고쳐 달며 여기서부터 카폰틴까지는 도로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다. 쭉 포장도로라 자전거로 가는데 별 무리가 없을 거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며 무사히 감비아로 입국하길 바란다고 응원하고는 자전거에 올라 묵직하게 페달을 천천히 밟아가며 세네갈 쪽으로 향했다.     


  제임스가 가고 나니 그제야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출입국 사무소 경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입국 도장 없이 이곳에서 계속 뭉개고 있는 건 어쨌든 불법이니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모를 판이었다. 일단 출입국 사무소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 있기로 했다. 노점상이 늘어서 있는 출입국 사무소 맞은편에 가서 그늘에 앉았다. 안 그래도 더운데 한바탕 소란까지 피운 뒤라 조금 힘이 빠져 배낭에 기대어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안녕 브로? 영어 할 수 있어? 무슨 일이야?"

"아직 입국 도장을 못 받았어. 아무래도 나한테 돈을 뜯어내려는 모양이야."

"경찰들이 그러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 오늘 꽤 더운데 괜찮아? 물 마실래?"

"괜찮아. 가방 안에 아직 충분히 있어. 일단 도움을 청하려고 대사관에 전화를 했는데 지금 점심시간이라 기다려야 해. 여기 있으면 괜찮겠지?"

"응 너무 눈에 띄지 말고 저 사람들이 보는 것 같으면 통화하는 시늉이라도 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경찰이 와서 쫓아낼지도 몰라."


  그는 자신을 환전상 에디라고 소개했다. 에디는 국경을 오가는 차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두툼한 돈뭉치를 흔들며 호객을 하다가 사람이 줄면 내게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감비아 돈 안 필요해? 내가 좋게 쳐줄게."

"이 와중에 나한테 장사하는 거야? 입국 도장받으면 받자마자 바로 너한테서 바꿀게."

  그야말로 감비아의 무더운 한낮이었다. 땀이 줄줄 나는 와중에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에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고, 심카드에 통화 가능한 크레딧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해하며 마냥 두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이따금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무슨 일이냐,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사정을 설명해도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감비아 지보로 국경

  마침내 두 시가 되어 다시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사괍니다. 무슨 일이시죠?"

영사과의 한국인 직원분의 한국어가 새삼 감격스러웠다. 일단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드렸다.

"세네갈 까사망스에서 감비아로 들어오는 국경인데요. 여기 입국심사관이 비자 문제로 입국을 시켜주지 않고 있네요. 감비아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면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영사과 직원분이 잠시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해서 내 심카드의 크레딧이 넉넉지 않으니 확인 후 전화를 걸어주시라 부탁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번거롭고 짜증스러웠지만 대사관에 전화도 했으니 쉽게 일이 풀리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금방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영사과 직원분이 감비아의 비자 정책과 입국절차를 갱신하기 위해 감비아 외교부에 요청 공문을 보낸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회신이 없어 정확하게 확인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겸임국이라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속으로 조금 의아했다. 직원분은 어쨌든 국경에서 부당하게 금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입국심사관과 직접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 못된 입국심사관을 한 방 먹일 생각에 신이 나서 성큼성큼 사무소로 다시 들어가 아까 그 입국심사관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이밀며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으니 받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뻔뻔하게도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휙 돌아서서 다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영사과 직원께 이쪽에서 내 말을 무시하고 전화도 회피하고 있다고 전했더니 내게 그곳 출입국 사무소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다들 눈치만 보면서 나를 피하는 기색이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여기가 지보로 출입국 사무소라고 알려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직원분이 감비아 당국에 연락해서 해당 국경 출입국 사무소로 직접 연락을 넣겠다고 해서 내 이름, 생년월일, 여권번호를 알려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국심사관이 나타났다. 내게 입국 안 할 거면 왜 아직도 여기 있냐며 다그치듯 말하고는 투덜거리며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심사관은 소리를 질러 세네갈로 가는 택시를 한 대 부르더나 나보고 당장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대충 적당히 괴롭히면 돈을 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내가 대사관에 전화까지 해가며 일을 키우고 있으니 단단히 뿔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택시 기사에게 안 탈 테니 그냥 가라고 손짓을 해 보내고 입국심사관에게 대사관이든 어디든 이쪽으로 전화가 올 테니까 그거는 받고 나서 나를 보내든가 말든가 해라 방금 내가 한국 대사관 직원하고 얘기를 해보라고 전화를 건넸을 때 무시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들며 또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쪽팔린 줄 알아야지 제복을 입고 일하는 것 자체가 당신이 이 자리에서 당신네 나라를 대표하는 건데 멀리서 찾아온 사람한테 도움은 못 줄지언정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면서 돈을 뜯으려고 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국경에서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사람한테는 절대 따지거나 소리 지르는 게 아닌데 또 이렇게 사고를 쳐버렸다.

  입국심사관은 나한테서 훈계나 다름없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부하 경찰들에게 고함을 치며 나를 당장 세네갈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하고는 다시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까 나를 안내했던 경찰이 다시 나에게 와서 말했다.

"아마 너희 나라 대사관에서 여기로 직접 전화해도 딴소리하거나 아예 안 받을 거야. 내 전화번호를 알려줄게. 대사관에 연락해서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해. 내가 어떻게든 보스와 통화하도록 설득해볼게. 일단 세네갈 국경으로 돌아가 있어줘. 일이 잘 풀리면 다시 이쪽으로 넘어오면 돼. 잘 안 풀리면 내일 다시 와. 내일은 다른 보스가 근무하는 날이라서 괜찮을 거야. 미안해 친구."

  그는 세네갈 국경까지 가는 오토바이 택시 한 대를 불러서 운전을 하는 소년에게 나를 세네갈 국경까지 데려갔다가 나중에 다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내가 여기에 더 있어봤자 상황만 더 나빠질 것 같고 이제는 대사관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일단 세네갈 국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타는 나를 본 에디가 달려왔다,

"뭐야? 진! 세네갈로 돌아가는 거야?"

"저기 나쁜 보스 아저씨가 나 때문에 너무 열 받아서 일단 작전상 후퇴! 잠깐 갔다 올게!"


  분한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세네갈 국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오토바이 운전수의 도움을 받아 세네갈 군인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번거롭게 세네갈로 다시 입국하지 않고 군 초소 근처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일단 세네갈로 돌아와 있다고 하고 감비아 경찰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갑자기 바람이 한바탕 불더니 애기 주먹만한 솜뭉치 같은 씨앗들이 눈송이처럼 공중에 떠다녔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계속 초점을 조절해가며 사진을 찍다가 지나가던 군인한테 주의를 받았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 발짓으로 저 공중에 떠다니는 게 뭐냐고 물었지만 군인은 인상 쓴 얼굴로 사진 찍지 말라는 말만 하고 건물 뒤로 사라졌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꽤 재밌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는 것은 처음인 데다 국경에서 이렇게 시달려 보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내 옆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 어린 오토바이 운전수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너는 세네갈 사람이야 감비아 사람이야? 아까 프랑스어로 말하는 거 보니까 역시 세네갈 사람인가?"

어린 오토바이 운전수는 이곳 세네갈 국경마을 셀레티에 사는 압둘라이라고 했다.

"어! 지긴쇼르에 내 친구 아들 이름도 압둘라이야!"라고 간신히 프랑스어로 말을 전했더니 실실 웃는다.

"세네갈에 압둘라이 많아. 삼촌도 압둘라이 친구도 압둘라이야."

"나 때문에 다른 손님 못 태우고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아?"

"응!!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금방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벌써 네 시가 넘었다. 지나가는 세네갈 군인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도 이제 아무렇지가 않다. '아 재미없다. 지루하다.'하는 생각이 들 때쯤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그쪽이 너무 막무가내라서 저희도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감비아 당국에 저희가 연락을 넣어 항의를 하긴 했는데 어쨌든 국경에선 그 사람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니까요."

  대사관에서 연락이 늦어지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영사과 직원분께 그냥 카폰틴으로 돌아가서 하루 더 묵고 내일 다시 오면 별문제 없이 입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오늘 정말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황당하고 답답한 와중에 전화로나마 한국말로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다시 카폰틴으로...

  압둘라이에게 미안한데 오늘은 감비아로 못 가게 되었으니 대신 카폰틴으로 가는 셉플라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했다. 압둘라이는 괜찮다며 나를 태우고 다시 세네갈 출입국 사무소로 향했다. 아까 내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줬던 세네갈 경찰이 새로 입국도장을 찍어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감비아 국경에서 비자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고 적당히 설명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셉플라스 표를 사고 승객이 다 찰 때까지 또 이삼십 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카폰틴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오늘 일을 찬찬히 돌이켜보았다. 내내 시달리고 결국 감비아에 입국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군말 없이 입국심사관이 내라는 대로 돈을 다 내고 국경을 넘었다면 다른 여행자들한테도 똑같은 짓을 계속해서 할 것이 분명하니까. 아니다. 거창한 말은 집어치우고 그냥 나는 호락호락하게 당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미약할지언정 조금이라도 개겨보는 쪽이 나중에 돌아서서 마음이 편하다.


  더위 속에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잔뜩 지친 상태로 다시 카폰틴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인 에릭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 글쎄 그 자식이 국경에서 대놓고 삥을 뜯지 뭐예요!"

아저씨가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한바탕 싸워 놓고 그냥 돌아온 거야? 하하하! 인종차별은 나 같은 백인들만 하는 줄 아나? 몇몇 나쁘고 편협한 아프리카 녀석들한테 우리 같은 백인이나 동양인은 그저 걸어 다니는 금덩이로만 보인다네. 그런 녀석들이 자네를 그냥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지."

"그 고생을 하느라 오늘 내내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요. 아저씨는 정통 프렌치 셰프니까 멋진 저녁으로 이 불쌍한 여행자가 기운을 차리게 좀 도와주시죠. 일단 그전에 맥주부터 한 병 주세요. 라 가젤! 큰 놈으로요."


  에릭 아저씨는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이것저것 지지고 볶고 하더니 양념을 해서 구운 커다란 닭다리와 샐러드, 졸인 양파를 곁들인 으깬 감자, 허브가 들어간 쌀밥, 야채를 잘게 썰어 넣은 쿠스쿠스를 뚝딱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메뉴판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를 위한 주방장 특제 디너였다. 세심하게 마음을 써준 아저씨에게 감동하는 것도 고작 3초 남짓,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순식간에 접시를 비웠다. 말끔히 비운 접시를 아저씨가 흡족한 표정으로 치우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음 내일은 다른 입국심사관이 근무하는 날이라고 하니까. 다시 가봐야죠. 그전에 저도 인터넷으로 확실히 확인해보려고요."

"또 쫓겨나면 다시 와. 이 정도 식사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하하하!"

"불길한 말 하지 마세요. 내일 점심은 세레쿤다에서 먹을 거예요."


  푸짐한 저녁에 맥주 두 병을 연달아 비우고 나니 다시 의욕이 생겼다. 내일은 감비아 비자 정책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정보를 찾아 아예 인쇄해서 들고 가리라 작정하고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나 감비아의 비자 정책을 다시 확인한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내가 알고 있던 데로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감비아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다. '감비아 외무부로부터 입국허가서를 발급받아 지참할 것'. ‘아니 비자면 그냥 비자지 입국허가서는 또 뭐야?’ 하고 알아보니 감비아에 입국하기 전에 미리 감비아 한인교민회에 연락해서 입국허가서를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신청하는 절차도 번거롭고 최소 사나흘은 걸리는 모양이었다. 오늘 국경에서 입국허가서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는데...

  입국허가서 없이 감비아에 입국하려는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그럼 내가 국경에서 생떼를 부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비자 발급 수수료를 확인해보니 오늘 국경에서 내가 들었던 것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심지어 입국허가서 발급비용보다 저렴했다. 이래서는 입국허가서가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고작 몇 분도 안 걸려 인터넷에서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었다. 허탈했다. 국경에 있었을 때 인터넷을 쓸 수 있었으면 그런 소모적인 마찰은 없었을 텐데.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돌았다. 대사관에서도 이 정도 확인은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모르고 있었을까? 조금 의아했지만 뭐 아무튼 간에 이걸로 충분하다. 이제 비자 발급에 필요한 금액도 정확히 알고 있으니 깔끔하게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입국하면 그만이다.

  에릭 아저씨에게 내일도 아침에 일찍 나갈 거라고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일찍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가 되어 긴장이 풀리자 금세 피로가 몰려와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다시 세네갈 국경을 넘었다. 어제와 같은 세네갈 경찰이 어제 찍힌 출입국 도장 옆에 새로 오늘 날짜가 적힌 출국 도장을 찍어주며 오늘도 다시 돌아올 거냐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No merci. Au revoir! Jai-rruh-jef!"라고 대답하며 출입국 사무소를 나왔다.

  다시 감비아 국경에 도착했다. 몇몇 행상들과 경찰들이 나를 알아봤다. 그중에는 에디도 있었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한참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아서 감비아로 다시 안 오는 줄 알았어."

"일이 잘 안 풀렸어. 기다리고 있어 봐. 나 입국 도장받고 너한테 환전해야 되니까."

어제 유일하게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경찰도 금방 나를 알아보았다.

"어제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어쨌든 다시 와서 반가워. 오늘은 별문제 없을 거야."

"아니에요. 저도 착오가 있었어요. 아예 비자가 필요 없는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미리 인터넷에서 잔뜩 캡처해둔 문서는 보일 필요도 없이 어제와 다른 입국심사관에게 비자를 발급받아 시시할 정도로 간단하게 입국도장을 받았다. 그가 내게 여권을 돌려주며 "웰컴 투 감비아! 마이 프렌드!"라고 말하는 게 현실감이 없을 지경이었다. 조금 허탈한 기분으로 국경 사무소를 나오자 친절한 경찰 아저씨가 따라 나왔다.

"드디어 입국했네? 내 번호 알고 있지? 왓츠앱 메신저도 이 번호로 등록되어 있어 혹시 감비아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출국할 때 국경에서 문제가 있으면 꼭 나한테 연락해."

  여태까지 이 정도로 친절한 국경 경찰이 있었나 싶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악수를 건넸다. 에디에게 여권에 찍힌 입국도장을 자랑하듯 보여주고는 서아프리카 CFA 프랑을 감비아 달라시로 환전했다. 에디가 세레쿤다 까지 가는 감비아의 대중교통 겔리겔리(gelli-gellis, 셉플라스의 승합차 버전)로 안내해줬다.

"감비아에는 얼마나 있을 거야?"

"글쎄 일주일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뭐 가봐야 알겠지?"

"그렇구나. 감비아는 좋은 나라야. 어제 여기서 겪은 일은 잊어버리고 즐겁게 지내길 바래."

"어제도 나름 재밌었어. 또 너처럼 좋은 사람도 만나고 재밌는 일도 생기고 그러겠지.“



계속...


다음 이야기

감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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