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얼굴을 본다는 것

당신의 상상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

by 오블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는 일이 많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뭐, 회사사람은 빼고.


심지어는 얼굴을 보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채 소통하게 되는 일도 많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얼굴을 아는 사람보다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소통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얼굴을 보지 않고 소통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사람의 말투, 목소리, 생각을 들으며 나 혼자만의 그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근 공부를 하며 브로콜리너마저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평소에도 좋아하던 밴드였지만 한 번도 라이브영상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어느새 노래를 들은 지 10년은 된 것 같은데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밴드인 것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밴드 보컬인 덕원님의 모습과 류지님의 모습이 나만의 상상으로 그려져 있었고, 밴드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들이 나와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 상상 속 덕원님의 모습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답게 뽀글뽀글한 브로콜리 파마머리를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맞게 조금 후덕한 체구를 가진 둥글둥글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상상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역시나 내 생각과 다른 모습. 훨씬 샤프하고 브로콜리 파마머리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낯선 모습에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몇 번 더 영상을 보고 어느새 내 상상 속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영상 속 모습에 친근감을 느낀다. 밴드원들의 모습, 몸짓을 보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친근감이 생긴다. 그들이 더 궁금해져 10년간 찾아보지 않았던 인터뷰 영상도 찾아본다.


아, 얼굴을 본다는 것은 큰 힘이 있구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내 상상 속의 인물의 모습이 확고했는데 얼굴을 보고 나면 어느새 내 상상 속의 모습은 사라져 있다.


내 기억에 남은 가장 강렬한 기억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보았을 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 상상 속의 해리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해서 영화를 봤을 때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새 내 상상 속 해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모습만 남아있다.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 어떤 게 더 좋으냐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을 보여주는 행위의 힘을 알기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당신의 상상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