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같다는 생각을 가지며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0,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1이고 싶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순간부터 온갖 시험을 치르어 가며 사실 나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칭송될만한 업적을 이루고 죽어서도 신문 한 켠 어딘가에 이름이 남겨진 사람.
20대 초반, 교양수업을 듣던 철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진로상담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당시 교수님께 '저는 국가에 이름을 남기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5급 공채에 합격해 사무관이 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커피를 좋아해 바리스타가 되고 싶기도 해서 고민이에요.'라며 고민상담을 했었다.
교수님은 난색을 표하시며 '사실 네가 사무관이 되어도 이름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어! 너가 좋아하는 일을 하렴.'이라고 하셨는데, 그 위대한 행정고시에 붙어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는 말이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물론 그 상담 이후에도 나는 포기를 하지 못하고 5급 공채 시험을 준비했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어느 날.
이제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옅어지고 그저 얼른 무언가 합격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때 즈음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날.
분리수거장 앞, 그동안 그저 지나치던 쌓여있는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 역시 혼자 살고 있음에도 일주일 동안 쌓여 있는 쓰레기가 엄청나다. 그 순간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온다.
공수래 공수거.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나 떠날 때 아무것도 없이 간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이 우리는 떠나는가?
저기 쌓여 있는 쓰레기, 유행이 지나 버려진 옷, 양이 많아 미처 다 먹지 못한 배달음식.
만들고 소비할 때보다 처리하고 사라지는데 시간과 비용이 오래 걸릴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0”이 되기 힘들다.
사람에게는 어떠한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그 사람에게 남겨진 상처.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여전히 자주 떠오른다. 칭찬은 마음 위에 쌓이지만 악담은 마음을 할퀴어 더 깊이 간직하게 되고 오래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한 번 좋은 말을 했다고 하여도 한 번 상처되는 말을 했다면 나는 “0”이 아니라 “-2”, 어쩌면 “-20”, 혹은 그 이상이라고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것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때 했던 그 말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세상을 떠날 때 “0”, 조금 더 보태어 “1”이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포부보다도 더 지키기 어려운 바람일 수 있겠다.
“0”이 되어 가고 싶은 마음에 텀블러를 챙겨 카페에 가지만 배달음식을 또 시키고 마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으려 점점 무거워지는 입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가족에게는 또 쉽게 짜증 내고 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0”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한다.
그동안 적립한 이 마이너스 통장을 상환하고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