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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07. 2022

아파트 1층에 살아요

어설픈 2~3층 보다는 1층이다

1층은 옵션에 없었다. 어려서 살던 5층짜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에서도 5층에서만 살아봤고, 혼자살던 원룸도 4층이었고, 신혼집도 6층이었고 남편의 본가도 6층이었다. 1층은 우리의 옵션에 전혀 없던 집이었다. 어둡고, 그늘지다는 1층은 절대 매수하지 말아야 할 집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난 현실과 타협했고 1층집을 선택했다. 예산에도 딱 맞았고, 그 덕분에 고층보다 4천만원은 싸게 살 수있었다. 그로인해 집값은 더디 올랐지만 나에게는 이렇다할 대안이 없었다.


흔히 꼽는 1층 집의 첫번쨰 단점은 채광이다. 볕이 딱 베란다+50cm  들어온다. 그것도 강렬하다기 보다는 은은하다. 오히려 베란다 반대쪽 주방쪽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더강렬하다. 눈이 부실 정도니까. 베란다 바로 앞 화단 덕분에 잔자름한 벌레들이 꾸준히 출몰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거실에서 다 들렸고, 누군가에게 이곳은 집 앞이니 조용히 해달라고 붙여야 하나 고민이 될떄도 있었다.


하지만 1층의 장점은 아주 명확하다. 코로나로 인해 그 장점이 더 확실해졌다. 이사들어가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아이가 생겼고,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낳았다. 어차피 안방에 들어가면 소음은 큰 문제가 안되었고 사실 소음보다 더 무서운건 코로나였다. 1층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니 사람들과 밀폐된 공간에 일정시간 있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도 피곤한건 엘리베이터에 그 냄새나는 쓰레기를 들고 내려가야 하는 점인데 1층이니 그냥 들고 후다닥 나가서 버리고 오면 그뿐이다. 엘리베이터가 편하지만 사실 편하지만은 않은 상황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더 큰 장점은 아이가 자라면서 나타났다. 돌이 지나가고 아이는 본격 힘을 쓰는 장난감이 필요하게 되었다. 힘을 쓴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소음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스프링카에서 들고 뛰어도 아이의 힘떄문에 스프링카가 덜컹커렸다. 신나서 뛰는 아이를 말릴 재간도 없다. 10살이 된 아이도 통제가 어려운데 두돌도 안된 아이를 말릴 재간이 있단 말인가.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서 우린 안도했다. 1층이길 잘했다. 가끔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집에 올때 다 똑같은 말을 한다.


1층 부럽다


여자아이도 이렇게 뛰는데 남자아이 있는 집은 오죽할까. 매트를 2개씩 깔아도 아래층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슬리퍼 신고 다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듣는단다. 슬리퍼라니. 슬리퍼를 언급한 집은 우리 아이와 월령도 같은 집이었다. 뭐든 몸에 걸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이이다. 그런데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니. 말이 안되는거다. 비교적 얌전한 우리 아이에게도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린 아이가 걷는것이 원활해 진 다음부터 집에 매트도 안깐다. 뛰다 매트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고는 바로 치워버렸다. 놀러온 어린 손님에게 내가 하는 말은 딱 하나다.


편하게 놀아. 괜찮아. 뭐라하는 사람 없어.


난 아이에게 "뛰지마"라고 말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냥 살살 다녀. 부딛히면 아파 정도 선의 이야기였을뿐. 층간소음으로 부터 자유로울수는 없다. 윗집은 요란하고 우린 조용히 그 소리에 적응하고 있다.


1층의 단점으로 꼽히는 채광문제도 어느정도 평온해졌다. 우린 이 집에 말도안되는 폭염이 창궐하는 7월에 집주를 했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대충 바닥을 닦고 누웠는데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은 집이었건만 인부들이 빠지고 난 우리집은 그리 덥지 않았다. 아. 이집. 시원하구나. 이거 좋다. 싶었다. 남편은 유난히 열이 많은 사람이고, 왠만한 날씨에는 에어컨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나마 다른집보다 볕이 덜 들어온다는 사실이 우리집에서는 장점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색 암막커튼을 달고, 한여름엔 그 암막커튼을 아예 열지 않는다. 대낮에도. 그럼 낮에 집안은 미친듯이 더운 날씨로부터 어느정도 보호가 된다. 그나마 볕이 덜 들어와 가능한 일이었다.


잔벌레가 많이 보여 머리를 싸매다 어느날 급기야 해충제거 업체를 불러봤었다. 그 분은 집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일단 샤시를 바꾸세요. 저게 커요. 그거만 바꾸셔도 벌레가 확 줄거예요.


그랬다. 우리집 샤시는 알루미늄 샤시였다. 그 옛날 그 은색 샤시. 30년은 족히된. 안쪽의 샤시자리는 하얀색 새거였는데 바깥쪽은 은색 옛날꺼였다. 큰맘먹고 바깥쪽 샤시를 전면 교체했다. 샤시를 바꾸고 거의 1년이 되가는데 확실히! 벌레가 없다. 적다가 아니고 없다. 전엔 두어달에 한번 벌레로 깜짝깜짝 놀래는 일이 있었다면 이제는 없다.  


베란다의 샤시를 바꾸면서 우리는 베란다창을 가리던 각종 물건들을 다 치워버렸다. 블라인드도 떼버렸고, 전 주인은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두었던데 우린 그것도 붙이지 않고 투명한체로 두었다. 집이 뭔가 더 맑고 환해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도 밖이 더 잘보이니 아이가 울고 뻗대면 "째째다!"라고 시선을 돌리기도 좋았다. 아이와 창 밖을 보며 나무와 새를 보여주고,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며 인사를 한다. 아이에게는 좋은 자극이다. 통상 조경이 잘 된 아파트라면 5~6층 정도까지는 조경을 즐길 수 있는 듯 하다. 우린 대놓고 1층이니 뭐 말할것도 없고.


웃긴 장점도 있다. 어느날 아빠가 집 바닥을 보더니 아무래도 어딘가에 미세하게 배관이 세는 것 같다고 말씀 하셨다. 장판이 까맣게 된 것이 심상치 않다고. 우린 겁이 덜컥 났다. 누수는 우리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 피해는 우리가 보상해야 할 영역이다. 누수 업체를 검색하면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영역이 바로 보상관련 이슈. 하지만 우린 여유로웠다.


피해 입을 집이 없어. 지하는 그냥 텅 빈 공간인걸


누수를 봐주시는 분이 우리 집을 살펴보셨고, 지하실까지 둘러보고 오셨다. 분배기에서 물이 세고 있다며 분배기를 교체하는 것으로 누수이슈는 쉽게 정리되었다. 이제 그간의 누수의 흔적이 배어있는 장판 정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물론 해결되지 않는 단점도 있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는 사실 큰 문제가 안될텐데 우리집은 주차장이 1층에 있는 구축 오브 구축이다. 다른차들이 지나가면서 비추는 헤드라이트가 집안을 훤히 뚫고 지나간다. 이건 어떻게 해결이 안되는 지점이라 좀 아쉽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다. 샤워를 하고 나올때 커튼이 잘 닫혀있는지 봐야 한다. 집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커튼을 달고 산다. 그래도 베란다쪽 블라인드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가려두면 다시 열기가 너어어어무 불편했다.


어쩌면 우리는 일정 부분의 경제적 여유와 아이의 뜀박질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른다. 4천만원 싸게 산 우리집은 현재 11층과 근 1억 가까운 시세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로망은 필로티형 아파트 1층으로 이사가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도 한참 뛸 나이고, 코로나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과 부딛히는 일은 여전히 예민한 일이다. 심지어 3층 인데 필로티가 2층 높이인 아파트를 발견하고 올레를 외쳤다! 이집이다! 저 집에 이사가려면 어찌해야하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돈이 한 3억이 더 있어야 저집으로 이사를 가네??까지 결론이 나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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