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계산했는지 모른다. 팀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언제까지 일을 마무리할지, 채용공고는 언제 낼지, 언제 면접을 보고 언제 합격통보를 하여 첫 출근과 인수인계는 얼마나 하는 게 좋은지.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 채용공고가 드디어 올라갔고, 육아휴직 대체인력 고용임에도 불구하고 걱정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 팀에 더 걸맞은 캐릭터가 누구일지 고심하여 선발했고, 나는 그 사이 밀린 업무를 쳐내면서, 인수인계 자료를 보강하고 있었다.
인수인계자료는 2가지였다. 회사에서 정한 오피셜 한 인수인계서. 당장의 현안과 그 현안을 후임자가 어떻게 후속조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 및 관련자 연락처를 정리한 서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수인계 자료는 내가 그간 업무를 어떻게 해왔는지 프로젝트별로 연간 일정과 시기별 업무, 관련하여 참고해야 할 각종 특이사항들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업무매뉴얼이다. 인수인계서류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디테일을 다 담을 수 없으니 업무에 로스가 나지 않게 내 나름의 대안을 만들어 1년간 작성한 서류다. 첫 육아휴직 때도 20장은 족히 되는 업무매뉴얼을 정리해서 전달했고, 이번에도 역시 20페이지는 족히 될 업무매뉴얼이 작성되었다. 거기에 아예 다른 팀원에게 넘긴 업무 2가지를 감안하면 거의 30페이지에 달할 업무매뉴얼이 작성된 셈이다.
천천히 1년 내내 함께 업무를 하며 넘길 일, 혼자 진행하다가 팀의 다른 팀원에게 전달할 일, 신규인력에게 전달할 업무내용 파악용 자료까지, 순수한 업무 외에도 휴직에는 수많은 문서작업이 수반된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디테일한 매뉴얼을 작성하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이고, 매일매일 새로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한 줄씩 추가하기도 바빴다. 오탈자 투성이에 빈 공간이 가득한 업무매뉴얼을 보면서 늘 마음이 조급했지만, 조급함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야근뿐이다. 이미 엄마의 빈자리로 마음이 허한 가족에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최종적으로 인수인계를 할 후임자가 결정되었다. 우리 조직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우직하게 잘 따라오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1주일간 업무를 하나씩 넘기면서 여러 날에 걸쳐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휴직 전 연차소진 일정까지 확정되고, 모든 걸 마음에서 내려놓는 순간이 다가왔다. 어차피 이제는 모든 것이 내손을 떠난다. 내가 더 붙잡는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넘기고 업무별 후임자가 잘 다듬어 갈 수 있게 서포트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책상정리를 표 나지 않게 차근차근했다. 난 1년간 이 사무실을 떠날 사람이고, 사무실에 어설피 내 흔적이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버릴 것과 남길 것, 회사용과 개인용 물품을 구분하고 한 달 동안 조금씩 천천히 물건을 치웠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출근날.. 남은 연차를 감안하니 오후 반차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나를 기다리는 남편의 차를 탔다.
묘하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전화는 오겠지만 그래도 일이 내 손을 떠났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은 어린이집에서 온 전화 한 통에 여지없이 깨졌다. 오후 2시 30분에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는 좋은 전화가 아니다. 아이는 수영장을 다녀와 열이 나고 있다고 했고, 꽤나 고열이었다. 그대로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니 무려.. 구내염. 사실 구내염이나 수족구나 매한가지여서 전염성이 있어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성인인 나에게도 옮겨질 수 있는 병이고 나 또한 옮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상황. 집에서 좀 쉬나 싶었는데 환자가 발생돼버렸다. 다행히 열은 하루이틀 만에 잡혔지만, 아이가 나을 즈음 이번엔 남편이 몸살기가 오드니 아이에게 구내염을 옮아 손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뭐. 대단히 쉴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몸은 전염성이 강한 병에 걸리면 안 되는 상태였기에 출산 예정일까지 고작 10일 남짓 남은 기간을 바짝 날이 선채 버텨야만 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껌딱지가 되어버렸고, 아픈 아이를 속 시원히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왜 하필 지금 아프냐고 미안하다고 했다.
당신은 벌써 최소 2달 이상을 혼자 버텼잖아.
근데 내가 휴직을 했고. 그걸 아이의 무의식도, 당신의 무의식도 아는 거야.
이제 둘 다 내가 온종일 붙어있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지.
독기가 빠지는 거지.
그렇다. 남편은 이미 감기기운이 있은지 2주는 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컨디션은 나보다 더 안 좋았다. 아이도 금요일에 내가 휴직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엔 엄마 회사 빨리 끝나고 그때부터는 회사 안 가니까 일찍 데리러 갈게라고 이야기해서 금요일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둘 다 버티다 버티다 그렇게 앓아누운 것이다.
내가 못 산다 진짜... 그래도 애 낳기 전에 아픈 게 어딘가 싶다. 애 낳고 수족구에 구내염에 난리가 났다면 신랑 혼자 감당하기 더 힘들었을 거다. 나만 조심하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인거지. 정말 애 한번 낳기가 이렇게 멀고 험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