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사를 했다

2년 2개월 만이다.

by 김옥진

6개월을 넘게 내놔 어렵게 집을 팔고, 그렇게 어렵게 산 집은 잔금일에 전세 세입자가 들어오는 조건의 집이었다. 그랬다. 나는 '세안고' 집을 샀다. 그말은 내가 들어가고 싶어도 세입지가 거주할 기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임대차보호법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민법이 적용되는 임대차 계약을 했고, 세입자가 우리의 새 집에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 살게 되는 상황이었다. 우린 이미 집을 팔아서 갈데가 없는데, 세낀 집을 샀다는 것은 2년간 새로운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집을 팔고 임시 거처를 구하는데는 많은 요건들이 존재했다. 이사갈 동네는 그 전에 살고있던 동네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서 고민의 요소가 제법 많았다.


- 큰 아이의 기존 어린이집 동선을 유지할 것인가, 깰 것인가

- 이후 학교들어갈 시즌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주 기간은 언제인가

- 새로 태어날 아이와 함께 살기에 적절한 사이즈인가

-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일 할 공간은 존재하는가

- 그러면서도 출퇴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리에 존재하는 집인가

- 전세가 아닌 월세로, 월세 규모는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가

- 주차는 가능한가


급하게 이집 저집 집을 알아봤고, 이사갈 지역에 먼저 가서 자리잡는 방법과, 원래 살동네에 잔류할 것인가를 알아보다 결국은 원래 살던 동네에 남는 결정을 했고, 위의 조건에 부합되는 집을 한집 겨우 찾아 이사를 들어갔다. 2년을 꽉 채웠고, 낡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2년을 버티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2년만 지나면 우린 아주 무리없이 순탄하게 이사를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햇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먼저, 부동산 정책 그중에서도 대출 정책이 계속 바뀌었다. 높아지는 집값때문에 대출규제가 생겼고, 우리가 목표했던 규모의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될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리도 문제였다. 계약 할 당시의 금리를 기준으로 야금야금 올라가는게 보였다. 아니 기준금리는 내리는데 왜 시중금리는 올라가는가. 결국은 부동산대출을 통제하는 정부의 정책에 맞추어 가산금리를 올린 탓이었다. 11월말에 알아본 금리와 12월에 알아본 금리에는 무려 0.3% 이상의 차이가 났다. 우리가 대출 받아야 하는 규모를 생각하면 너무 드라마틱한차이였다. 앞자리가 바뀌었으니 말이다. 온갖 대출상담사를 다 찾아네 대출상담을 받았고, 우리가 수용 가능한 선의 부수거래가 있으면서 금리가 싼 전라도 광주에 있는 지방 농협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시중은행 금리가 더 낮을 줄알았는데, 가산금리가 높아 시중은행은 금리가 훨씬 더 컸다.


변수는 또 있었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작은아이도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데, 세입자가 언제 나갈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우린 10년된 집이라 왠만하면 수리를 하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수리에는 한달은 잡아야햇고, 거기에 아이가 학교를 가고 어린이집을 가려면 주소등록이 일정 시점 이전에는 완료되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세입자의 계약일 이전이라 세입자가 집을 조금은 빨리 빼주어야 우리가 수리도 하고 전입신고도 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세입자와의 관계도 좋았고, 세입자분들도 젠틀하셔서 우리의 사정이 이러저러 하다 말씀을 드리니 감안하여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명절을 끼고 잇긴했지만 그래도 계약기간보다 2주나 빨리 정리해주셨다.


여기에 마지막 변수는 임시집. 현재 살고있는 월세집이 빨리 나가느냐였다. 건물주분은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집 사서 나간다 하니 축하한다고 덕담을 해주셨고, 부동산중개소 부장님도 빠르게 집을 내놔주셔서 집 내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다 나갈 일정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명절 직후 철거를 시작했고, 이사준비도 함께 해야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머리 누일 집이 없다. 우리집은 공사를 하고잇으니 우린 공사기기간에 들어가 지내야 할 집을 또 구해야 한다. 한달이다. 한달간 지낼 집이 필요하다. 급하기 단기 숙소들을 뒤져서 딱 우리가 계약한 집 바로 뒷 건물로 한달 임시숙소를 구했다. 원래 월세는 얼마 안되는 집이었지만 한달 단기 월세는 가당치도 않았다. 4개월치는 족히 될 임대로에 관리비까지 내고 선불하고 나서야 입주할 권한이 주어지는 대단한 집이었다. 아이들에게 다시 한달간의 원룸 생활을 하게 해야했고 작은 집에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없으니 결국 이사짐은 창고로 보내야 했다. 한달간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짐들을 임시 숙소에 옮기는데, 거기에 돈을 쓰기 아깝다며 둘이 아등바등 짐을 옮기는데 몸살이 다 날 지경이었다.


2년간 보낸 집은 작고 낡긴 했어도 좀더 집의 구색을 갖춘 집이었음에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일상의 만족도는 대단히 낮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그가 인생을 살며 살아본 가장 오래되고 낡고 작은 집이었을 것이다. 햇볕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간도 모자라 한달간의 임시숙소에 다시 들어가야하니 남편의 예민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 한눈에 보이더라. 매일매일 집이 잘 고쳐지고 있는지 부질없이 가서 둘러보고, 이집이 내집이구나 위안을 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을 옮기고, 한 1주일은 전에 살던 집 근처에 있던 어린이집을 계속 다녀야했다는 점이다. 2월 마지막주 월요일에 월세집에 새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는 애매하게 남은 1주일을 아이들과 라이드를 뛰어야 했다. 아침에 아이를 태우고 영등포구에서 강서구로 갔다가, 퇴근길에 강서구로 가서 다시 아이들 둘을 태우고 돌아왔다.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작은아이가 동네 어린이집에 입소가 완료되고 나서야 비로소 라이드라이프는 끝이 났다.


남편은 처음에 굳이 임시 숙소로 가지 말고, 지금 사는 집에서 한달 더 살며 아이들을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라이드를 뛰겠다고 했다. 내가 그건 미친짓이고 말도 안되니 무조건 근처 임시숙소로 갈거라고 강력하게 말해서 이사를 간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드 2일만에 남편은 내 말을 수긍했다. 이짓을 한달을 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모든 공사가 끝났다. 이정도면 공사는 변수 없이 일정대로 아주 순탄했다. 회사에서 오래 거래한 거래쳐였고, 우리와의 관계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매주 주말마다 만나 미팅을 하고, 자재를 정하고, 주방과 욕실의 배치를 결정했다. 인테리어는 비스포크 시스템이다. 우리의 가전과 가구, 집기의 상태에 최적화된 공사를 하해야한다. 냉장고는 그대로 쓸지 새로 살지, 식기세척기는 넣을지, 붙박는 필요한지, 샤워부스를 할지 욕조를 할지 걸음걸음 정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다행히 집은 우리가 의도한 느낌대로 아주 잘 나왔다. 한정된 예산에 저만큼의 결과물이면 아주 훌륭하다 생각한다. 물론 전기 콘센트를 여기다 할껄... 하는게 2가지 정도 있긴하다. 하지만 그만하면 문제 없다 생각한다. 이사청소를 마치고 나서 새집증후군 제거 업체까지 부르고 나서야 우린 비로소 그집에 드러누울수 있었다. 물론 청소도 한번 더 해야했고, 청소물티슈를 두통이나 사서 닦아야 겨우 끝이났지만 우린 너무 행복했다.


나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온갖 가전과 가구와 인터넷 정수기 등의 설치기사님을 맞이했다. 하루에 2팀이 동시에 오는 법은 거의 없었다. 모든건 다 매일매일 하나씩이었다. 영등포구로 이사오고 임시집에서의 기간까지 포함해 이제 한달이 좀 넘었다. 새 집에 들어간지는 아직 10일도 채 되지 않았다. 이사한 주 주말은 그날대로 바쁘고, 첫 주말은 또 온갖 살림을 정리하느라 혼이 나갔다. 심지어 작은 아이가 있는 상태로는 어무것도 못하니 이사오는 주 주말은 애들을 엄마집에 맡겼고, 두번째 주말은 작은애랑 남편이 남편의 본가로 가고 나서야 겨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난리통이라기보다는 좀 집처럼 보이는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2년 2개월만에 우린 겨우. 비로소. 이제사 내 집으로 들어왔다.

정리는 다 안됬지만 드디어. 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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