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남원에서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
지리산 언저리쯤에 지독한 눈을 만났다.
도로의 차선과 가드레일이 사라진 하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천수만의 조팝나무 꽃송이들이 만들어낸 두껍고 긴 하얀 꽃 터널이었다.
마법에 걸린 듯, 도깨비에게 홀린 듯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졌다.
숨을 멈추고 핸들을 부술 듯 움켜쥐었다.
미간을 모으고 동공을 확장시켰다.
머리를 앞으로 최대한 내밀고 주문을 외웠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터널을 빠져나오니 다시 현실이었다.
달짝지근한 조팝나무 꽃향이 온몸과 차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정신이 다시 혼미해졌다.